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몰아쳐도, 예수는 쿨쿨 잠잤다…바로 이 빛 봤기 때문 [백성호의 예수뎐](45)

중앙일보

입력 2022.04.30 05:00

백성호의 현문우답’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백성호의 예수뎐]  

나는 갈릴래아(갈릴리) 호숫가의 풀밭에 앉았다. 요한복음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복음서 1장 5절)

갈릴리 호수 위를 새들이 날고 있다. 어둠 속에는 늘 빛이 있고, 빛 속에도 늘 어둠이 있다. [중앙포토]

갈릴리 호수 위를 새들이 날고 있다. 어둠 속에는 늘 빛이 있고, 빛 속에도 늘 어둠이 있다. [중앙포토]

무슨 뜻일까. 빛은 늘 어둠 속에 있다. 다만 어둠이 빛을 보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어둡다. 빛이 없어서 어두운 것이 아니다. 빛이 있는데도 보지 못해 어두울 뿐이다.

그것을 뒤집으면 어찌 될까. 우리의 어둠 속에는 빛이 숨어 있다. 우리의 절망 속에는 ‘희망’이 숨어 있다. 어둠 속에 이미 빛이 있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날마다 허덕대는 그 짙은 절망 속에 이미 빛이 있기 때문이다.

(45)내 삶에는 왜 어둠만 있을까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래서 파도와 닮았다. 철썩, 하면서 솟구친 뒤 부서져서 파도는 사라진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저마다의 삶으로 솟구쳤다가 시간이 흐르면 소멸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파도는 어둠이다. 소멸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존재에게는 결국 어둠뿐이다.

갈릴리 호수의 엣날 풍경과 오늘날의 풍경. 그 위를 거니는 인간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중앙포토]

갈릴리 호수의 엣날 풍경과 오늘날의 풍경. 그 위를 거니는 인간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중앙포토]

파도에게도 빛이 있지만, 파도는 그 빛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두렵다. 겁이 난다. 불안하다. 왜 그럴까. 어둠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달리 말한다. 파도 속에는 이미 빛이 있다. 다만 파도가 그 빛을 보지 못할 따름이라고 한다. 파도 속에서 빛나는 빛. 그게 대체 뭘까.

그렇다. 그건 다름 아닌 ‘바다’다. 요한복음서 1장 5절에 대입하면 이렇게 된다.

“그 바다가 파도 속에서 출렁이고 있지만 파도는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돌풍이 몰아치고 배가 흔들렸을 때 예수의 제자들은 왜 겁을 냈을까. 어째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을까. 그들 각자가 파도이기 때문이다. 자기 안의 바다를 보지 못하는 파도는 두렵다. 부서질까 봐, 소멸될까 봐, 죽을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외친다. “주님, 구해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어로 ‘죽게 되다’는 ‘아폴루메사(apollumetha)’다. ‘파괴되다(being destroyed)’, ‘소멸되다(be perishing)’라는 뜻이다. 제자들은 자신이 소멸하는 파도가 될까 봐 두려워했다.

예수는 폭풍을 보고서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과 달리 말 한 마디로 바람을 잠재웠다. [중앙포토]

예수는 폭풍을 보고서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과 달리 말 한 마디로 바람을 잠재웠다. [중앙포토]

예수는 달랐다. 겁을 내지 않았다.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제자들을 나무랐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예수의 눈에는 ‘파도 속의 바다’가 보이기 때문이다. ‘어둠 속의 빛’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높고 거센 파도가 몰아쳐도 예수는 개의치 않았다. 파도는 그저 바다일 뿐이다. 부서질 일도 없고 소멸될 일도 없다. 그래서 예수는 쿨쿨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눈을 뜬 예수는 오히려 바람과 호수를 꾸짖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우리의 삶도 그렇다.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파도만 봐도 힘이 든다. 그러나 파도 속에 이미 바다가 있음을 알면 달라진다. 더 이상 떨 필요도 없고, 더 이상 겁낼 필요도 없다. 그럴 때 삶이 잠잠해진다. 고요해진다. 그래서 예수는 말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어둠 속의 빛을 보고, 파도 속의 바다를 보는 일. 붓다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어둠 속에는 늘 빛이 있다. 예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그 빛을 깨치라고 말한다. [중앙포토]

어둠 속에는 늘 빛이 있다. 예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그 빛을 깨치라고 말한다. [중앙포토]

붓다는 그렇게 표현했다. 그럴 때 우리 삶이 고요해진다. 바람이 불 때도, 파도가 때릴 때도, 천둥이 내려칠 때도 고요 속에서 걸어간다. 그게 바로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일이다.

〈46회에서 계속됩니다. 다음 주는 쉽니다〉

짧은 생각
사자는 왜 소리에 놀라지 않을까요.

이렇게 물으면 사람들은
사자의 심장이 크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사자의 심장이 크기에
작은 소리에는 놀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사자의 심장보다
더 큰 소리가 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도 과연 사자는 놀라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사자는 깜짝 놀라서 움찔할 겁니다.
그러니 사자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이유는
소리가 작아서가 아닙니다.
사자의 심장이 커서도 아닙니다.
그럼 뭘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자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걸까요.
그건 사자가 소리의 정체를
알기 때문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소리의 정체를 깨달은 이는
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물과 바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물의 정체를 알기에
바람은 걸리지 않는 겁니다.
세상 온갖 종류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겁니다.
초기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사자와 소리에 대한 이 노래는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빛과 어둠의 이야기와 상통합니다.

우리 눈에 어둠만 보일 때,
우리는 무서워합니다.
소리에 깜짝 놀라는 얼룩말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 어둠에서 빛을 보면
달라집니다.
세상 모든 어둠에
빛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무섭지 않습니다.
아무리 짙은 어둠이 밀려와도
놀라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천둥 소리가 울려도
놀라지 않습니다.
사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초기 불교 경전도
초기 그리스도교 경전도 똑같이 말합니다.
어둠만 보지 말고,
어둠에서 빛을 보라고 말입니다.
어둠에는
본래 빛이 있다고 말입니다.

백성호의 예수뎐, 다른 기사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