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건배사 시키면 맛도 못 느껴"…'9급 극단선택' 후 대전시 변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30대 공무원들, 조직문화 개선 요구 
“회식을 강요하지 말고, 건배사도 시키지 말아 달라. 주말에는 워크숍도 하지 말자.”
대전시청 20~30대(MZ세대)  공무원들이 “조직문화를 개선해 달라”며 내놓은 의견이다.

대전시 20~30대 공무원들이 '주니어보드'를 결성하고 활동에 나섰다. 사진 대전시

대전시 20~30대 공무원들이 '주니어보드'를 결성하고 활동에 나섰다. 사진 대전시

29일 대전시에 따르면 시는 최근 6급 이하, 근무경력 10년 이하인 20∼30대 공무원 73명으로 ‘주니어 보드’를 구성했다. 이들은 앞으로 직장에서 일하면서 문제라고 느낀 점을 지적하는 역할을 한다. 또 관리자와 실무자, 선배와 후배 사이 가교 역할도 한다.

주니어 보드는 토의를 통해 ‘건배사 시키지 말기’, ‘형식적인 업무보고 폐지’, ‘점심 선약 눈치 주지 않기’ 등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 공무원은 “관리자(상급자) 성향에 따라 회식 등 분위기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아직도 건배사 등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대전시 한 직원은 “건배사는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건배사를 시키면 긴장한 나머지 음식 맛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주말 워크숍’ 논란에 대해 대전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등산이나 체육대회를 겸한 직장내 워크숍을 열 수 없었다”며 “워크숍은 평일에 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대전시청 전경

대전시청 전경

"불필요한 업무보고도 안했으면" 
대전시 관계자는 “비슷한 업무 진행 상황을 상급자에게 매주 보고하는 것을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는 업무 상황을 제때 파악하고자 하는 관리자 처지와는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점심 선약 눈치 주지 않기’와 관련해서는 “요즘 조직 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점심시간에 하급자가 상급자 눈치 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반면 MZ세대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갖지 말아달라는 의견도 나왔다. 대전시청 한 20대 공무원은 “MZ세대 고충을 이해해주는 건 좋지만, 특정 세대의 요구만 조직문화에 반영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간부 식사 챙기기도 중단해달라" 
앞서 대전시는 지난 1월 주니어 보드를 운영해 조직문화 개선안 8대 과제를 선정하기도 했다. 없애야 할 불합리한 관행으로는 과·팀별로 순번을 정해 간부 식사를 챙기는 문화, 선배 직원에게는 '차관님(팀장 밑 직급 호칭)·주사님'으로 부르게 하면서 어린 신규 직원을 'ㅇㅇ씨'로 부르는 분위기, 습관적인 반말 등이 꼽혔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서는 눈치 보지 않고 유연근무 사용하기, 회식 강요 안 하기, 휴가 사용 권장하기 등이 제시됐다. 수평적 소통을 위해서는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익명 소통게시판 설치, 신규 공무원 공직생활 적응 지원하기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대전시는 “간부 식사 챙기기와 회식 강요 여부 실태를 지속해서 살펴보고 있다”며 “유연근무를 주 2회 이상 사용토록 권장하는 한편 내년부터 유연근무 실적을 부서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고 했다. 시는 노조 누리집에 노조원 전용 익명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으며, 휴가 결재권자를 과장에서 팀장으로 하향 조정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대전시청 공무원 유족들이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극단적인 선택을 한 대전시청 공무원 유족들이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대전시는 지난해 9월 9급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조직문화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해 1월 9급 공채로 공직에 들어온 A씨는 지난해 7월 대전시 한 부서로 발령받았으나 3개월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족과 변호인 측은 A씨에 대한 무시, 과중한 업무 부담, 부당한 지시·대우, 집단 따돌림(왕따) 등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