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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계 왕자 vs 최장신 몽룡,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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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호 18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국립창극단 ‘춘향’ 두 주역 김준수·김수인

국립창극단 ‘춘향’에서 이몽룡 역할을 맡은 소리꾼 김준수(오른쪽)와 김수인. 정준희 기자

국립창극단 ‘춘향’에서 이몽룡 역할을 맡은 소리꾼 김준수(오른쪽)와 김수인. 정준희 기자

“사람들이 창극의 매력을 아직 몰라서 그렇지, 뮤지컬처럼 다 일어나서 기립박수 칠 날이 꼭 있을 거에요.”

2016년 가을 처음 만났던 국립창극단의 막내 소리꾼 김준수(31)의 패기를 또렷이 기억한다. 그의 예언은 지난 3월말 창극단의 신작 ‘리어’에서 보란듯이 실현됐다. 공연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석매진됐고, 초연으로선 보기 드문 무대 완성도와 배우들의 절절한 노래, 연기에 객석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그사이 김준수는 창극단의 간판이 됐을 뿐 아니라, 지난해 JTBC ‘풍류대장’ 준우승으로 대중스타가 됐다. ‘리어’에서도 타이틀 롤을 맡아 셰익스피어 히어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런데 이 무대에서 자꾸 눈길을 뺏는 ‘씬스틸러’가 있었으니, 악역 에드먼드 역을 맡았던 창극단의 막내 김수인(27)이다. 184㎝의 훤칠한 외모에 선굵은 소리, 유려한 몸짓으로 스타성이 엿보인다 싶더니, 아니나다를까 차기작 ‘춘향’(5월 4~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김준수와 함께 몽룡 역에 더블캐스팅됐다. 지난해 입단 후 첫 주역 데뷔인데, 아마도 ‘역대 최장신 몽룡’으로 기록될 것 같다.

수인, 4살 때 흥보가 부른 국악 신동

“춘향전은 제일 많이 본 창극인데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어요. 창극하는 사람으로서 꼭 해보고 싶었는데, 주역 데뷔까지 하게 돼서 기쁩니다. 설렘 반 걱정 반이에요. 연습기간이 짧은 편이라 엄청 집중해야 하죠. 준수 형 도움도 많이 받고 있고요.”(수인) “연습이 끝나도 매일 남아서 서너시간씩 개인 연습을 하더라고요. 대견해서 뭐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저도 덩달아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수인이 보면서 제가 배우는 것도 많아요.”(준수)

2013년 대학 재학생 신분으로 창극단에 최연소 입단해 화제몰이를 했던 준수가 후배를 살뜰히 챙기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니 그림이 다소 낯설다. ‘창극계 프린스’의 위치를 위협하는 슈퍼루키의 등장에 경계심이 생기진 않을까. “그동안 제가 거의 막내였지만 앞으로 어린 후배들이 더 많이 들어올텐데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죠. 수인이가 위협이라기보다 수인이만 할 수 있는 것도 있을 테고, 제 몫도 있을거라 생각해요. 점점 각자의 캐릭터가 드러나겠죠.”(준수)

두 사람은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선후배 사이지만, 사실 판소리 입문으로 치면 수인이 선배다. 어머니가 전주에서 활동하는 김선이 명창이라 뱃속에서부터 소리를 익혔고, 돌이 지날 무렵 판소리 단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해 4살 때 흥보가, 심청가의 눈대목을 완벽하게 불러 ‘국악신동’으로 기사화되기도 했다.

“집안에 음악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제 입장에선 수인이 같이 국악 집안 신동 출신이 부러워요. 힘들고 지칠 때 가까운 사람에게 기대고 싶기도 하잖아요. 물론 수인이도 어려움이 있었겠죠.”(준수) “어머니 덕에 어릴 때부터 소리를 했지만, 신동은 아니었어요.(웃음) 그런 기대치가 오히려 부담스러웠죠. 변성기가 왔을 때 소리를 포기하고 한동안 무용을 했는데, 고2때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형이 롤모델이었죠. 한창 공부하면서 국악계 소식을 많이 접할 때, 대학생이 창극단에 입단했다고 화제였거든요. 형이 학교에 방문하면 우러러보고, 형 공연 보러 다니면서 꿈을 키웠는데, ‘성덕’ 된 기분이네요.(웃음)”(수인)

‘춘향’의 사랑가 장면. [사진 국립극장]

‘춘향’의 사랑가 장면. [사진 국립극장]

창극 ‘춘향’의 시그니처 장면은 춘향과 몽룡이 첫날밤을 보내는 ‘사랑가’ 대목이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로 시작하는 익숙한 대목이지만, 김명곤 연출이 발림을 넘어 무용극 수준으로 안무를 강화해 새로운 장면으로 뽑아냈다. 배우들은 춤추랴 노래하랴 정신없지만, 무용이 장기인 수인의 활약이 가장 기대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춤추면서 노래하는 정말 중요한 장면인데, 형을 보면서 깨닫는 게 많아요. 저는 무용을 배웠다고 카운트를 세면서 기계적으로 움직여 왔는데, 창극의 몸짓이 아니라 여기는 소리, 여기는 무용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형을 보며 손 하나를 펴고 팔을 들 때도 감정선이 들어가야 한다는 걸 배웠죠. 형만 쳐다보면서 연습하고 있습니다.(웃음)”(수인)

