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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형사사법 뿌리, 6분 만에 뽑혔다…헌재만 쳐다보는 여·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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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검수완박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달라.”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검찰청법 개정안 처리를 막지 못한 권성동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소속 의원 14명은 1일 청와대 앞으로 달려갔다. 5월3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법안 공포를 저지하기 위해서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권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구중궁궐 청와대 속에서 강성 지지자들의 환호에 눈과 귀를 막은 채 국민들의 목소리를 안 듣고 있어서 직접 면담해 민심이 뭔지, 왜 국민들이 검수완박을 반대하는지 설명하려 한다”며 “면담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릴레이 피켓시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 14명은 1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관련 대통령 면담 및 거부권 행사요구 릴레이 피켓시위를 벌였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 14명은 1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관련 대통령 면담 및 거부권 행사요구 릴레이 피켓시위를 벌였다.

국민의힘은 검수완박 저지를 위한 마지막 몸부림으로 시한부 장외투쟁을 택했지만 반전은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전날 더불어민주당이 70여년 간 자리잡아온 형사사법체계의 뿌리를 반쯤 뽑아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6분이었다. 30일 오후 4시9분 국회의장실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던 국민의힘 의원들의 틈을 비집고 나온 박병석 국회의장은 4시 22분 본회의 개의를 선언했고 4시 28분 검찰청법 개정안 가결을 선언했다.

거여의 마지막 폭주엔 흐트러짐이 없었다. 재석 177인 중 찬성 172인ㆍ반대 3인ㆍ기권2인. 이광재 의원 등이 6.1 지방선거 출마 위해 의원직을 사퇴해 168석이 된 민주당 의원 중 본회의에 참석한 161명과 정의당 의원 전원(6명)이 찬성했다. 무소속 중에선 민주당 출신인 김홍걸ㆍ윤미향ㆍ양정숙 의원과 안건조정위원회 무력화를 위해 꼼수 탈당한 민형배 의원, 그리고 경찰 출신인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간헐적으로 터지던 민주당 내부의 반대와 우려는 의결 수순에 돌입한 뒤론 완전히 사라졌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106명)은 전원 표결에 불참했고, 출석해 반대표를 던진 것은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국민의당 이태규ㆍ최연숙 의원이 전부였다. 기권자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었다.

4월30일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제 396회 임시회 본회의 시작에 앞서 국민의 힘 의원들이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항의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4월30일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제 396회 임시회 본회의 시작에 앞서 국민의 힘 의원들이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항의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박 의장이 의장실에서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의장실 직원들과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고,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서로 뒤엉켜 쓰러졌다. 양금희ㆍ황보승희 의원은 병원신세를 졌다. 이 과정에서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이 XX들아 이러는 게 어딨냐. 천하의 무도한 놈들”이라며 욕설을 내뱉었고, 박 의장이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박병석은 사퇴하라”고 외쳤다. 의사진행 발언에 나선 배현진 의원은 의장석을 향해 손을 치켜들고 “당신이 얘기하는 민주주의가 이런 것이냐”고 소리쳤다.

의결 전후 국회는 아수라장이 됐지만 그뿐이었다. 박 의장은 검찰청법 통과 직후 임시국회 회기를 이날 하루로 못박는 민주당발 ‘회기 결정의 건’을 상정해 처리했고, 곧바로 검수완박 2탄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민주당의 요청에 따라 5월3일 오전 10시에 본회의를 소집한다는 공고도 냈다.

4월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96회 국회(임시회) 1차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가결된 가운데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하며 박병석 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4월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96회 국회(임시회) 1차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가결된 가운데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하며 박병석 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헌재로 이동하는 시선

5월3일 형사소송법 개정안까지 본회를 통과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공포하면 4개월 뒤부터 개정 법률의 효력이 발생한다. 당분간 부패·경제 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수사권은 유지되지만 선거범죄 등 공안분야 수사권은 곧 사라지고 보완수사권의 범위도 극히 제한된다. 수사 일선의 일대 혼란은 기정 사실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법안 공포를 위해 관례상 오전 10시에 열던 국무회의를 이날 오후로 늦추거나 아예 4일로 연기하는 방안까지 검토중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7일 헌법재판소에 낸 본회의 부의금지 가처분 신청의 결과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판사출신인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헌재도 민형배 의원의 꼼수 탈당 등 절차적 하자의 심각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현 정부의 눈치를 보지 말고 빨리 합당한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뭐가 위헌이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주장”이라며 “법안 하나는 이미 처리된 상태여서 헌재가 심판할 이익도 없어 각하될 것”이라고 반응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에서 제기한 국민투표는 검수완박 저지 수단으로 기능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재외국민의 투표권 제한 등의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국민투표법을 손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조속히 정개특위 가동해서 민주당과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국민투표법 개정을 논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원내 핵심인사는 “헌법 위반 조항은 고쳐야 하지만 선거법과의 충돌 문제 등 들여다 볼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의원은 “일단 법안 효력이 발생하고 나면 검찰이 검토중인 권한쟁의심판이나 시민단체들이 제기할 헌법소원 등의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끝나지 않는 싸움…3라운드는 ‘중수청’

민주당은 중대범죄수사청(한국형 FBI) 설치를 위한 공세에도 이미 돌입했다. 민주당은 지난 29일 국회 운영위원회(위원장 박홍근)를 열어 단독 의결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 결의안을 3일 본회의에서 함께 의결하겠단 입장이다. 결의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돼야 각 당의 위원 추천 절차를 거쳐 사개특위 테이블이 마련될 수 있다.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중수청 논의에 곧바로 돌입한다는 게 국민의힘이 파기한 국회의장 중재안의 취지”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미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성일종 정책위의장)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 중수청 설치법까지 민주당이 독주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국민의힘 원내 핵심관계자는 “중수청 설치법안에 대해선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검수완박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어차피 단독 재의결(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3분의 2 찬성)이 불가능한 법안을 민주당 입맛대로 밀어붙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장은 이날까지 사개특위 구성 결의안의 3일 상정여부에 대한 입장을 아직 양당에 전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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