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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때로 교육 퇴행, 일본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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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호 27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5월 일본에서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교육과 애국’의 스틸. 오사카 방송국 MBS가 2017년 방송한 프로그램을 영화화한 것으로 일본 정부가 교육에 개입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그렸다. [사진 MBS]

5월 일본에서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교육과 애국’의 스틸. 오사카 방송국 MBS가 2017년 방송한 프로그램을 영화화한 것으로 일본 정부가 교육에 개입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그렸다. [사진 MBS]

일본은 신년도가 4월에 시작한다. 그래서 4월 초가 되면 새로운 마음으로 조금 설레기도 한다. 그런데 올해 4월 초 아사히신문 기자들은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일이 회사에서 일어났다” “동료지만 이해하기 힘들다” 등 SNS 상에 잇따라 비장한 글을 올렸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사히신문 편집위원 미네무라 겐지 기자가 아베 신조 전 총리에 관한 기사를 발행 전에 보여 달라고 잡지사에 요구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과 관련 없는 주간다이아몬드의 기사다. 더 충격적인 것은 미네무라 기자는 그 잡지사 담당자한테 “아베 전 총리가 인터뷰 내용을 걱정하고 있다. 내가 (아베 전 총리의) 모든 고문을 맡고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잡지사에서 항의를 받은 아사히신문은 내부 조사를 실시하고 미네무라 기자에 대해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발행 전에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기자로서 하면 안 되는 일인 건 물론, “아베 전 총리의 고문”을 운운한 것은 아사히신문의 공정성까지 의심받을 만한 일이다. 성실하게 취재하고 집필하는 많은 기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아사히신문 기사에 의하면 미네무라 기자는 아베 전 총리의 친구로서 외교·안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라고 한다.

일 정부 교육 개입 다룬 다큐 곧 개봉

5월 일본에서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교육과 애국’의 스틸. 오사카 방송국 MBS가 2017년 방송한 프로그램을 영화화한 것으로 일본 정부가 교육에 개입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그렸다. [사진 MBS]

5월 일본에서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교육과 애국’의 스틸. 오사카 방송국 MBS가 2017년 방송한 프로그램을 영화화한 것으로 일본 정부가 교육에 개입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그렸다. [사진 MBS]

아베 정권은 한국에서 보면 역사 문제나 수출 규제 등 외교 문제가 부각됐지만, 사실 일본 국내에서는 언론과 교육에 관한 개입도 큰 문제였다.

5월에 일본에서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교육과 애국’은 정부가 교육에 개입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그렸다. 오사카 방송국 MBS가 2017년 방송한 프로그램을 영화화한 것이다. 개봉을 앞두고 여러 매체가 크게 보도하는 걸 보고 MBS 소속 사이카 히사요 감독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사이카 감독은 “일본의 교육 문제는 한국과도 연관이 깊어서 한국에서도 영화제 등을 통해 관객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애국’이라는 단어를 보면 2002년 처음 한국으로 유학 왔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다니던 동네 태권도 체육관에서 아이들이 가슴에 손을 대고 큰 목소리로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이다. 일본 국가는 힘차게 노래할 만한 멜로디도 아니지만, 천황을 찬미하는 노래였던 과거도 있어서 나는 소리를 내서 노래한 적이 없다. 졸업식 등 노래해야 할 기회는 있었지만 나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도 선생님도 소극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해맑게 애국가를 노래하는 한국 아이들을 보고 신기했다.

2006년 제1차 아베 정권 때 교육기본법이 개정되고 교육 목표에 ‘국가와 향토를 사랑하는’이라는 말이 새로 들어갔다. ‘애국심을 강요해도 되냐’는 반대 의견도 있었고 나도 거부감을 느꼈지만, 2012년부터 시작된 제2차 아베 정권 하에서 본격적으로 교육이 바뀌기 시작했다.

5월 일본에서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교육과 애국’의 스틸. 오사카 방송국 MBS가 2017년 방송한 프로그램을 영화화한 것으로 일본 정부가 교육에 개입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그렸다. [사진 MBS]

5월 일본에서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교육과 애국’의 스틸. 오사카 방송국 MBS가 2017년 방송한 프로그램을 영화화한 것으로 일본 정부가 교육에 개입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그렸다. [사진 MBS]

