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석 합의·尹측과 엇박자…밑천 드러낸 국힘에 당내서도 탄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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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여당인 국민의힘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국면에서 고전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중심을 못 잡고 우왕좌왕하고 있고, 치열한 토론으로 당 리스크를 최소화했어야 할 의원총회도 요식 행위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승부수'였다는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의 국민투표 제안도 권성동 원내대표가 미지근하게 반응하는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과 당이 묘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검수완박 법안의 국회 통과가 목전인데 당내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초선의원)는 탄식이 나오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위기국면에서 국민의힘의 실력이 밑천을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상임위원장, 간사단 의원들이 27일 국회 본관 2층 계단에서 열린 '검수완박 강행처리 저지를 위한 연좌농성 선포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상임위원장, 간사단 의원들이 27일 국회 본관 2층 계단에서 열린 '검수완박 강행처리 저지를 위한 연좌농성 선포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무엇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졌다. 21일만 해도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속도와 내용, 시기 모두 부적절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날을 세웠던 권성동 원내대표의 덜컥 합의가 시작이었다. 다음날 그는 “소수 정당이 할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에 합의했다. 40명 남짓 참석한 의원총회는 별다른 저항 없이 중재안을 추인했다.

이후 여론이 악화하고, 윤 당선인 측도 우려를 표하자 국민의힘 최고위원회가 합의 3일 만에 여야 합의안을 뒤집었다. 권 원내대표는 “제 판단 미스”라고 고개를 숙였고,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붕괴시킬 게 뻔한 이 악법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내부에서조차 “합의 번복으로 투쟁할 동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당 관계자)는 자조가 나왔다. 검수완박을 밀어부치는 민주당은 불리한 국면마다 "그럴거면 중재안엔 왜 합의했냐"고 반격을 취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답변은 궁할 수 밖에 없다.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윤 당선인 측과 국민의힘도 고비마다 덜컥거렸다. 중재안 합의 뒤 윤 당선인 측이 판을 뒤집으면서 당선인과 권 원내대표의 ‘미스 커뮤니케이션’ 논란이 불거졌다. 장제원 비서실장이 승부수로 꺼내 든 국민투표 카드를 두고도 엇박자가 나왔다. 권 원내대표는 “(윤 당선인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연락을 받은 것은 없다”며 “민주당의 망상을 깨는 차원에서 나온 아이디어 아닌가”라고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장 비서실장은 이날도 “국회가 빨리 입법 보완을 해줘야 한다”며 국민의힘 측에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야한다는 시그널을 줬지만, 당내에서는 “다수당인 민주당이 법 개정에 협조할 지 의문”(당 관계자)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3선 의원은 “당내에서 국민투표에 사활을 걸고 밀어붙이자든지, 아니면 후퇴하자는 식의 명확한 지침도 없다”며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민주당은 검수완박 법안을 본회의 문턱까지 끌고 왔고, 사개특위 구성까지 밀어붙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시작부터 스텝이 엉킨 국민의힘 측의 대응에 대해선 "전략적이지 않다"거나 "즉흥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낮은 카드뿐"이란 박한 평가가 당 내에서도 나온다. 27일 국민의힘의 본회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는 민주당의 ‘회기 쪼개기’로 6시간 48분 만에 무력화됐다. 필리버스터 후반부에는 민주당 의석은 물론 국민의힘 의석까지 텅 비다시피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애초에 법안을 저지하기 힘든 형식적인 대응책이라 의원들도 기대를 안 했다”고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강행처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강행처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측에선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 등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아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사전심사에만 최대 한 달이 걸리는 등 기약이 없고 그사이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묘수로 보긴 어렵다. 검수완박을 거부하는 액션을 보여줘야 한다는 차원의 예정된 대응"(초선 의원)이란 반응이 많다. 2020년 공수처법 개정안이 논란이 됐을 때도 국민의힘 측에서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민의힘 측은 이날 헌재에 검수완박 법안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취지로 권한쟁의심판청구서도 제출했다.

권 원내대표는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지만, 실현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권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을 직접 만나 검수완박 악법의 위헌성과 위법성을 설명하겠다”며 면담을 요청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끌어내려는 전략이라기보다는 ‘압박성’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문 대통령에게 심정적 부담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검수완박을 저지할 묘책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7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입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검수완박 입법독재를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고있다. 김상선 기자

27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입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검수완박 입법독재를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고있다. 김상선 기자

국민의힘이 헛바퀴를 돌리는 사이 검찰청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턱밑까지 왔다. 30일 검수완박 법안의 다른 한 축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의힘 측의 필리버스터가 예정돼 있지만 이 역시 힘없이 조기 종료될 가능성이 크다. 이날 야당에서는 뚜렷한 타개책이 없는 현실에 대한 탄식도 흘러나왔다. 성일종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견제장치인 안건조정위는 휴짓조각이 되고 필리버스터는 짓밟히는 것이 힘없는 예비 여당의 실상”이라며 “슬프지만, 소수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꼼수 행진에도 불구하고 윤 당선인 직무 수행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건 국민의힘의 고민거리다. 이날 공개된 한국갤럽의 26~28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당선인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43%, 부정평가는 44%였다. 부정 평가의 이유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35%), 인사(14%), 독단적·일방적 스타일(7%) 순이었다.수평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문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45%였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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