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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 아니면 괜찮다? 사외이사 출신 내각 후보자의 내로남불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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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호 26면

콩글리시 인문학 

미국은 50개 주가 각기 독립국 성격을 가지고 있어 소득세(income tax)와 판매세(sales tax) 체계도 주별로 다르다. 미국에서 판매세가 가장 높은 주는 뉴욕으로 8.82%인데(2020년 기준) 비해 오리건, 델라웨어, 몬태나, 뉴햄프셔 4개 주는 판매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뉴욕에 인접한 뉴저지 주의 sales tax는 6.6%다. 값비싼 물건을 살 때는 다리나 터널 하나만 건너면 뉴저지니까 그곳으로 가는 뉴요커가 많다. 심지어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고가 물품을 사기 위해 오리건까지 차를 몰고 가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지금은 일반화된 해외 직구 물품들이 오리건에서 많이 들어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느 장관 후보자는 경기도가 서울보다 차 살 때 매기는 세금이 싼 것을 알고 위장 전입하고 세금 혜택을 보았다. 주민등록을 경기도로 일시 옮긴 것이 위법이나 불법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잣대는 엄격한데 이걸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11개 겸직왕’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숱한 흠결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자 인수위는 ‘팩트(fact)’가 나와야 한다고 감싸더니 여론이 차갑게 돌아가자 뜬금없이 ‘40년 지기(知己)’가 아니라고 절친을 외면한다.

정의당의 데스노트(death note, 콩글리시다)에 4명의 후보자 이름이 오르자 ‘위법은 없으니’ 청문회 끝나고 보자고 강변한다.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가 주민등록법을 위반했는가 하면, ‘풀브라이트 가족’ 대학 총장 출신은 재임 중 대기업 사외이사 자리를 셀프 허가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는 SK, LG 등 대기업 사외이사 3관왕을 기록했고 총리후보자는 외국계 S오일의 사외이사로 뒷배 노릇을 했다. 이들 지명자가 임명되면 이번 내각은 ‘사외이사 출신으로 구성된 내각’으로 불릴 만하다(If these nominees are appointed, the incoming cabinet might be called the ‘Cabinet of outside directors’. The Korea Times). 사외이사 출신 후보자가 7명에 이른다.

사외이사란 회사 경영진에 속하지 않는 미상무(未常務) 이사로서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경영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이를 선임하게 돼 있다(상법 제382조 3항). 외환 위기 이후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가 퇴직 고위관료들의 꿀알바 자리로 변질했다. 우리 사회에 관료 법조인 교수와 대기업, 정부, 대형금융, 권력 간에 유착관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 핵심 고리가 로펌 고문과 대기업 사외이사, 그리고 한국과학재단이 지원하는 초빙교수제도다. 로펌의 연봉은 2억~5억원 안팎이고 사외이사는 1억원 내외, 장차관급 출신 초빙교수는 적만 걸치면 월 300만원 이상 받는다. 윤석열 정부의 인사기준은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의 7가지 기준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다만 전혀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새 정부는 오로지 실력만 보고 발탁해 쓴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력 있는 인물’은 당선인의 지인들이 아닌가 싶다. 인재를 초빙하려 해도 청문회 무서워서 응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나온 정치권의 궁여지책이 자질검증과 도덕검증을 별도로 하자는 안이다. 이건 난센스다. 자질과 도덕은 표리의 관계에 있다. 새 정부가 문 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인사부터 달라야 한다. 지금까지 인수위는 집무실 용산 이전 논란과 시내 주행속도 60km 조정 그리고 연 나이, 만 나이 논란 외에는 국민에게 보여준 것이 없다.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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