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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의 시시각각

월드컵 공동 개최 20주년의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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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사상 최악의 빙하기인 한·일 관계에도 봄은 오는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파견한 정진석 국회부의장 등 정책협의단이 지난주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전·현직 총리와 주요 부처 각료를 망라한 면담 인사 명단만 봐도 윤석열 정부 출범에 거는 일본 정부의 기대감을 읽을 수 있다. 협의단의 한 인사는 “면담을 신청해서 거절당한 경우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2008년 봄 이명박(MB) 정부 출범 때와 대단히 흡사하다. 역사 전쟁을 불사했던 전임 노무현 정부와 달리 대일 정책에 전향적 입장을 보인 MB의 집권에 일본은 환영 일색이었다. 취임식에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현직 총리가 참석했다. 그 무렵 만났던 일본 외교관들은 “한·일 관계는 좋아질 일만 남았다”며 이구동성이었다. 그런 기대감에 묻혀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태도가 실종되면 곤란하다는 우려를 담아 ‘정권 바뀌면 한·일 관계 저절로 풀린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MB 초기의 훈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 요구에 일본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MB는 일왕의 사죄를 요구하는 발언과 함께 독도 방문이란 초강수를 두었다. 시시포스가 힘들게 한걸음 한걸음 굴러올린 바위가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윤석열 정부 환영 속 신중한 일본
결국 강제 징용·위안부 해결이 관건
선거부담 더는 6월 정상회담 적기

윤석열 정부에 대한 일본의 환영 무드 이면에는 신중한 모습도 함께 읽힌다. 협의단이 돌아오자마자 일본에서는 다음달 취임식에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을 보내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이 기대하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참석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14년전과 지금 상황은 큰 차이점이 있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 과거사 반성을 압박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일본이 한국을 압박한다. 강제징용과 위안부합의 이행 문제는 각각 한국 법원 판결과 한국 정부의 약속 파기로 일어난 문제니 한국이 먼저 해법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 공수(攻守)가 뒤바뀐 격이다. 강제징용 판결의 경우 한국 법원에 압류중인 일본 기업 재산의 현금화를 막는 것이 일본 정부가 설정한 바텀 라인이다. 법원의 강제경매가 집행되기 전에 특별법 입법을 통해 대법원 판결과 모순되지 않는 해법을 찾는 게 현실적 해법이다.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끌고 서명한 당사자인 기시다 총리 개인의 경험과 얽혀 있다. 그는 국내 반발을 물리치고 합의를 이뤄낸 데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합의를 사실상 뒤집은 데 대한 불만과 실망감도 강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해도 이런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다만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회가 마련됐다는 것이 정권 교체로 달라진 점이다.

사실은 문재인 정부에도 좋은 기회가 있었다.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이 발의한 기금 설립 법안이 문제 해결에 근접한 해법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피해자와 강경 반일파를 적극 설득했더라면 한·일 관계는 지금 달라져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일본 정부와 기업의 진지한 사죄를 촉구하고 한편으로는 국내의 피해자와 반대파를 설득하는 짐은 고스란히 윤 차기 대통령의 몫이 됐다.

윤 당선인은 선거 기간 “한·일 관계가 좋았던 시절로 되돌리겠다”고 말했다. 필자가 느끼기에 한·일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절은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 때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이후 차곡차곡 관계 개선을 해 월드컵 때 꽃이 피었다. 때마침 오는 6월 월드컵 공동개최 2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하는 축구 이벤트와 함께 한·일 정상회담의 계기로 삼아보면 어떨까 싶다. 한국 지방선거가 끝난 뒤여서 윤석열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덜 의식하면서 전향적 입장을 내놓을 수도 있다. 과거사가 남긴 앙금을 털고 한국이 일본을, 일본이 한국을 응원했던 ‘그 해 6월’의 감격을 기억하는 양국 국민들이 적지 않기에 하는 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