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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대통령,선거중립 의무 없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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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JTBC 손석희 전 앵커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제공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JTBC 손석희 전 앵커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제공 청와대

청와대 안이 얼마나 독특한 상상계일 수 있는지 3시간여의 JTBC ‘대담-문재인 5년’이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고 그에 대한 비판은 국민의 성취에 대한 비난이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미숙한 인물이다. 하기야 청와대 참모 시절일 때엔 청와대를 두고 “그 넓은 청와대 거의 대부분이 대통령을 위한 공간”이라며 “이상한 곳”이라던 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5년을 보낸 후엔 “역대 대통령이 집무했던 (중략) 많은 역사가 쌓여있는 곳”이라고 했다. 역시 구중궁궐이다.

헌재 "대통령 선거중립 의무" 결정 #문 대통령, "위선적 해석, 룰 아냐" #5년내내 편향 논란…윤 당선인은?

흥미로운 건 중립 의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인식이었다. 정권 재창출 실패에 대해 “나는 한 번도 링 위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내가 민주당인데, 우리 당 후보라고 내가 응원할 수 없었고 입도 뻥긋할 수도 없었다”고 주장한 대목부터다. 그와 손석희 전 앵커 사이엔 이런 문답이 오갔다.

-대통령이 선거전에서 링 위에 오를 수 없는 것은 룰이다. 그렇지 않나.
“별로 룰인지 모르겠다.”
-법으로 금지돼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공천장을 수여하는 행사를 직접 하고 거기서 이런저런 덕담을 했다. 지금은 당의 총재가 아니고 당원이니까 안 된다, 이런 거 굉장히 위선적 해석이다.”

대통령 지위가 이중적이긴 하다. 정치인이며 최고 공직자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지지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 듯하다. 그는 “별로 반론이 있을 것 같지 않다”고도 했다.

반론, 당연히 있다. 금지한 룰(헌법·선거법)이 있고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있다. 18년 전 총선을 앞두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대통령이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를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한 발언이 문제가 돼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던 게 계기였다. 헌재는 법 위반이긴 해도 탄핵할 만큼 중대 사안이 아니라고 봤다. 기각 결정문엔 대충 이렇게 써있다.

“대통령은 당연히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지는 공직자에 해당한다.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공정한 선거 관리의 궁극적 책임을 지는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은,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로써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

문 대통령 주장과 달리, 당원이라 안 된 게 아니라 대통령이라 안 된 거였다. 문 대통령은 당시 노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이었다. 누구보다 내용을 잘 알 만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왜 엉뚱하게 말했을까.

분명한 건 이번 발언으로 문재인 정권의 많은 현상이 이해된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에겐 ‘대통령=선거 중립’이 강력한 룰이 아니었다. 그간 선거를 앞두고 중립적 모양새라도 취하려고 했던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논란을 부른 행동을 했던 이유일 수 있다. 선거 주무부처 장관들이 민주당 의원들인 건 물론이고,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했던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에 대선캠프 출신 인사를 앉혀 사달이 났다. 지지자 동원(일명 편 가르기)도 그에겐 자연스러운 행위일 수 있다.

사실 ‘중립’하려면 반대편의 존재를 알아야 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 반대편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뿐, 느껴지는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께 대담에서도 “모든 면에서 늘 ‘저쪽’이 항상 더 문제인데 가볍게 넘어가고 ‘이쪽’이 보다 적은 문제가 더 부각되는 이중잣대가 문제라고 생각한다”거나 “구중궁궐 그건 과거의 자기들이 했던 시대의 행태”라고 했던 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면 윤 당선인은 어떨까. 그는 단시간 내 지지집단이 뒤바뀌는 이례적 경험을 했다. 그러니 존재는 알 터이다. 하지만 '한때 지지자들'로부터 줄곧 강력한 공격을 받고 있다. 그의 중립관은 어떨까, 곧 드러날 것이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