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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의 날'로 이어진 중국이 놓은 ‘부채의 덫’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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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스리랑카는 급증한 대외 부채로 인해 지난 12일 일시적 디폴트를 선언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9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스리랑카는 급증한 대외 부채로 인해 지난 12일 일시적 디폴트를 선언했다. AFP=연합뉴스

가난한 나라의 부도는 주목받지 못했다. 지난 12일 일시적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스리랑카 이야기다. 채권 이자 7800만 달러에 대해 일시적 디폴트를 선언했지만 금융 시장은 잠잠했다. 일부 국가의 부도 위기만으로도 시장이 요동친 것과는 사뭇 다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25일 경제난으로 디폴트 위기에 빠진 스리랑카의 국가 신용등급을 ‘선택적 디폴트’(SD)로 내렸다. 무디스도 지난 18일 스리랑카가 연속적인 디폴트로 가고 있다며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Caa2’에서 ‘Ca’로 두 단계 낮췄다. ‘Ca’ 등급은 디폴트 등급 바로 위의 ‘디폴트 임박’ 등급이다.

스리랑카의 대외 부채는 약 510억 달러(약 64조원)다. 반면 외환보유액은 지난 3월 말 현재 19억3000만 달러(2조4260억원)에 불과하다. JP모건 등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스리랑카가 갚아야 하는 대외부채는 70억 달러(8조7990억원)다. 앞으로 5년간 상환해야 할 대외부채도 250억 달러(31조4250억원)에 이른다. 이른바 ‘국가부도’는 시간문제였단 이야기다.

스리랑카의 경제 상황은 최악이다. 늘어난 대외 부채에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관광 산업이 직격탄을 맞으며 경제는 무너졌다. 관광산업은 스리랑카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차지한다. 스리랑카 루피아 환율은 이달 초 기준 연초대비 30% 넘게 하락했다.

통화가치 하락에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국의 긴축 등으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며 생필품 가격이 뛰고 부족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민심은 요동친다. 빚을 갚기 위해 무리하게 국채를 발행하고, 경기 부양 목적으로 감세에 나서며 정부 곳간도 비어갔다.

스리랑카 경제를 수렁으로 몰고 간 건 무엇보다 급증한 대외 부채다. 그 뒤에는 중국이 있다. 스리랑카 대외 부채의 약 20%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스리랑카가 중국이 놓은 ‘부채의 덫(Debt Trap)’에 빠진 건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 때문이다. 육상 실크로드(중앙아시아와-유럽)와 해상 실크로드(동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유럽) 건설을 통해 이른바 경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64개 연선 국가를 포함해 138개국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난한 개발도상국에 중국의 돈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돈까지 빌려주며 부족한 인프라 개발에 앞장서겠다고 나서는 중국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처럼 조건을 달지도 않았다. 스리랑카를 비롯한 나라가 적극적으로 중국의 손을 잡은 이유다.

고타바야 라자팍사(사진 왼쪽) 스리랑카 대통령과 왕이 중국 외무장관이 지난해 1월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중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바다를 매립해 조성하는 포트 시티 프로젝트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AP=연합뉴스

고타바야 라자팍사(사진 왼쪽) 스리랑카 대통령과 왕이 중국 외무장관이 지난해 1월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중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바다를 매립해 조성하는 포트 시티 프로젝트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사업’이다. 빌려주는 돈은 중국의 정책은행(국가개발은행·수출입은행·농업개발은행)이나 중국의 국유상업은행(중국은행·중국공상은행·중국건설은행·중국 농업은행) 등의 상업성 대출이다. 이자가 비싸단 이야기다.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한 대출 평균 금리는 2.5% 수준이지만 최대 9%의 금리가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1% 수준인 세계은행(WB)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이자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게다가 각종 프로젝트에는 중국 기업과 중국 근로자가 참여하고 있다. 이른바 ‘구속성 원조’다. 중국 국유기업과 민간기업의 해외 진출을 통해 인력 수출까지 이뤄지며, 중국 내 과잉 공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로로 작용했다.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국가 입장에서는 국내 기업의 참여나 자국 내 일자리 창출 등의 부수적인 효과도 누리지 못한 채 이자 비용은 중국 은행에, 각종 건설 비용 등은 중국 기업과 노동자가 쓸어가게 되는 셈이다.

특히 해당 국가의 신용도가 낮은 만큼 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자원이나 각종 인프라의 운영권 등을 받는 조항을 담아 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많다. 때문에 스리랑카처럼 빚을 갚을 능력이 떨어지면 자원이나 인프라 시설을 중국에 넘기기도 한다.

실제로 2017년 스리랑카는 함반토다 항구 건설 과정에서 진 14억 달러의 빚을 갚지 못해 중국항만공사에 99년간의 운영권을 넘겼다. 파키스탄도 전략적 요충지인 과다르항의 개발을 위해 중국에서 돈을 빌렸지만 이를 갚지 못해 운영권을 중국항만공사로 넘겼다.

중국 ‘부채의 덫’에 걸린 가난한 나라는 스리랑카나 파키스탄 등만이 아니다. 개발원조 자금의 사용처를 추적하는 ‘에이드데이타’가 지난해 9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대일로프로젝트를 포함, 중국은 2000~2017년 전 세계 165개국 1만3427개 프로젝트에 8430억 달러를 빌려줬다. 40여개 중·저소득 국가가 중국에 진 빚은 GDP의 10%에 이른다.

에이드데이터측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중국은 3가지 주요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선 수출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달러를 해외 대출로 돌릴 수 있다. 또한 해외의 프로젝트를 통해 건설 분야 등 중국 내 과잉 산업을 유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원유와 곡물 등 중국 내 부족한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처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브래드 파크스 에이드 데이터 총괄 디렉터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개발도상국이 중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이 개발한 뒤 부채 상환 대신 운영과 소유권을 넘겨받은 인프라의 경우 군사나 지정학적 전략적 요충지 등에 자리 잡고 있는 경우도 많아 향후 또 다른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진격을 막기 위해 미국 중심의 서방 국가가 ‘더 나은 세계 재건(B3W)’ 계획을 들고나온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B3W는 중저소득 개도국이 2035년까지 약 40조 달러 규모의 기반시설 수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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