“수인이는 그 장면에서 날라다녀요.(웃음) 수인이를 보면서 10년 전 제가 첫 주연을 맡았을 때가 떠오르긴 하죠. 남상일 선생님과 ‘배비장전’에 더블캐스팅 됐는데, 희극적이면서도 양반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지점이 어린 나이에 너무 어려웠거든요. 선생님들에게 말도 잘 못붙이고 망설이면서 혼자 헤매던 기억이 있어서 수인이에게 신경을 쓰게 되요. 수인이가 빨리 캐치업하도록 도와주는 게 제 책임인 것 같습니다.”(준수)

춘향가는 창극의 대명사다.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협률사에서 시도한 첫 창극이 ‘춘향전’이었고, 1962년 국립창극단의 창단 작품도 ‘춘향전’이었다. 많이 공연된 만큼 기시감도 드는데, 두 사람은 드라마틱한 음악과 대극장을 채우는 군무의 스펙터클을 새로운 관전포인트로 꼽았다.

“춘향가의 소리가 익숙하긴 하지만, 작곡가 김성국 선생님이 전통 수성반주 어법과는 차별화된 음악을 만들어 주셨거든요.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한 분위기가 음악으로 조성되는 것 같아요. 봄냄새가 나는 음악도 있고요. 늘 해왔던 작품이지만 그런 신선함이 분명히 있습니다.”(준수) “이번에 새로 추가된 서곡도 그렇고, 마치 드라마 음악처럼 친근하고 현대적인 감성이라 빠져들기 쉬운 음악인 것 같아요. 사랑가 대목도 전통소리지만 반주음악 덕분에 춤이 절로 나올 정도죠. 음악으로 소리를 포용하듯이 받쳐주니, 애틋한 감정선도 자연스럽게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수인)

준수는 풍류대장 이후 인지도가 급상승하고 전국 콘서트 투어, 뮤지컬 출연 등 외부활동도 많아졌다. 하지만 그의 태도에 변한 건 없었다. 창극단 공연이 여전히 최우선이고, 전통 소리 전도사가 되겠다는 초심도 그대로였다.

“여기선 그냥 단원일 뿐이니까요. 풍류대장 콘서트는 5월 마지막 콘서트가 남아 있지만 ‘춘향’ 기간과 겹쳐서 함께 못하게 됐어요. 국악이 중심이 되는 대형 콘서트는 처음이었는데, 아이돌이 공연하는 곳에서 국악팀들이 많은 관객을 만나다니,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콘서트의 열기가 이런 거구나 싶고. 많은 분들이 국악도 콘서트홀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장르라는 걸 모르고 살아서 미안하다고 하셔서 기분이 묘했어요.”(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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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 ‘전통 소리 전도사’ 초심 지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통의 소리를 들려주겠다는 목표로 출연했던 ‘풍류대장’은 신세계였다. 전국에서 모여든 젊은 국악인들이 보여주는 저마다의 스타일에 충격도 받았다. “정말 많은 팀이 있고 모르는 사람도 많더군요. 각자 추구하는 스타일이 너무 다양하다 보니, 그들의 도전 덕분에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빠져들 국악의 매력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죠. 하지만 저는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는게 판소리고, 정통소리의 매력을 알리러 나간거라 우리 소리의 비중을 크게 가져갔어요. 우리 국악계를 많이 보여드리고 싶고, 완창판소리를 찾아주는 분도 많아졌으면 하는 게 제 목표였죠.”(준수) “형의 색다른 모습 보면서 저도 시야가 넓어졌어요. BTS 슈가의 ‘대취타’나 요즘 노래들에도 꼭 소리구조를 넣었는데, 전통 판소리와 현대음악이 이렇게 어울릴줄 몰랐거든요. 우리가 전통을 굳이 가둬놓을 필요 없겠구나 싶었죠. 저도 레퍼토리를 쌓아서 시즌2에 도전하려고요.”(수인)

풍류대장 직후 출연했던 뮤지컬 ‘곤 투모로우’에서 준수는 드디어 전석 기립박수를 맛봤다. 물론 기립박수가 뮤지컬 전매특허는 아니다. “막상 뮤지컬에 출연해 보니 비극이라 내내 무거운 분위기가 익숙지 않아 힘들었어요. 하지만 커튼콜 기립박수에는 벅차오름이 있더군요. 이런 광경이 우리한테도 벌어지면 좋겠다 싶었는데, 곧바로 ‘리어’에서 기립박수가 나온 거예요. 창극하면서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더군요. 풍류대장 이후 창극을 본 적 없는 관객분들이 창극을 궁금해 하시고 찾아와주신 것도 개인적으로 뿌듯했습니다.”(준수)

셰익스피어 비극을 원작으로 한 ‘리어’가 배우들에게는 역대급 고난도였다는 후문이다. ‘리어’는 연극계에서도 대가들만 도전하는 어려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도 “정극의 뜨거운 맛을 봤다”고 입을 모았는데, 관객으로서는 창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무대였다. 제사장처럼 객석에 모인 사람들을 압도하는 ‘히어로’의 카리스마를 창극 배우에게서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객석을 일제히 기립시키는 창극계 슈퍼 히어로로 성장해 갈지, 창극 팬들에게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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