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비핵화 의지 있다""트럼프 괜찮다" 이런 文의 착각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2.04.30 05:00

업데이트 2022.04.3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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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JTBC 손석희 전 앵커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제공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JTBC 손석희 전 앵커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제공 청와대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문 대통령 방송 대담

“왜 비판합니까.” “정말 답답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에 대해 억울한 게 많은 듯했다. 지난 26일 JTBC가 방송한 손석희 전 앵커와의 대담에서 이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누구보다 애썼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런 노력에 비해 너무나 형편없는 지금의 결과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문 대통령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하지만 과연 그 모든 원인을 북한 탓, 미국 탓, ‘남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는 점 역시 이번 방송에서 드러났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확인된 그의 세 가지 신념 때문이다.

①김정은의 비핵화 의지, 진심으로 믿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도보다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단둘이 나눈 대화에 대해 “김 위원장은 자신들은 안전 때문에 핵에 매달려있는 것이기 때문에 안전만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비핵화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중앙 포토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중앙 포토

이어 “북한이 비핵화할 의지가 있는데, 바라는 것은 제재 해제와 단계적으로, 동시적으로 주고받는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전했다. 또 “(하지만)비핵화와 제재 해제, 평화협정이 동시에 어떻게 나갈 것인지 로드맵에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고도 설명했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충만했지만, 북한이 원하는 바를 충족하는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으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북한이 원한 ‘동시적·단계적 로드맵’에 대해 경계심부터 드러낸다. 과거 북한은 이를 비핵화의 단계를 잘게 쪼개 검증 등은 최대한 미루면서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는 ‘살라미 전술’로 연결해왔기 때문이다. 비핵화-제재 해제-평화협정의 동시 추진 요구는 애초에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과도 연결되는 문제였던 셈이다.

게다가 김정은은 지난 25일 열병식에서 한국을 향해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거침없이 위협했다.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이라는 모호한 조건을 걸어 핵 사용의 문턱을 낮췄다. 4년 전만 해도 핵 포기에 진심이었던 사람 치고는 변모가 놀랍다.

지난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경축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뉴스1

지난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경축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뉴스1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표현이 있다. 모든 조건이 같을 때는 가장 단순한 쪽이 정답이란 뜻이다. 지금의 상황도 연역적으로 유추해보면 애초에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진심이 아니었다는 게 답이 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여전히 생각이 다른 것 같지만 말이다.

②레드 라인은 여전히 ICBM에 그어져 있었다.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가 결국 원위치가 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그러면 5년 간의 평화는 어디 날아갔느냐”고 되물었다.

반대로 묻고 싶다. 5년간이 진정한 평화였나. 한국을 직접 겨냥하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도발은 너무 잦아 세다가 지칠 정도였고, 서해 창린도 해안포 사격과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총격 사건도 있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5년의 평화’를 자신 있게 말한다면 이유는 하나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의 ‘레드 라인’은 여전히 저 멀리,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그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레드 라인 안에서 일어나는 단거리 미사일 도발이나 총격 등은 여전히 ‘평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상춘재 옆 산책로에서 손석희 전 JTBC 앵커와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상춘재 옆 산책로에서 손석희 전 JTBC 앵커와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2017년 8월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레드라인을 묻는 질문에 “북한이 ICBM 탄도미사일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게 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금지선을 뜻하는 레드 라인은 통상 넘으면 외교적 상황에서 군사적 상황으로의 전환을 시사한다. 그런 레드 라인을 대놓고 명확히 그은 것도 부적절했지만, 한국을 노리는 단거리 미사일은 금기로 설정하지 않은 것도 논란이 됐다.

하지만 5년 뒤에도 이런 생각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JTBC 대담에서도 “(최근)ICBM이 발사됐고, 이것은 분명히 레드 라인을 넘는 것”이라고 또 말했다.

③모든 외교의 중심은 북한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문 대통령의 평가는 후했다. 그런데 이유가 전부 북한이었다.

지난 2019년 9월 유엔 총회 참석차 방미한 문재인 대통령이 뉴욕 인터콘티넨탈 바클레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 2019년 9월 유엔 총회 참석차 방미한 문재인 대통령이 뉴욕 인터콘티넨탈 바클레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미국 내에서 북한과의 협상에 호의적이지 않은데 이를 무릅쓰고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났다” “북한을 압박하려는 공화당 분위기 속에서 조건만 맞으면 거래할 수 있다는 태도가 우리로선 굉장히 좋았다” 등이었다.

수시로 주한미군 철수를 들먹이며 협박하고, 무임승차하지 말라며 방위비 대폭 증액을 요구해온 트럼프가 한·미 동맹을 훼손했다는 일반적 평가와는 괴리가 컸다.

방위비와 관련해서도 문 대통령은 “한꺼번에 다섯 배를 올려달라고 해서 거절했다. 그는 이런 주장의 차이를 당연하게 여겨줬고, 이를 다른 문제와 섞지 않았다. 그런 점이 상당히 괜찮았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지난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하지만 사실 트럼프가 방위비 협상 첫 회의가 열린 2018년 3월 당시 처음 요구한 금액은 1.5배 증액, 약 1조 4400억원이었다. 중간에 있었던 5배 요구는 일종의 협상 전술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정부가 미국과 합의한 방위비 인상 폭대로라면 방위비협정 마지막 해인 2025년에는 한국이 내는 방위비 총액이 1조 5000억원까지 인상될 수 있다. 트럼프가 처음 바라던 총액을 넘어서는 셈이다.

결국 보증금을 올리지 않는 대신 월세를 대폭 올린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트럼프에 대해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저는 아주 좋았다”고 했다.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했기 때문이다. 외교의 중심을 북한에만 두고 있다는 임기 내내 제기된 우려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손석희 전 JTBC 앵커와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손석희 전 JTBC 앵커와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을 대화로 견인하려는 문 대통령의 노력은 진심이었겠지만, 이런 신념들 하나하나가 결국 예상했던 한계를 드러낸 결과가 지금의 초라한 남북관계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것(남북관계 개선)이 끝까지 성사되지 못한 데 대해 여러 가지 아쉬움이 있는 것이지, 그 과정이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왜 비판하느냐”는 말도 이 대목에서 나왔다.

왜 비판하는지 답한다면, 냉혹한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그것도 북한 같은 상대를 다루는 데 있어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만 했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거나 부정할 수도 있는 게 외교다.

만약 외교에서 ‘졌잘싸’가 의미 있으려면 미래로 연결되는 관계가 담보돼야 한다. 당장은 아쉬운 결과가 나왔더라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면, 지금 잘 싸운 과정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수틀린다고 연락사무소를 폭파해버리는 북한과 어떻게 미래의 관계를 담보하며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겠나.

남북관계는 노력했다는 과정만으로도 인정받는 올림픽이 아니다. ‘졌잘싸’는 변명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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