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년중앙] 고구려 때도 썼던 한국인의 밥상, 소반은 어떻게 만들까

중앙일보

입력

사극이나 시대극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들고 나르던 작은 상을 본 적 있나요. 이 상의 이름은 소반(小盤)이에요. 사전적 의미는 자그마한 밥상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좌식생활이 주였던 우리 민족에게 활용 용도가 매우 다양한 가구였죠. 평생에 걸쳐 우리 민족과 함께했던 소반은 소중 친구들의 조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지역과 계층을 불문하고 널리 쓰였습니다.

김예람(왼쪽)·김하윤 학생기자가 소반 공방을 찾아 이종구 작가에게 소반에 대해 배우고, 미니 소반도 직접 만들어봤다.

김예람(왼쪽)·김하윤 학생기자가 소반 공방을 찾아 이종구 작가에게 소반에 대해 배우고, 미니 소반도 직접 만들어봤다.

전통 공예 장인들의 작업실이 많이 모여있는 서울시 종로구 북촌 계동길에는 소반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이종구 작가의 소반 공방이 있어요. 김예람·김하윤 학생기자가 이 작가와 함께 소반의 개념과 역사는 물론 만드는 법까지 알아보기로 했어요. 고즈넉한 한옥 대문을 들어서자 일정한 두께로 잘린 커다란 나무판들이 겹겹이 쌓여있었죠. "이건 제가 소반을 만들 때 주로 쓰는 은행나무예요. 소나무·느티나무 등 다른 나무를 써도 되지만 무게가 가볍고 옻칠이 잘 살아나서 은행나무를 최고로 쳐요. 은행나무로 만든 소반을 행자반이라 부릅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이 작가를 따라 공방 한편에 있는 각양각색의 소반들이 모여있는 방 안으로 들어섰어요. "소반은 '움직이는 가구'예요. 보통 가구들은 한자리에 고정적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지만, 소반은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볍기 때문에 방·마루 등 원하는 곳에서 밥상·술상·책상 등 여러 용도로 쓸 수 있죠."(이)

이종구 작가가 소반 제작용으로 미리 잘라놓은 은행나무판이 쌓여있다. 은행나무로 만든 소반을 행자반이라 한다.

이종구 작가가 소반 제작용으로 미리 잘라놓은 은행나무판이 쌓여있다. 은행나무로 만든 소반을 행자반이라 한다.

소반이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사용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역사는 꽤 오래됐습니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도 음식을 올려 먹는 용도의 소반이 등장할 정도니까요. "취재 전 소반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는데 지역에 따라 구분한다고 들었어요." 하윤 학생기자의 말에 이 작가가 맞다고 답했죠. "소반은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특정 지역에서 많이 만들면서 그곳 소반만의 특징이 생겨 지명을 이름에 붙이곤 했어요. 나주반·해주반·통영반·충주반·강원반 등이죠."

소반의 구조는 크게 물건을 놓는 넓은 부위인 천판(상판)과 천판 밑의 테두리인 운각(雲脚), 소반을 지지하는 기둥인 다리, 다리와 다리 사이를 연결해 지지하는 11자 형태의 족대로 구분합니다. 나무판 두 개가 양옆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해주반·강원반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소반이 네 개의 다리를 갖고 있죠. 다리가 하나 혹은 셋인 경우도 있지만 드물어요.

 이종구(왼쪽) 작가가 김예람·김하윤 학생기자에게 다양한 종류의 소반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이종구(왼쪽) 작가가 김예람·김하윤 학생기자에게 다양한 종류의 소반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다리의 형태에 따라 소반을 분류할 수도 있죠. 혹시 '개다리소반'이란 말을 들어봤나요. 윗부분이 굵고 두툼하고 중간 부분이 살짝 휘어진 형태의 다리를 가진 소반을 뜻하는데요. 다리 모양이 개의 다리처럼 안쪽으로 휘었다고 해서 개다리소반, 한자를 써서 구족반(狗足盤)이라고 불러요. 구족반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리에 굴곡이 좀 더 있고, 조각 장식을 한 건 호랑이의 다리를 닮았다고 해서 호족반(虎足盤)이라고 하죠. 또 다각형이나 둥근 통 모양의 다리에 장식하거나 구멍(풍혈)을 뚫은 풍혈반(風穴盤)도 있어요.

이외에도 소반을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옻칠의 종류에 따라 검은 소반은 흑칠반, 붉은 소반은 주칠반이라 불렀고 자개를 붙이면 자개반이라고 했죠. 또 천판의 생김새에 따라 둥근상·네모상·긴 네모상·꽃잎모양(화형)상·다각형상 등이 있어요. 다각형상만 봐도 8각·10각·12각·16각 등 여러 종류죠.

소반은 계층 불문 사용하던 생활필수품이었지만 계급에 따라 형태가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다리에 화려한 용무늬가 새겨진 붉은 소반을 살펴봤죠. 대궐에서 주로 쓰던 궐반(闕盤)입니다. "보통 소반은 사람이 앉았을 때 편하게 음식이나 물건을 집을 수 있어야 해서 28~30cm 정도 높이로 제작했어요. 반면 궐반은 30~34cm로 좀 더 높았죠. 왜냐면 임금을 비롯한 궐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 또 옻칠한 소반은 주로 부자나 양반이 썼고, 서민들은 옻칠 대신 들기름을 소반 표면에 칠해서 사용했어요.

