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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 승부수 던진 두남자…尹·盧 '국민투표' 다른듯 닮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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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대전광역시 중앙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윤 당선인 측은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국민투표 공론화를 시도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대전광역시 중앙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윤 당선인 측은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국민투표 공론화를 시도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국민투표’는 한국 정치사에서 격동의 단어이자 금기의 단어였다. 유신 체제 정당화에 사용됐다는 오명도 있었고, 재신임 투표를 공개 제안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위헌 결정(2004년)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응해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들며 그 단어가 다시 정국의 중심에 섰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27일 “국회가 압도적 다수의 힘으로 헌법을 유린하는데 국민에게 물어보는 게 마땅하지 않느냐”며 첫 공론화를 했다. 다음날, 일부 조항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국민투표 법안 개정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오자 “민주당이 국민투표 법안개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국민투표가 두려운 것”이라며 재차 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尹의 승부수  

윤 당선인이 아직 자신의 입으로 국민투표를 언급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장 비서실장의 ‘국민투표 제안’을 윤 당선인이 대선 승리 뒤 던진 첫번째 승부수라 본다. 일각에선 취임 8개월차인 2003년 10월 기자회견을 통해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선거를 앞둔 여소야대 국면과 대선 불복 논란까지 그때와 상황이 비슷한 점이 많아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윤 당선인은 아직 취임조차 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재신임 국민투표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재신임 국민투표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치권에선 윤 당선인 측의 국민투표 제안엔 ‘법률적’이유보다 ‘정치적’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윤 당선인 측도 “입법 불비로 당장의 국민투표가 어렵다는 점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다. 당선인 측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 입장을 확인한 뒤부터 국민투표 방안을 검토해왔다고 한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대통령의 힘은 의제를 설정하는 것에 있다”며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에도 정국의 주도권을 찾아오려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른바 ‘허니문 피리어드’라 불리는 당선 직후의 기간임에도 정국의 주도권을 더불어민주당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중재안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바뀌며 민주당에 끌려가고 있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검수완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것이 국민투표의 요건인 ‘국가의 안위’에 해당하는 지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이는 부차적이란 설명이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28일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국민투표 제안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28일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국민투표 제안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여소야대 국면 돌파구 될까

두 번째는 선거다. 윤 당선인은 당장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당 안팎에선 이 ‘검수완박 국민투표 제안’엔 민주당을 검수완박의 틀에 가둘려는 당선인 측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해석한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당장 국민투표가 어렵더라도, 이번 지방선거를 검수완박 강행 처리에 대한 찬반을 묻는 장으로 만들 순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새 정부 장관 후보자들을 둘러싼 의혹이 청문회에서 논란이 되면 선거의 악재가 될 수 밖에 없는데, 표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이슈도 필요한 게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도 총선을 한해 앞두고 였다. 다만 민주당이 5월 초까지 검수완박 법안을 마무리하겠단 입장이라, 이슈가 실제로 6월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윤 실장은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민투표를 제외하곤 당선인 측이 난국을 타개할 현실적 방안이 없다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제안했던 당시의 상황을 잘 아는 정치권의 원로 인사는 “노 전 대통령도 국민투표 부의가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나름 절박한 심정으로 던진 승부수였다”고 했다. 당선인 측 관계자도 “국민투표는 민주당의 입법독주를 막을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라고 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윤 당선인과 노 전 대통령 모두 법조인이다. 국민투표의 현실적 어려움을 모를 리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민주당의 입법 독주와 윤 당선인 측의 국민투표 제안 모두 ‘타협의 정치’가 실종된 현실을 드러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최진 대통령 리더쉽연구원장은 “정치는 갈등을 해결하고 타협하며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본질”이라며“민주당과 윤 당선인 측 모두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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