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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석의 100년 산책

90세부터는 '아름다운 인생' 살고 싶었다, 외모보다 중요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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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내가 90까지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 욕심을 갖지도 않았다. 두 친구 안병욱·김태길 교수와 같이 열심히 일하자고 뜻을 모았다. 셋이 다 90까지 일했다. 성공한 셈이다. 90을 넘기면서는 나 혼자가 되었다. 힘들고 고독했다. 80대 초반에는 아내를 먼저 보냈는데, 친구들까지 떠났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지?” 90대 중반까지는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100세까지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철학계의 선배 동료 중에는 97, 98세가 최고령이었고, 연세대 교수 중에도 100세를 넘긴 이가 없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새 출발을 해야 했다. 생각을 정리한 결과가 ‘아름다운 늙은이’로 마무리하자는 소원이었다. 삶 자체와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 싶었다. 우선 외모부터 미화시켜야 한다. 몸단장이다. 70~80대의 후배 교수들이 “나야 늙었는데” 하며 허름하거나 초라한 차림으로 외출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옷도 하나의 예술품이다.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운 의상이 아닌 품격 있고 조화롭게 입어야 한다. 쉬운 일도 아니지만 관심에서 멀어지면 “나 편하면 그뿐이지” 하는 습관이 더 앞선다. 그래서 모임에 나갈 때나 강연장에 갈 때는 신사다운 품격을 갖추기로 했다.

아흔 넘기며 친구들도 다 떠나가
“아름다운 늙은이 됐으면…” 소원

외모부터 신경, 옷차림 품격있게
노욕 줄이고 지혜 키우려고 애써

지금도 생각나는 선배 둘의 향기
이웃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큰 유산

아침 세수 후에 꼭 화장품 사용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뒤따르는 과제는 얼굴과 자세의 미화다. 내 얼굴은 절반 이상이 대머리다. 중학생 때부터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스스로 보아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가발은 부자연스럽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아름다움이 못 된다. 머리 색깔이라도 보기 흉한 백발이 안 되었으면 좋겠다고 걱정했다. 그런데 100세가 넘으면서 좋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마가 넓어지기는 하면서도 백발이 더 생기지는 않았다. 거울로 살펴보았다. 뒤 머리카락은 더 빠지지 않았고 약간씩 검은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회춘이라는 말을 썼던 것 같다. 밖으로 말은 못하지만 더 빠지지도 말고 희어지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얼굴에서는 주름살이 문제다. 아침마다 세수한 뒤에는 90대 후반부터 사용하는 두 가지 화장품을 쓴다. 이마와 두 뺨은 그대로 유지되는데 입 언저리 주변에는 주름살이 깊어진다. 못 본체하고 주시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늙음을 위해서는 더 큰 과제가 있다. 아름다운 감정과 정서적 건강이다. 생각과 감정을 미화시켜야 한다. 옷이나 얼굴보다 몇 배나 힘든 정신적 작업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욕이다. 나이 들수록 욕심은 줄이고 지혜가 앞서야 한다. 그런데 지적 수준이 떨어지고 자제력이 약해지면 젊었을 때 채워보지 못한 노욕에 빠지기 쉽다. 욕심쟁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도 한다. 거기에 치매까지 겹치게 되면 보기 싫은 늙은이가 된다. 손주와 싸우는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내 주변에는 그런 늙은이들은 없다. 그런데 돈과 명예 때문에 노욕을 부리는 실수를 범할 가능성은 잠재돼 있다. 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거나 장년기에 갖지 못했던 욕망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늙음을 위해서는 욕심, 다시 말하면 소유욕을 버려야 한다. 지혜로운 늙은이는 그 욕망의 대상을 후배들에게 돌린다. 후배와 제자들을 칭찬해 주며 키워주는 선배가 되어야 한다.

나 같은 나이가 되면 자제력이 약해진다. 좋지 못한 옛날의 습관이 튀어나온다. 칭찬보다 욕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인정받고 싶은 잠재력 때문에 혼자서 대화를 독차지하기도 한다. 내 주장이 옳다는 자세다. 수준 낮은 정치인과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지도자들도 실수를 한다. 대화의 분위기를 해치며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을 존경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침묵과 겸손이 미덕이라는 예절을 지키지도 못한다.

심한 고통 중에도 미소 간직

지금 나는 존경스러운 두 선배를 기억에 떠올린다. 철학과 선배인 정석해 선생이다. 미국에 갔다가 97세 일 때 찾아뵈었다. 20년이나 연하인 나를 귀빈과 같이 대해 주었다. 그 말씀과 향기가 너도 늙으면 나같이 품위 있는 인격을 갖추어 달라는 자세였다. 나를 그렇게 대해 주었기 때문에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다.

또 한 사람은 나와 나이가 비슷한 황 목사님이었다. 심장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예전과 다름없는 미소와 사랑이 풍기는 표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김○○ 장로의 얘기를 듣고 오신 것 같습니다. 제 건강은 괜찮습니다. 공연히 여러분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회복되면 또 교회에서 뵈어야지요…”라면서 여전히 온화하고 밝은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20여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 교우들에게 어렵고 힘들다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았다.

정석해 교수는 4·19 교수 데모를 주도한 애국자였고, 황 목사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생애를 보낸 분이다. 두 분에게는 애국심과 청소년들을 위한 기도의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 인격과 삶 자체의 향기와 모습을 끝까지 간직하였다. 아름다운 노년기는 역시 수양과 인격,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가에 있다. 보통 사람은 흉내 낼 수 없는 풍성한 마음의 열매였다. 나는 과연 고귀한 인생의 목표를 갖추었는가를 묻게 된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선한 인생의 결실이다. 이웃과 사회를 얼마나 사랑했고 무엇으로 보답했는가 는 생애의 유산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