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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멘토' 추도 "어둠에서 헤맬 때 목적 찾도록 도와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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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월터 먼데일 전 미국 부통령(왼쪽)을 기리는 포럼에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오른쪽)이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AP]

지난 2015년 월터 먼데일 전 미국 부통령(왼쪽)을 기리는 포럼에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오른쪽)이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AP]

"그 일이 있은 뒤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상원에 가는 것이었습니다.(중략) 하지만 프리츠와 조안이 있었고, 그들은 나를 끌어안았으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들은 어둠과 고통의 바닷속에서 내가 목적을 찾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변호사, 정치인, 상원의원, 부통령 #닮은 꼴 이력 먼데일 전 부통령 애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 추도식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바이든이 1972년 크리스마스 직전 아내와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실의에 빠졌을 때 먼데일 당시 상원의원 부부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프리츠는 먼데일 전 부통령 애칭이고, 조안은 아내 이름이다. 먼데일 전 부통령은 지난해 4월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1년여간 추도식이 미뤄졌다.

먼데일 전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멘토이자 친구, 상원의원 선배이자 부통령 본보기였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일하다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상원의원과 부통령에 이르기까지 닮은꼴 이력을 쌓았다.

먼데일은 1977~81년 지미 카터 대통령 아래서 부통령을 역임했다. 1984년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으나 현직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조지 HW 부시 부통령 팀에 대패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잡자 먼데일 전 부통령은 일본 대사를 지냈다.

먼데일은 84년 선거에서 비록 졌지만,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인 제랄딘 페라로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등 성평등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이후 공화당도 여성 부통령 후보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를 지목했다. 먼데일은 훗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등장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바이든 대통령은 먼데일 전 부통령을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거인 중 한 명"이라고 추켜세웠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바이든에게 부통령직을 제안했을 때도 바이든은 가족보다 먼저 이 문제를 먼데일 전 부통령과 상의했다. 정치전문매체 더 힐에 따르면 먼데일은 자신이 카터 대통령과 관계를 쌓은 것처럼 바이든도 오바마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라고 조언했다.

먼데일은 별 존재감이 없던 부통령의 역할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참모로 새롭게 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바이든에게 '오바마로부터 일주일에 한 번 당신 머릿속에 있는 것에 관해 토론하면서 점심을 먹자고 약속을 받아내라'고 권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렇게 했고 "버락과 내가 재임 중에 보여준 힘을 오늘날 카멀라와 내가 재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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