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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로 발칵 '21t 고래싸움'…'바다로또' 안 놔주는 검수완박 유령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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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내셔널팀장의 픽: 비밀창고에 339개 조각난 고래의 비극

지난 3일 오후 9시쯤 경북 포항구항. 갓 정박한 9.77t급 어선에 오른 해경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그물로 은폐된 어창(魚倉)에서 밍크고래 339조각이 나온 겁니다. 총 4마리로 추정된 밍크고래는 시가로 6억 원에 달한답니다. 해경은 불법포획한 고래를 운반한 혐의로 선장(56) 등 5명을 체포합니다.

현행법상 고래를 포획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고래 중에서도 밍크고래처럼 일부 고래만 그물에 걸릴 경우 해경 신고 후 팔 수 있습니다. 죽어서 해안가로 밀려오거나 해상에 떠다니는 것도 판매가 가능합니다.

밍크고래는 ‘바다의 로또’로 불립니다. 우연히 그물에 걸린 고래라도 최대 1억 원까지 팔리곤 합니다. 이날 압수한 밍크고래는 단일 사건으론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유통증명서로 위판…불법포획땐 전량 폐기

경북 포항해양경찰서가 지난 3일 불법 포획한 고래를 운반한 9.77t급 어선 선장 A씨와 선원 등 모두 5명을 체포해 수사하고 있다. 사진 포항해양경찰서

경북 포항해양경찰서가 지난 3일 불법 포획한 고래를 운반한 9.77t급 어선 선장 A씨와 선원 등 모두 5명을 체포해 수사하고 있다. 사진 포항해양경찰서

해경은 뭍으로 운반된 고래의 불법포획 여부를 확인합니다. 금속탐지 등 검시를 거쳐 포획 흔적이 없으면 고래 유통증명서를 내줍니다. 검시땐 작살 조각 등이 없어야 위판장에서 팔 수 있답니다. 반면 불법포획된 고래는 음식점 등에 팔 수 없고 전량 폐기됩니다.

비싼 몸 탓에 희생된 고래가 세상을 떠들썩하게도 합니다. 2016년 4월 울산에서 발생한 냉동창고 급습 사건입니다. 경찰은 창고에 보관 중이던 시가 40억 원 상당의 밍크고래 27t을 압수합니다. 검찰과 경찰의 갈등인 ‘고래고기 환부사건’의 시작입니다.

사건을 넘겨받은 울산지검 A검사는 한 달 뒤 압수한 밍크고래 중 21t을 업자에게 돌려줍니다. 유통업자 측 B변호사가 고래 유통증명서를 제시한 겁니다. 하지만 그해 12월 고래연구소가 이를 가짜라는 취지로 발표를 하면서 경찰이 발칵 뒤집힙니다.

고래 21t 돌려준 후 검·경 갈등

2016년 4월 울산 중부경찰서가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하고 시중에 유통한 일당을 체포할 당시 압수한 고래고기. 당시 이들은 북구 호계동 한 가정집 냉동창고에 27t 분량의 고래고기 상자를 보관하고 있었다. 사진 울산경찰청

2016년 4월 울산 중부경찰서가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하고 시중에 유통한 일당을 체포할 당시 압수한 고래고기. 당시 이들은 북구 호계동 한 가정집 냉동창고에 27t 분량의 고래고기 상자를 보관하고 있었다. 사진 울산경찰청

경찰은 고래고기를 돌려준 검찰의 위법성에 대한 조사에 나섭니다. 특히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주장해온 황운하 국회의원이 2017년 8월 울산경찰청장에 취임하면서 이목이 더욱 집중됩니다.

경찰은 A검사를 직무유기·직권남용 등 혐의로 수사합니다. 가짜 유통증명서를 낸 B변호사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합니다. 검사 출신인 B변호사가 A검사의 직계 선배임이 알려지면서 전관예우 문제도 불거집니다.

이들에 대한 수사는 난항의 연속이었답니다. 경찰이 사무실·통신·금융계좌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면 검찰은 이 중 일부만 법원에 청구하는 형식입니다. 그나마 A검사는 그해 12월 캐나다로 국외연수를 떠납니다.

결국 검찰 대 경찰의 ‘고래 싸움’은 3년 만에 일단락됩니다. 경찰이 2020년 7월 A검사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겁니다. 이 사건은 다시 1년6개월 후인 올해 1월 28일 울산지검이 A검사 등을 무혐의 처분하면서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4년6개월 만에 끝난 고래싸움, 또 ‘발목’

울산 남구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내 고래문화마을에서 볼 수 있는 고래해체장 모형. 백경서 기자

울산 남구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내 고래문화마을에서 볼 수 있는 고래해체장 모형. 백경서 기자

검·경의 고래싸움은 현재진행형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고래고개 환부사건을 공수처에서 수사해야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연장선상이기도 합니다.

정치권 안팎에선 대선 후 이슈로 부상한 검수완박을 놓고 서로 맹공을 퍼붓고 있습니다. 여·야 모두 전대미문의 상황을 수차례 검증된 팩트인양 주장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훗날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기보단 정치적 유불리만 설득하려는 모양새 입니다. 여기에 30일엔 검수완박 2개 법안 중 하나인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켰습니다.

이런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상황은 고래고기의 맛을 다룬 드라마 대장금 속 내용과도 유사해 보입니다. 대령숙수인 덕구(임현식)가 먹어본 적도 없는 고래 맛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과 다름 없어섭니다. 그는 고래고기 맛을 묻는 장금에게 “소고기 맛과 비슷하다”고 능청스레 둘러댑니다.

더욱 놀라운 건 장금의 능력입니다. 당시 장금은 미각을 잃었음에도 개인적으론 전대미문인 고래 요리를 훌륭하게 내놓습니다. 주변에 아무리 물어봐도 고래를 먹어본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도 수랏상을 완성해낸 겁니다. 지금 우리에겐 수많은 ‘덕구’보단 검수완박 갈등을 완벽하게 풀어낼 ‘대장금’이 필요한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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