목재 재단과 소반 제작에 쓰이는 연장들. 왼쪽부터 망치, 조각칼, 끌, 자귀.

목재 재단과 소반 제작에 쓰이는 연장들. 왼쪽부터 망치, 조각칼, 끌, 자귀.

그렇다면 소반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될까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문간방에 있는 이 작가의 작업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바닥에는 대팻밥이, 벽면에는 나무를 다듬는 각양각색의 도구들이 가득했죠. "소반을 만드는 도구는 탕개톱·양날톱·자귀·대패·망치·끌·칼·실톱 등이 있어요. 아까 공방 입구에서 은행나무판을 봤죠. 그걸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줄톱인 탕개톱과 날이 두 개인 양날톱으로 원하는 크기만큼 자른 뒤, 천판을 먼저 만들어요. 이때 나무를 찍어서 깎아 다듬을 때 쓰는 자귀라는 연장을 사용하죠. 나무판을 세로로 세운 뒤 자귀로 쳐내면서 원하는 깊이만큼 파내고, 대패로 밀어서 표면을 다듬어요. 그리고 천판 아랫부분에 칼로 선을 그어서 다리를 끼워 넣을 부분을 표시한 뒤, 망치와 끌로 쳐내서 홈을 만들죠."

소반의 각 부분을 연결하는 목심용 구멍을 내는 수동 드릴 사용법을 배워본 소중 학생기자단.

소반의 각 부분을 연결하는 목심용 구멍을 내는 수동 드릴 사용법을 배워본 소중 학생기자단.

천판의 형태를 완성했으면 다리와 운각도 만들어야죠. "다리는 나무를 재단해서 자른 뒤 원하는 모양대로 깎고, 칼 등으로 원하는 문양을 조각해요. 해주반처럼 다리에 평평하게 조각하는 판각(板刻)과 구멍을 내는 투각(透刻)으로 만든 문양이 많은 경우 실톱으로 하나하나 다 오려냅니다. 운각은 천판을 전체적으로 둘러싸는 형태기 때문에 곡선인 경우가 많은데, 이건 운각으로 쓸 나무판 안쪽에 칼로 선을 굵고 깊게 그은 뒤 바깥쪽을 눌러 휘어지게 만들어 부착한 겁니다." 이 작가가 소반을 뒤집어 보여줬어요.

소반 제작에 쓰이는 대패들. 앉아서 하는 작업이 많고 크기가 작은 소반의 특성상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양옆에 손잡이가 달렸다.

소반 제작에 쓰이는 대패들. 앉아서 하는 작업이 많고 크기가 작은 소반의 특성상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양옆에 손잡이가 달렸다.

이후 옻칠까지 마치면 소반이 완성됩니다. 나무로 소반의 형태를 만드는 데는 며칠 정도가 소요되지만, 칠하고 말려서 사포질을 하는 옻칠 과정은 수십 번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몇 달이 걸려요. 그만큼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죠. 또한 옻나무 진에는 옻독을 유발하는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이 함유돼 조심해야 해요. 이 작가가 공방 마당에 있는 옻나무의 잎을 따서 예람·하윤 학생기자에게 직접 보여줬는데요. 잎을 반으로 가르자 연한 회색의 액체가 나왔죠. 이게 바로 옻나무 진이랍니다.

소반 공방에서는 천판이 꽃 모양인 호족반을 단순화한 미니 소반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어요. 초보자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소중 학생기자단도 도전했죠. 이 작가가 미리 만든 천판과 네 개의 다리, 두 개의 족대, 목공풀과 물티슈, 옻 성분이 함유된 수성 스테인 물감을 예람·하윤 학생기자 앞에 각각 한 세트씩 놓았습니다.

미니 소반 만들기

 1. 미리 재단된 천판 아래쪽 홈에 목공용 풀을 적당히 바른다.

1. 미리 재단된 천판 아래쪽 홈에 목공용 풀을 적당히 바른다.

 2. 네 개의 다리를 홈에 차례대로 끼운다.

2. 네 개의 다리를 홈에 차례대로 끼운다.

 3. 표면에 삐져나온 목공용 풀을 물티슈로 닦아낸다.

3. 표면에 삐져나온 목공용 풀을 물티슈로 닦아낸다.

 4. 붓으로 옻 성분이 함유된 물감을 소반 표면에 나뭇결을 따라 바른다.

4. 붓으로 옻 성분이 함유된 물감을 소반 표면에 나뭇결을 따라 바른다.

 5. 물감이 마르면 사포질을 해서 소반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다. 마음에 드는 색이 나올 때까지 채색과 사포질을 반복한다.

5. 물감이 마르면 사포질을 해서 소반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다. 마음에 드는 색이 나올 때까지 채색과 사포질을 반복한다.