영화 ‘교육과 애국’은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도덕은 2018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정식 과목이 됐다. 내가 초등학생 때도 도덕 시간이 있었지만 교과서는 없고 그냥 다 같이 놀거나 다른 과목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뭘 가르치나 궁금했다. 영화에 나오는 교과서를 보면 ‘예의 바른 인사’를 선택하는 문제가 나오고,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면서 절을 하는지, 말한 다음 절을 하는지, 말하기 전에 절을 하는지 세 가지 답에서 고르게 돼 있다. 정답은 말한 다음에 절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 순서를 의식해서 인사한 적이 없다. 사이카 감독은 “말을 안 하고 절을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정하면 그것이 정답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교육과 애국’에서는 일본의 새로운 도덕 교과서를 보여준 다음, 태평양 전쟁 시 미국이 만든 영화를 보여준다. 적국 일본에 대해 알아보자는 의도로 만든 영화로 당시 일본의 교육에 대해 그렸다. “정부가 선택한 사실이나 인정한 사상만 가르친다” “교육의 목적은 똑같이 생각하는 아이들을 대량 생산하는 것”이라는 미국 영화 속 설명을 듣고 새로운 도덕 교과서와의 공통점을 알았다. 의미는 가르치지 않고 시키는 대로 따르게 하는 교육. 현재의 교육이 태평양 전쟁 중의 교육에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 관해서는 제1차 아베 정권 전부터 변화의 징조가 있었다. 영화 ‘교육과 애국’에는 2004년 도산한 출판사의 사례가 나온다. 출판사 ‘일본서적’이 만든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원래 도쿄 23구 모든 구가 채택했었는데 위안부에 대한 기술 때문에 채택하는 구가 2구로 급감했고, 결국 출판사는 도산했다. “조선 등 아시아 각지에서 젊은 여성들이 강제적으로 수집되고 일본 병의 위안부로서 전장에 보내졌습니다”라는 내용으로 학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집필한  기술이었지만, 다른 출판사들이 위안부에 대한 기술을 삭제하는 흐름에 역행했기 때문이다.

사이카 감독은 그 배경에 1997년 발족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교과서는 자학사관에 젖어 있다고 비판하고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자고 모인 단체다. ‘위안부’라는 기술을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일본군의 잘못을 가르치지 않는 방향으로 활동해왔다.

아이들에게는 역사 교육 선택지 없어

사이카 히사요 감독

사이카 히사요 감독

한편 교사들이 중심이 돼서 만든 출판사 ‘마나비샤’의 교과서는 위안부에 대해서도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끔 기술했다. 2016년부터 채택됐는데 중학교 교과서로는 10년 만에 위안부에 대한 기술이 부활해서 화제가 됐다. 그런데 그 교과서를 채택한 사립 중학교에 대량의 항의 엽서가 오기도 했다. ‘위안부에 대해 기술한 마나비샤의 교과서는 쓰지 말라’는 똑같은 문장이 인쇄된 엽서도 많았는데 대부분 보낸 사람은 익명이었다고 한다. 조직적으로 보낸 것이다.

사이카 감독에게 정부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는지 물어봤더니 “압력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를 위해 추가로 취재를 하려고 했을 때 교과서 검정이나 편집, 인쇄 관계자들이 대부분 취재를 거절했다고 한다. 사이카 감독은 “취재에 응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는다는 게 이유였다. 몇 년 사이에 분위기가 더 심각해졌다”고 했다.

아베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가 요시히데 정권 하에서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는 결정을 했고, 실제로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들이 ‘위안부’ ‘동원/징용’으로 수정했다. 이것도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교과서에 쓰인 이른바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 계기가 됐다. ‘종군’이라는 말은 ‘군에 인한 강제연행’이라는 잘못된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사이카 감독은 “학술적으로 쌓아온 역사적 사실을 근거 없이 부정하는 정치인들이 오히려 인기가 많고 그걸 비판하는 목소리가 작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은 아이들이 역사적 진실을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게 문제다. 아이들한테는 선택지가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교육과 애국’ 포스터. [사진 MBS]

다큐멘터리 영화 ‘교육과 애국’ 포스터. [사진 MBS]

일본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흔히 헌법 개정을 위해 교육부터 바꾸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사이카 감독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변화를 살펴보면 중국과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사이, 일본 경제의 위상은 계속 떨어지고 자신이 없어진 것도 원인의 하나인 것 같다”고 했다. ‘강한 일본’을 강조한 아베 전 총리가 생각난다.

K팝을 비롯해 한국 문화에 관심 많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면 한국에 유학이나 여행 오는 경우가 늘어날 텐데, 와서 역사 인식 차이에 놀라지 않을까 싶다. 교과서를 바꾼 결과가 앞으로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다.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전 아사히신문 기자.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동국대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2020년 한국에서 에세이집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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