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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강대국발 ‘국뽕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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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채병건 국제외교안보 디렉터

채병건 국제외교안보 디렉터

우크라이나 전쟁은 놀랍다. 자본주의적이건, 사회주의적이건 가장 먼저 전제주의와 봉건 체제를 타파했다는 유럽에서 21세기에 육·해·공군이 쳐들어가는 전쟁이 벌어졌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더욱 놀라운 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경이로운 지지율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뒷머리에 총을 맞아 처형을 당하고, 러시아 군인이 성폭행을 자행하는 참상이 벌어지는데 러시아에선 푸틴 대통령 지지율이 80%를 넘는다.

러시아의 레바다 센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푸틴 지지율은 전쟁 이전인 올해 1월 69%에서 4월 82%로 상승했다. 2월 71%→3월 83%→4월 82%로 고공비행 중이다. 러시아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 역시 1월 50%에서 4월 66%로 올랐다.

전쟁 중 푸틴 지지율 80%로 껑충
미·중의 ‘줄세우기’도 현재진행형
국제사회 냉혹한 현실 직시해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느 전쟁이 그러하듯 참혹하다. 러시아군에 포위돼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도시는 시가지가 파괴돼 멀쩡한 건물을 찾아볼 수 없고 도로엔 시신이 널브러져 있다. 과거 잔혹한 섬멸전을 구사했던 몽골의 호라즘·유럽 원정이 연상될 정도다.

그럼에도 이같은 놀라운 푸틴 지지율이 나오는 것을 놓고 서구 매체에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지금 러시아에선 전쟁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 대신 ‘특수군사작전’으로 보도한다. 참상을 전하던 몇 안되는 독립 언론들은 문을 닫거나 해외로 나가야 했다. 러시아 당국의 철저한 언론 통제가 러시아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80%라는 숫자를 언론 통제만으로 설명하기엔 힘에 벅차다. 언론 통제보다 “서방과의 대치가 러시아 국민을 결속시켰다”(데니스 볼코프 레바다 국장)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레바다 센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을 ‘부정적(negative)’으로 본 답변은 지난해 11월 42%에서 올해 3월 72%로 급상승했다. 반대로 ‘긍정적’이라는 답변은 같은 기간 45%에서 17%로 줄었다.

외부 세계를 관측할 때 내가 바라는 모습과 내가 보는 모습을 혼동하면 판단을 그르친다. 러시아 국민이 참담한 전쟁을 보고 분노하기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즉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의 전쟁’이고, 현재까지는 푸틴의 극단적 일방주의가 최소한 국내 여론의 묵인 속에 진행되고 있다.

문명사회를 후퇴시키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질서의 변화를 보여준다. 국제사회를 이끄는 주도국들은 그간 무역 장벽을 낮추고 교류를 늘리며 자본의 진입 문턱을 낮추는 세계화로 달려왔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보듯 이젠 ‘강한 러시아’를 위해 침략 전쟁을 불사하고 여론은 이를 지지해 주는 ‘국뽕의 시대’를 맞고 있다.

사실 출발은 미국이다. ‘위대한 미국’(Make America Great Again)을 내건 도널드 트럼프를 백악관으로 보냈던 2016년 미국의 선택이 강대국발 국뽕의 시대를 예고한 시작이었다. 세계의 경찰 대신 세계의 수금원이 되려 한 트럼프 아메리카는 “내가 왜 당신 나라를 지켜주는가”라는 소극적 국뽕이었다. 기존 동맹국들을 향해 무임승차 비용을 요구하고, 국경엔 장벽을 쌓아 ‘미국의 미국을 위한 미국만의 미국’을 시도했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이제부터 중국이 만드는 질서에 줄을 서라’는 압박형 국뽕이다. ‘신형대국관계’이든 ‘중국의 핵심이익’이든 표현이 뭐가 됐건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절대 묵과하지 않겠다는 중화 유일 질서 독트린이다. 이에 거대한 환호의 물결을 보내는 게 중국 여론이다. 과거 소련의 위세를 잊지 못하던 러시아는 독트린을 넘어서서 아예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대국 러시아가 이젠 핵무기를 쓸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강대국들이 국뽕 대결로 향하면 향할수록 우리에겐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위협이 된다. 우리는 작은 국토(스페인의 5분의 1)에서 5000만 명이 모여 살면서 분단 비용까지 지출하는 가운데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이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라 바깥에서 벌어올 능력을 키웠고, 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 바깥이 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미국’과 ‘중화의 시대’ ‘제국의 부활’이 서로 충돌하며 주변국에 각자의 질서를 요구할수록 우리는 선택으로 인해 치러야 할 부담이 더욱 커진다. 지도를 들여다보니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동시에 힘을 투사하는 교차점이 이곳 한반도와 동아시아다. 우리는 이미 구한말의 경험이 있다. 이를 또 겪을 수는 없다며 지도자와 국민이 모두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상투적이다. 그럼에도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힘을 기르며 깨어 있어야 한다는 냉엄한 진실은 전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