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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파일] 보도사진과 모자이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86호 31면

전민규 사진팀 기자

전민규 사진팀 기자

“지금 제 얼굴 찍으신 건가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다가와 말한다. 그리고 언짢은 표정으로 당장 지워 달라고 요구한다. MZ세대가 많이 찾는 서울 ‘힙지로’를 카메라에 담던 중 겪은 일이다. 야외에서 사진을 찍다 보면 부득이하게 사람을 포함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날씨나 절기, 장소 등을 알리기 위한 취재가 대표적이다. 넓은 공간을 촬영하는 경우 사람을 빼고 찍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사진에 찍힌 모든 사람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도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언론 대부분은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의 얼굴을 모자이크 등의 방법으로 가린 채 게재한다. 얼굴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사진은 어색하다 못해 살짝 괴기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원인은 초상권 보호에 있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개인은 동의 없이 촬영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초상권자 동의 없이는 사진을 언론 등을 통해 공표할 수 없다. 초상권에 관한 직접적인 조항은 없지만,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과 제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관한 조항’이 근거다. 인파가 몰린 장소를 촬영한 사진 한쪽에 작게 찍힌 얼굴이라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고, 심지어 공공장소서 열린 행사에 참가한 사람을 찍는 데도 동의가 필요하다. 공공의 목적으로 사진을 사용했다고 해도 초상권자의 ‘동의’가 없었다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때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은 대부분의 경우 초상권자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시민들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시민들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돼 있다. [연합뉴스]

영미권은 상황이 좀 다르다. 국제법 전문가인 고려대 법학대학원 박경신 교수는 “미국 등에서 초상은 다른 사람이 나를 인식하는 증표로 여길 뿐”이라며 “자기 얼굴의 이미지를 절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초상권을 개인의 소유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개된 장소에서 많은 사람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얼굴이 언론에 공표된 경우라면 초상권을 주장하기 어렵다. 외신 사진기자들이 전송하는 다양한 사진에 모자이크가 없는 이유다.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거나 명예훼손 또는 금전적 손실 등을 끼치지 않는다면 공공장소에서 사람을 찍거나 이를 공표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초상권은 언론 보도의 자유보다 개인 인권에 더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공개된 곳에서 찍힌 사진을 두고도 초상권자가 주관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어디까지 인정해 줄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언론에 게재됐다는 사실만으로 증명하기 힘든 피해에 대해 매번 조정과 보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공적 영역의 취재는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 등 국내 대부분 언론사가 사진 출고 전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았는지 빠짐없이 체크하게 된 이유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틀어 ‘기록’의 중요성에는 이견이 없다. 우리는 이미 떠난 사람들이 남겨 놓은 작은 기록의 조각을 모아 그 시대의 삶을 엿본다. 기록이 없다면 기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기록한 사진에서 유대인들의 얼굴이 모자이크로 가려져 있다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를 수 있다. 개인의 인권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하긴 하지만, 그로 인해 한 시대의 주인공이 모자이크된 채로 역사의 기록에 남게 되는 건 안타까운 사실이다. 세월이 흐른 뒤 2022년을 기록한 사진에 온통 모자이크된 얼굴뿐이라면 후손들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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