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n you describe your bias in just one word?”
- “Little angel”
미국 질의응답 웹사이트 쿼라(Quora)에 올라온 질문입니다. ‘아니 왜 작은 천사가 편견이지?’라고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죠. K팝 국제 팬은 바로 알아듣는 말입니다. 팬이 세계에 분포돼 있다 보니 국제 팬질 전문용어가 생겨나고 있다는군요. 한국 문화가 투영된 용어가 많아 좀 신기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흥미로운 용어 10개를 정리했습니다.
에이지 라인(Age Line)
처음엔 ‘늙었다는 말인가’라고 오해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돌을 말한다.즉, 동갑. K팝 용어를 안내하는 사이트에선 용례로 ’방탄소년단(BTS)의 정국과 갓세븐 유겸은 97라인(97 liners)’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빠른년생, 생일까지 따지며 유독 나이에 민감한 한국 문화가 투영된 용어. 멤버가 많은 아이돌 그룹 내에서 나이로 묶어 관계성( ‘형 라인’, ‘막내라인’)을 설명하는 것도 K팝 팬덤 내 흔한 놀이다. 그룹 내 서열을 드러내는 형이나 언니, 막내를 ‘Hyoung’ ‘Unnie’ ‘Maknae’ 등 한국어 발음대로 그대로 표기하는 것도 흥미롭다. 영어로 표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올킬(All-Kill)
한국 주요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석권했다는 의미. 10개 차트를 다 1위로 도배해야 한다. 이는 ▶아이차트 주간▶아이차트 실시간▶멜론 일간 톱 100▶멜론 24히트▶지니 일간 톱 100▶지니 실시간 톱 100▶플로 실시간 차트 ▶바이브 일간 톱 100▶벅스 일간▶벅스 실시간 등. 웬만한 아이돌 그룹은 이루기 어려운 성과라 팬들은 신곡이 나오면 한국 성적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연예 오락 커뮤니티 인스티즈에서 2010년 서비스하기 시작한 아이차트에서 모든 차트 1위를 하면 붙여주는 ‘올킬 마크’, ‘퍼펙트 올킬 마크’에서 시작됐다. 외국인들이 아이차트를 들여다보는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바이어스(Bias)
멤버가 여럿인 그룹에서 제일 좋아하는 멤버란 뜻. (자신의) 편견이 들어있는, 그러니까 편애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좀 더 마음이 가는 멤버가 있기 마련이다. 참고로 기사 맨 위의 질문은 BTS 질의응답 게시판에 서 퍼 온 것이다. “(BTS 멤버 중) 가장 좋아하는 멤버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는 게시물에 한 응답자가 “작은 천사”라고 하고 천사 날개를 단 지민 팬아트를 올렸다. ‘최애(最愛) 멤버’ 정도의 의미.
바이어스 레커(Bias Wrecker)
한 그룹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멤버, 차애(次愛). 자신의 편애를 깨고 바이어스로 등극할 가능성이 있는 멤버를 뜻한다.
보디 롤(Body roll)
몸에 롤이 있다면 혹시 군살? 아니다. 몸을 돌돌 굴린다는 의미다. ‘팬들을 미치게 하기 위해 보디 롤을 한다’는 식으로 쓰인다. 그러니까, 웨이브(wave)와 거의 같은 의미다. K팝에서만 쓰이는 용어는 아니지만, ‘K팝 보디 롤 베스트’와 같은 동영상이나 게시물이 많이 만들어진다.
팬 챈트(Fan chant)
한국 아이돌 팬 문화에선 오래전부터 있었던 ‘단체 응원법’. 퍼포먼스 전 혹은 중간에 팬들이 ‘떼창’으로 호응한다. 원조는 1세대 아이돌, H.O.T라는 게 중론이지만(본명 부르기의 시작· 문희준! 장우혁! 안승호! 안칠현! 이재원! H.O.T!), ‘가왕’ 조용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견도 있다( ‘기도하는~' ‘꺅’). 요즘 응원법은 곡마다 다 다르고, 규칙도 익힐게 많아 복잡하다. 한 그룹의 응원법이 수십 가지에 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걸 따라하는 국제 팬을 보는 것은 경이롭다.
파이팅(Hwaiting)
스펠링이 달라서 이게 그건가 싶지만, 맞다. 우리가 자주 쓰는 ‘파이팅’이다. 영어 네이티브들에겐 힘을 주거나 응원한답시고, 싸우라(fighting)고 하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한가 보다. 그러니 이건 영어라기보다는, 한국어다. K팝 팬들이 자신의 아이돌을 응원할 때 자주 쓴다.
K팝 스탠(K-Pop Stan)
스탠은 열성적인 팬이라는 의미다. 2000년 발매된 에미넴의 ‘스탠’은 스탠리라는 한 극성팬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곡엔 비극적인 서사가 있는데, 유명 래퍼 ‘슬림’에 집착하는 스탠이 강박적으로 팬레터를 쓰고 마지막에 슬림이 답장하는 구성으로 돼 있다. 스타의 행동을 따라하고, 그의 이름을 가슴에 문신으로 새기고, 답장이 없어 분노하고, 임신한 여자친구를 죽이고 본인도 자살한다는 충격적인 내용. 이후 극성팬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K팝 스탠은 곧 ‘열정적인 K팝 팬’이라는 뜻이다. 스탠의 일반적이 용례와 달리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 의미로 동시에 쓰이고 있어 흥미롭다. K팝 소개 채널에서 ‘K팝 스탠이 돼 학교 왕따를 극복했다’와 같은 프로필을 흔히 볼 수 있다. 긍정적인 의미다. 반면 K팝 혐오 채널에 올라오는 콘텐트 안에서는 ‘K팝 스탠은 극성스럽고 비이성적인 집단’으로 묘사된다.
레딧이나 쿼라 같은 해외 커뮤니티에 K팝 스탠을 공격하는 글은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K팝 스탠의 특징들’과 같은 제목으로 스트레오타입을 퍼뜨리려는 목적의 글 등이다. 물론 바로 반박 글이 이어진다. 한국 커뮤니티에서의 논쟁과 마찬가지로 평행선만 긋다 결론은 나지 않는다. 얼마 안 돼 새로운 글이 올라와, 다시 싸운다. ‘K팝 너드(K-Pop Nerd)’, ‘사생(Saeseng)’도 쓰이고 이와 관련된 밈(짤)도 널리 유통된다.
OT+숫자(OT+Number)
원 트루(One True)의 약자. 팬이 자기가 좋아하는 그룹 멤버 수를 뒤에 붙여 자신을 소개한다. 가령 멤버가 8명인 스트레이키즈 팬이라면, ‘OT8’, 4인조 블랙핑크 팬이면 ‘OT4’.
얼트(ULT)
얼티밋(Ultimate)의 준말. 이렇게 줄인 형태는 여러 곳에서 쓰이는데, K팝 팬덤의 맥락에선 ‘얼티밋 그룹’(Ultimate Group). 여러 그룹을 동시에 좋아할 경우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그룹을 의미한다. ‘얼트 바이어스’와 같은 표현도 자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