"먼저 천판과 다리 표면의 거친 부분을 사포질해서 다듬은 뒤, 가루를 털어주세요. 그리고 천판 아래쪽에 있는 홈에 목공풀을 묻힌 뒤 네 개의 다리와 두 개 족대를 차례대로 꽂아 고정합니다. 원래는 천연 접착제인 아교를 사용하지만, 오늘은 편의상 목공풀을 사용할게요."(이) 연결 부분에 목공풀을 너무 많이 바르면 표면에 삐져나올 수도 있어요. 이걸 방치하면 옻칠이 예쁘게 되지 않기 때문에 물티슈로 꼼꼼히 닦아줍니다. 두 개의 족대는 천판 아랫부분의 나뭇결과 열 십자(十) 모양으로 교차한다는 생각으로 다리를 두 개씩 연결해 각각 꽂아주세요. 조립이 끝났으면 목공풀이 충분히 마를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제 옻이 함유된 물감을 소반에 칠해 색을 낼 차례예요. 옻칠에 쓰는 전통 안료는 우루시올 함유량이 80% 이상이지만, 소중 학생기자단이 사용하는 물감에는 약 2~3% 정도만 들어있어요. 하지만 예민한 사람은 이렇게 적은 양에도 옻독이 오를 수 있기 때문에 비닐장갑을 끼고 작업하는 게 좋아요. 붓에 물감을 충분히 묻힌 뒤 천판 아랫부분과 다리를 나무의 결을 따라 색을 입혀준다는 느낌으로 먼저 칠해줍니다. 그리고 물감이 충분히 마르길 기다린 뒤 사포질을 해줘요. "물이 닿은 나무는 불어서 표면에 거스러미가 생기기 때문에 사포질로 표면을 매끈하게 해줘야 해요."(이)

소반에 옻칠을 할 때는 천판 아랫부분과 다리를 먼저 채색하고, 충분히 말린 뒤 천판 윗부분도 채색한다.

소반에 옻칠을 할 때는 천판 아랫부분과 다리를 먼저 채색하고, 충분히 말린 뒤 천판 윗부분도 채색한다.

이 과정을 마음에 드는 색깔이 나올 때까지 반복하면 나만의 미니 소반이 완성되죠. 실제로 소반을 제작할 때는 진한 색을 내기 위해 스무 번 이상 옻칠과 사포질을 반복하기도 해요. 해주반처럼 판각과 투각이 많으면 작은 붓으로 하나하나 섬세하게 다 칠해야 합니다.

"소반은 직선과 사각형이 주된 형태인 다른 가구와는 달리 곡선이 강조되고, 사각형 형태더라도 각이 모질지 않은 편안함이 있어요. 또 다양한 용도로도 쓸 수 있고요."(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몇 개월간의 정성과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일상에서 내 옆에 오래오래 둘 수 있는 소반의 매력에 소중 학생기자단이 푹 빠져들었습니다.

소반 공방에서 만난 다양한 소반들

이종구 작가가 소년중앙 독자를 위해 직접 만든 여러 종류의 소반을 소개했습니다.

원형 구족반: 다리 형태가 개의 다리를 닮았다고 해서 개다리소반이라고도 불린다. 호족반에 비해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다.

나주반: 전라남도 나주 지방에서 많이 만들어진 소반. 족대 외에 네 다리 중간에 중간대가 하나 더 있는 게 특징이다.

해주반: 황해도 해주지방에서 주로 제작된 소반. 천판 아래에 네 개의 다리가 아닌 측판을 양측에 붙인 형태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조각이 화려하다.

강원반: 강원도에서 주로 생산된 소반. 직사각형 형태의 천반의 네 귀를 원만하게 다듬고, 측판 사이에 네모난 구멍을 뚫은 형태다.

주칠십이각선: 붉은색 칠을 한 십이각형의 풍혈반. 일본이 명성황후 시해 후 약탈해간 소반을 재현한 것으로 육각 판각에 만(卍)자를 투각하고 백동을 장식했다.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평소 많이 보던 소반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자세히 알게 된 기회였어요. 소반과 관련된 몰랐던 사실과 사소한 사실도 알게 되어서 재미있었고요. 소반의 종류와 부분별 명칭, 쓰임새도 알아봐서 유익했죠. 무엇보다 직접 소반을 조립하고 사포질하고, 옻칠까지 꼼꼼히 해봐서 즐거웠어요. 이종구 작가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소반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번 취재를 계기로 소반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앞으로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요.
김예람(경기도 광성드림학교 5) 학생기자

소반 공방에서 이종구 작가님을 통해 소반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어요. 작가님이 소반의 매력에 빠지게 된 이유를 저도 알 것 같은 취재였습니다. 작가님이 소반 재료로 애용하신다는 은행나무의 냄새가 신기했어요. 제가 아는 은행나무 열매는 안 좋은 냄새가 나는데 옻칠을 하지 않은 은행나무 소반은 향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작가님이 소반을 만들 때 쓰는 도구들도 생소한 게 많았죠. 미니 소반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서서 작업하느라 다리가 무척 아팠는데요. 덕분에 이렇게 긴 시간 정성을 들여 소반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김하윤(경기도 하스토리 홈스쿨 4) 학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