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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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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호 30면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2020년 7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김태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자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민주당은 소위원회 심사, 찬반 토론, 공청회 한 번 없이 열흘 만에 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지지자들은 환호했고 주거비용 폭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적폐들의 몸부림’으로 무시됐다. 문재인 정부 5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단 한 장면을 꼽으라면 빠질 수 없는 순간이다. 이후의 참사는 예상 대로다.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값은 2020년 7월 5억원에서 이번달에는 6억7000만원으로 34% 올랐다.

똑같은 일이 검찰 수사권을 놓고 다시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열흘 앞으로 다가온 문 대통령 퇴임 전에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을 달성하겠다고 나섰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단독 기립표결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국회 회기를 쪼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막았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인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은 “지난 5년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명분 없는 야반도주까지 벌여야 하는지 국민께서 많이 궁금해하실 것”이라고 비판했다.

‘잘드는 칼’ 당장 치우자는 조급함
준비 없는 임대차법의 전철 밟나

우리나라 검찰이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가졌다는 비판은 일면 타당한 구석이 있었다. 기소권을 독점해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재판조차 열지 못했고, 직접 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지휘권을 모두 갖고 있어 언제라도 수사를 개시하고 종결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를 비판했지만 처음부터 ‘잘 드는 칼’을 멀리하지는 않았다. 특수부 검사를 늘려 ‘적폐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2019년 7월에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 대한 유죄 판결을 끌어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했다.

태도가 바뀐 것은 그해 말부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비리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강행하자 검찰 권한 축소에 나섰다. 지난해 초부터 검·경 수사권을 조정해 6대 범죄(부패·경제·고위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 대해서만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겼다.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신설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검찰 개혁은 지난달 대선에서 윤 당선인이 승리하자 ‘검수완박’으로 되살아났다. 이젠 6대 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권마저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민주당이 법 개정을 위해 법사위에 보임했던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민주당 인사들이)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황운하 의원은 “검찰 수사권을 폐지한다고 해서 6대 범죄 수사권이 경찰로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증발한다”며 법 개정의 선봉에 섰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새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검찰 힘을 빼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판사·검사·변호사는 물론 법학 교수들까지 검찰 수사권 폐지를 우려한다. 꼭 필요하다면 ‘한국형 연방수사국(FBI)’이라 불리는 중대범죄수사청(가칭) 설치부터 할 일이다. 임대차법부터 덜컥 개정해 놓고 전세값 급등, 월세 급증을 불러온 전철을 또다시 밟을 참인가.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고 독백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재기를 다짐하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불타버린 애틀랜타와 떠나버린 남편, 폐허가 된 타라 농장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검찰 수사권을 박탈한다고 당장 대한민국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법질서를 새로 세우는 길고 고통스런 과정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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