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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5주년 이창동 "OTT 제안 여러번 받아…관객 소통 넓히고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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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감독 알랭 마자르가 이창동 감독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이창동: 아이러니의 예술'에 출연한 이 감독. 자신의 영화 촬영지를 다시 돌아보며 연출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프랑스 감독 알랭 마자르가 이창동 감독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이창동: 아이러니의 예술'에 출연한 이 감독. 자신의 영화 촬영지를 다시 돌아보며 연출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OTT 제안은 여러 번 받았고 언젠가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안 했던 건 OTT라서가 아니라 할 만한 이야기란 판단이 드는 작품을 아직 못 만났기 때문이죠.”
‘박하사탕’(2000), ‘시’(2010), ‘버닝’(2018) 등을 만든 리얼리즘 영화의 장인 이창동(68) 감독이 OTT 작품 연출 가능성을 내비쳤다. 29일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그는 “어떻게 하면 관객과의 소통을 좀 더 넓히고 깊게 할 것인가는 영화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쭉 고민해온 것”이라며 “이번 영화제를 통해 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앞으로 나갈 길이 어떤지 찾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간담회 #데뷔 25주년 이창동 감독 특별전

다만 그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의 미래에 대해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공고히 살아있어야 하고 그럴 것”이라 강조했다. “OTT에서 쉽게 쇼핑해서 볼 수 있는 영화들, 보다가 지루하면 빨리 돌려버리는 식으로 소비하는 영화들이 아니라 영화 세계의 시간에 나를 맡기고 같이 느끼면서 경험하는 그런 영화는 살아남아야 한다. 관객이 아무리 지금 OTT 관람 태도에 길들여진다고 해도 그런 영화의 본질을 저버리진 않을 거라고 희망하고 믿고 있다”면서다.

영화 '박하사탕'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박하사탕'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소설가로 활동하던 이 감독은 1997년 첫 장편영화 ‘초록 물고기’로 감독 데뷔해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그의 장편 연출작 6편을 담은 이번 특별전에선 올해 완성한 첫 단편 ‘심장소리’와 그의 작품세계를 프랑스 감독 알랭 마자르가 조명한 다큐멘터리 ‘이창동: 아이러니의 예술’ 등 두 작품이 세계 최초로 상영된다.

우울증 엄마 구하는 8살…크레인 농성 가족 담은 첫 단편  

‘심장소리’는 우울증을 앓는 엄마를 살리려는 여덟 살 소년의 분투를 담은 작품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타워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로 그려진다. 이 감독은 세계보건기구(WHO)‧베이징현대예술기금(BCAF)에서 ‘우울증’ 주제 단편을 의뢰받고, 원래 장편으로 고민했던 타워크레인 농성 노동자의 가족 이야기를 결합시켜 만들었다. 상영시간 28분 전체를 마치 한 장면처럼 이어져 보이게 찍었다. 이 감독은 “엄마를 살려야 한다는 아이의 욕망, 생명에의 갈구, 바로 아이가 느끼는 심장소리를 관객이 같이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이에게서 시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나의 긴 테이크로 찍었다”고 설명했다.

이창동 감독 첫 단편 영화 '심장소리'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이창동 감독 첫 단편 영화 '심장소리'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다큐 ‘이창동: 아이러니의 예술’은 ‘박하사탕’을 보고 충격받아 이 감독의 영화를 탐구해온 마자르 감독이 지난 영화 촬영지를 이 감독이 다시 찾는 방식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돌아봤다. 이 감독은 “제가 다큐 대상이 되는 게 불편하고 어색하기도 했다”면서 “한국에서 촬영해야 하는 거라 공동제작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는데 팬데믹 상황 때문에 마자르 감독이 촬영 일자에 임박했을 때 한국에 못 들어오게 되면서 모든 게 화상통화로 이뤄졌다. 연출자가 원하는 공간에 가서 수동적으로 찍었는데 소통이 쉽지 않았다”면서 “(제가 제 영화를) 설명하는 것 위주로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서 아쉽다. 관객이 좋게 받아들여 주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솔직히 밝혔다.

‘초록물고기’ 일산 다시 찾고 “마음 착잡” 

그는 다시 찾은 촬영지 중 ‘초록물고기’의 일산 외곽지역은 “더 삭막해졌더라”고 되짚었다. “일산 신도시가 들어서고 외곽에 마을 형태로 남아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일산 주변 창고, 공단이 됐다”면서 “‘초록물고기’ 자체가 일산 신도시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살던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는 영화인데 더 황폐해진 느낌을 받아 마음이 착잡했다”고 말했다.

영화 '초록물고기'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초록물고기'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그의 영화는 사회와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아 때로 ‘다큐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0년 광주와 억압적인 정치‧사회‧경제적 문제가 짓누르던 시기 작품 활동을 한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는 그는 “그러나 저는 분명하고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쉽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크게 힘을 가질 수 없다. 쉬운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는 거로 끝나는 영화는 관객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끝날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좀 더 오래 관객 속에 질문이 남고 자신의 삶과 영화가 보편적 의미로 연결되게 하고 싶었다”면서 “제 영화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촬영‧편집‧후반작업까지 일관되게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것을 관객이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작업”이라 설명했다.

이번 특별전에선 최신 장편 ‘버닝’(2018)을 비롯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각각 각본상‧여우주연상(전도연)을 수상한 ‘시’(2010)와 ‘밀양’(2007), 베니스영화제 특별감독상‧신인배우상(문소리) 수상작 ‘오아시스’(2002), 광주 5‧18 상흔을 담은 ‘박하사탕’(2000) 등이 4K 디지털 복원판으로 선보인다. 필름으로 찍은 ‘초록물고기’와 ‘오아시스’의 디지털 버전 상영은 최초다. 이 감독은 “저도 리마스터링(복원) 버전은 작업실에서만 봤다. 모든 작품을 (영화제 관객과) 극장에서 볼 생각”이라고 했다.

“한국영화 다양성과 역동성…한의 정서 넘어섰다” 

그는 영화감독 25주년 소감에 대해 “한국영화의 활력을 이루는 데 저도 한쪽 귀퉁이에서 같이 노력했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롭다”고 밝혔다.
한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원동력을 묻자 “다양성과 역동성”을 꼽았다. “일본영화나 중국영화 하면 어떤 뭉뚱그려지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한국영화는 감독마다 색깔과 성격이 다르다”면서 또 “영화뿐 아니라 K팝이나 드라마에서도 다른 나라 콘텐트가 갖지 못한 다이내믹한 힘이 느껴진다. 모든 것들이 너무 힘든 가운데 그걸 뚫고 살아오면서 생긴 나름의 생명력이랄까. 과거에는 ‘한’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그 말을 넘어 긍정적인 힘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세계 관객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올해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을 열게 된 이창동 감독이 영화제 개막 이튿날인 29일 전주 고사동 중부비전센터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올해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을 열게 된 이창동 감독이 영화제 개막 이튿날인 29일 전주 고사동 중부비전센터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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