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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 방치된 '수백개 돌'에 뿔났다…문 여는 레고랜드 논란 [이슈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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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일 춘천시 상중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물전시관 조성 약속을 지키지 않은 레고랜드 개장은 불법″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진호 기자

강원 춘천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일 춘천시 상중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물전시관 조성 약속을 지키지 않은 레고랜드 개장은 불법″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진호 기자

시민단체, 레고랜드 개장일에 '강경투쟁' 예고

오는 5일 어린이날에 맞춰 개장을 앞둔 레고랜드가 불법 개장 논란에 휩싸였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건설 조건으로 박물관과 유적공원을 만들어 출토 유물을 보존하겠다”던 사업들이 아직 착공조차 못하고 있어서다.

2일 오전 강원 춘천시 의암호의 섬 중도에 위치한 하중도 생태공원 고인돌 야적장 앞. 춘천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등으로 구성된 ‘혈세낭비 레고랜드 중단 촉구 범시민대책위(이하 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고 레고랜드 개장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중도개발공사가 2017년 제10차 매장문화재분과위원회에 제시한 심의안에는 ‘집단 지석묘의 이전복원’, ‘선사유적공원의 조성’, ‘문화재 보존지역 내 유물전시관 조성’ 등 조건이 명시돼 있다”며 “하지만 강원도와 중도개발공사는 허가사항을 하나도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레고랜드 개장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이는 명백한 허가사항 위반이며 허가사항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준공과 개장을 강행하는 것은 무효”라며 “준공 허가 권한을 가진 춘천시가 원인무효에 해당하는 사업의 준공을 해준 것은 불법적 직권남용이며 이를 방치한 문화재청은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문화재청장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어 대책위는 오는 5일 개장을 막는 행동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레고랜드, 유적공원 같이 개장 약속 안지켜" 

레고랜드가 들어선 강원 춘천시 중도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고인돌 등이 임시로 보관되고 있는 비닐하우스 모습. 박진호 기자

레고랜드가 들어선 강원 춘천시 중도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고인돌 등이 임시로 보관되고 있는 비닐하우스 모습. 박진호 기자

강원 춘천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일 춘천시 상중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물전시관 조성 약속을 지키지 않은 레고랜드 개장은 불법″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진호 기자

강원 춘천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일 춘천시 상중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물전시관 조성 약속을 지키지 않은 레고랜드 개장은 불법″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진호 기자

시민단체들의 반발은 하중도에 있는 여러 동의 비닐하우스와 관련이 있다. 2m 높이 펜스에 둘러싸여 있는 비닐하우스 안에는 수백개의 돌이 있는데 모두 검은색 가림막에 덮여 있다. 이 돌은 2000~3000년 전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고인돌(지석묘)과 고구려 시대 돌덧널무덤(석곽묘·고대 상류계층의 무덤) 등에서 나왔다.

원래 이 유물은 현재 레고랜드가 건설된 터에 있었지만 공사가 진행되면서 2013년부터 2017년 사이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중도 유물발굴 자문위원이었던 최병현 숭실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레고랜드를 찾는 관광객이 주로 학생일 텐데 놀이기구를 타는 것도 좋지만 이곳이 중요한 유적지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며 “박물관과 유적공원을 조성해 레고랜드와 같이 문을 열기로 약속했지만 결국 문화재는 방치한 채 나 몰라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중도 선사유적은 '방치' 레고랜드는 '개장'

레고랜드가 들어선 강원 춘천시 중도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고인돌 등이 임시로 보관되고 있는 비닐하우스 모습. 박진호 기자

레고랜드가 들어선 강원 춘천시 중도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고인돌 등이 임시로 보관되고 있는 비닐하우스 모습. 박진호 기자

오는 5일 개장을 앞둔 강원 춘천시 중도에 있는 레고랜드 모습. [중앙포토]

오는 5일 개장을 앞둔 강원 춘천시 중도에 있는 레고랜드 모습. [중앙포토]

레고랜드는 2014년과 2017년 문화재청 매장문화재 분과위원회에서 고인돌과 원삼국시대 환호취락 등 선사유적을 유적공원과 유물박물관에 보존하는 조건으로 승인을 받았다. 이후 강원도는 레고랜드 옆 11만㎡ 규모의 터에 100억 원을 들여 ‘중도 선사유적 테마파크’를 짓기로 했다.

당초 계획은 레고랜드 개장보다 앞선 2020년 12월 이전에 선사유적 테마파크를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사업은 사업비 281억 원을 들여 9만5130㎡ 터에 유적공원과 박물관을 짓는 사업으로 변경됐고, 발굴된 유물은 최장 8년 동안 비닐하우스 안에서 방치되고 있다.

더욱이 중도개발공사가 280억 원이 넘는 사업비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유적 관련 사업은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이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강원도가 애초에 약속을 지킬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며 유물 훼손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나섰다.

오동철 춘천역사문화연구회 사무국장은 “강원도가 선사유적을 보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불법 개장을 강행해 발생하는 모든 사태는 강원도와 중도개발공사의 책임이며, 이를 묵인하고 문화재를 방치한 문화재청도 직무를 유기한 것으로 보고 사법당국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원도 '승인 조건 기한 못 박은 것 아니다' 해명 

오는 5일 개장을 앞둔 강원 춘천시 중도에 있는 레고랜드 모습. [연합뉴스]

오는 5일 개장을 앞둔 강원 춘천시 중도에 있는 레고랜드 모습. [연합뉴스]

이에 대해 강원도와 문화재청 등은 레고랜드 개관을 중단할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유적공원과 박물관 조성은 사업시행자인 중도개발공사가 위원회 검토,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지난해 6월 실시설계를 완료했고 단계별 계획에 따라 추진하고 있다”며 “레고랜드 테마파크에 유적 보존조치 이행 지연 사유로 지자체 인허가 사항인 개장 중단을 요청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중도 유적의 중요성을 고려해 문화재위원회심의를 거쳐 향후 어떠한 건축행위도 이루어질 수 없도록 현지보존 조치를 한 만큼 이에 반하는 행위가 발생할 경우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강원도 관계자도 “약속한 유적공원과 박물관 조성에 대한 단계적 계획을 갖고 있다”며 “승인 조건에 기한을 못 박은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준공 연기 7차례 레고랜드 드디어 개장

오는 5일 개장을 앞둔 강원 춘천시 중도에 있는 레고랜드 모습. [중앙포토]

오는 5일 개장을 앞둔 강원 춘천시 중도에 있는 레고랜드 모습. [중앙포토]

한편 레고랜드는 사업 추진 11년 만인 오는 5일 정식 개장한다. 그동안 기공식 3번과 준공 시기를 7차례 연기한 끝에 완공됐다. 레고랜드는 춘천시 하중도(91만6900여㎡) 내 28만㎡ 규모로 들어섰다. 1968년 덴마크 빌룬드를 시작으로 영국 윈저, 독일 군츠부르크, 미국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일본 나고야, 뉴욕에 이어 세계 10번째다.

레고랜드는 레고 브릭으로 지어진 40여 개의 놀이기구와 7개의 클러스터(구역)로 조성했다. 강원도와 춘천시는 연간 200만 명의 가족 단위 방문객이 찾으면서 경제적 효과는 5900억 원, 직간접 고용 효과는 89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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