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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조작하고 유령회사? 슬슬 드러나는 600억 횡령 전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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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28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 직원이 유령회사를 세워 회삿돈 600억원가량을 빼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문서를 위조해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돈을 송금했다가 다시 개인계좌로 이체했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은 10년 가까이 횡령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우리은행에 이어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에도 현장검사에 나섰다.

29일 우리은행 공시에 따르면 기업개선부 차장급 직원 A씨는 2012년부터 6년 동안 3차례에 걸쳐 614억5214억원(잠정치)을 횡령했다. A씨가 빼돌린 자금은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에 참여한 이란의 가전업체 엔텍합이 지불한 계약금(578억원)이 포함됐다. 채권단은 그해 12월 투자확약서(LOC) 불충분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계약금을 몰수했다. 이후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 가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ㆍ국가 간 소송(ISD)에 2019년 최종 패소했다. 최근 우리은행이 다야니 측에 배상금을 갚기 위해 계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횡령 사실이 드러났다.

A 씨의 횡령 계획은 상당히 치밀했다. 엔텍합과 한국 정부의 소송 등으로 계약금이 법원 공탁금으로 묶여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탁금은 합의금ㆍ배상금 등을 둘러싼 다툼이 생길 때 법원이 최종 판결이 나기 전까지 맡아두는 돈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A 씨는 공탁금 600억원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유령회사를 세워 빼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우리은행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최대주주(지분 57.4%)였던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매각 주관사이자 주채권은행이었다. A씨는 매각주관 등의 관리 주체를 우리은행에서 캠코로 변경한다는 식으로 문서를 꾸민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임시로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가 캠코 산하 회사인 것처럼 위장해 공탁금 계좌의 자금을 유령회사 계좌로 송금한 뒤, 다시 개인 계좌로 이체했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은 29일 긴급회의를 열어 대규모 횡령이 발생한 우리은행의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도 현장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금감원 측은 “회의 결과 우리은행의 외부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에 대한 회계감사 적정성 여부 등을 파악하기 위한 현장 조사를 금일 내로 착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횡령 사태가 발생한 기간(2012~2018년)에 우리은행의 외부 회계감사를 맡은 곳은 안진회계법인이다.

앞서 정은보 금감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회계법인이 외부 감사를 하면서 왜 이런 것을 놓쳤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며 “어떤 연유로 조사가 잘 안 됐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A씨에 이어 그의 동생 B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28일 긴급체포했다. A씨는경찰조사에서 ‘횡령금 전부를 인출했고, 일부는 파생상품에 투자하고, 일부는 동생이 하는 사업에 투자했지만 잘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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