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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강수의 직격 인터뷰

검찰권 남용, 정치 통제가 아니라 사법 통제 받게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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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새 정부 출범을 불과 10여일 앞둔 국회가 극한 대치의 전쟁터로 변질됐다. 여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힘으로 밀어붙이면서다.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고 여당은 위장 탈당, 회기 쪼개기 등의 온갖 꼼수를 동원하고 야당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맞섰다. 국민의힘에 이어 대검도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고 기소권을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준비중이다. 극과 극의 대치는 검수완박에 대한 정반대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됐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삼풍아파트 집무실에서 이진강(79)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만났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재수사와 5공 비리 수사를 주도한 검사 출신이다. 보수 성향이지만 진보 변호사들의 지지를 받을 만큼 신망과 균형감각을 갖췄다는 평을 듣는 법조계 원로다. 검수완박의 문제와 해법을 물었다. 이 전 회장은 "갑오경장 때부터 130여년 이어져온 형사사법체계의 대혼란기"라면서 "이럴 때일수록 검찰 수사권이 어디에서 왔는지 등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 지혜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검찰 수사권 폐지는 사법 통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지 정치 통제의 관점으로 강행하면 국민생활에 엄청난 고통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을 향해선 "검수완박의 수모를 당하게 된 건 검찰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며 검찰권 오·남용의 자제를 주문했다.

이진강 전 대한변협 회장은 지난 26일 인터뷰에서 "검찰 수사권이 오남용돼 개혁이 필요하다면 정치 통제가 아니라 사법 통제 방식이 돼야 한다" 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이진강 전 대한변협 회장은 지난 26일 인터뷰에서 "검찰 수사권이 오남용돼 개혁이 필요하다면 정치 통제가 아니라 사법 통제 방식이 돼야 한다" 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검수완박 논란의 핵심은.
"여당이 기준점과 출발점을 잘못 잡았다. 수사권의 본질에 입각해 사법 통제 논의를 해야 하는데 정치 권력이 '닥치고 수사권 박탈'을 밀어붙이니까 반발이 극심한 것이다. 사법권에서 파생된 수사권은 범죄 사실을 확인하고 증거를 수집해 범인의 신병을 확보하는 권한을 말한다. 사람의 생명·신체·재산권을 침해할 위험이 뒤따른다. 선진국들은 수사권에 대해 엄격한 사법적 통제를 가한다. 검찰의 수사권이 무소불위이고 오남용이 심각하다면 사법(법원)의 통제하에 두는 게 맞다. 이게 기준이자 원칙이다. 누가 수사권을 갖느냐, 경찰의 수사 능력과 범죄 진압 수준이 어느 정도냐는 그 다음 고려사항이다."
-법리적 문제점은.

'뚝심 리더'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의 고언 #검경,국민 제쳐놓고 강행 맞지 않아 #수사판사의 수사권 박탈하려던 #사르코지 전 대통령, 거꾸로 기소 #검찰 힘 세지며 오만...자초한 측면 #과거 수사권 오남용 잘못 인정해야

"헌법 제12조3항, 제16조는 강제 수사시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돼 있다. 1962년 제5차 개헌(제3공화국 헌법) 때 '검사경유 원칙'이 명문화됐다. 이는 단순히 검사의 영장 청구권만을 규정한 게 아니다. 수사권에 대해 1차적 최종적 통제권은 법관에게 있음을 천명하고 준사법기관인 검사가 2차적 사법통제기관으로 사법경찰 관리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경찰이 영장을 신청하면 검사가 반드시 검토한 뒤 청구하라고 사법 통제권을 일부 나눠준 것이다. 따라서 압수·수색영장 청구권 주체를 경찰로 국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검수완박 강행은 사법 통제가 아니라 정치 통제다. 이해 당사자인 검찰과 경찰은 물론이고 사법부·법학계·시민단체·국민을 모두 제쳐 놓고 양당이 모여 형사사법체계를 확 바꾸면서 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정치 통제의 실패 사례는.

"프랑스에선 특수부 검사 업무를 수사판사(예심판사)들이 한다. 30대의 수사 판사가 청소년 6명을 성폭행 혐의로 구속 기소했는데 전부 무죄가 났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이 2010년 사법평의회에 참석해 일장연설을 하며 이 제도 폐지를 추진했다. 수사권이 너무 세다는 정치적 판단도 작용했다. 그러나 부정부패와 비리 개입 소지가 많은 정치 권력은 견제받아야 한다는 각계 각층의 반대로 불발에 그쳤다. 오히려 그가 2019년 뇌물과 독직 행위(판사 매수와 사법방해 )로 기소됐다. 사법부를 신뢰하는 프랑스 국민들은 그걸 보복 수사라고 보지 않았다."

국민의힘 소속 법제사법위원회 유상범 법사위 간사가 28일 국회 소통관에서 '검수완박'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공정한 결정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상선 기자

국민의힘 소속 법제사법위원회 유상범 법사위 간사가 28일 국회 소통관에서 '검수완박'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공정한 결정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상선 기자

-6·1 지방선거 관련,선거 범죄 수사에 혼돈이 예상되는데.

"떳떳하고 잘못이 없다면 여야 국회의원들이 검찰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공직자 범죄 수사를 못하게 함으로써 '셀프 방탄 입법'이라는 비판을 들을 필요가 있나. 예전엔 국회의원들이 검사를 무서워한다고 했지만 요즘은 검사들이 국회의원을 더 무서워하는 것 아닌가. 공직자 범죄보다 중요한 게 선거범죄다. 선거에 부정이 개입하거나 선거 관리에 중립성이 깨지면 국가 안위가 흔들린다."
-수사기관 난립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수사시스템은 일원화·체계화돼야 한다. 그래야 수사력이 분산되는 부작용을 줄이고 수사의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공수처가 발족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신뢰도와 수사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공수처에 국가수사본부에 중대범죄수사청까지 생기면 수사기관 상호간에 갈등과 문제만 커진다."

-민주당은 '미국 검찰은 수사를 안 한다'며 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가짜뉴스다. 미국 전역에는 연방법원이 94개소 있다.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을 받아 연방검사장을 임명하고 검사장은 보조 검사를 임명해 직접 수사 및 기소를 담당케한다. 미국의 변호사 겸 월스트리저널 기자인 제임스 스튜어트가 쓴 『the prosecutors(용기있는 검사들)』에는 연방검사들이 수사팀을 편성해 직접 수사한뒤 대배심(기소배심)에 기소를 요청하기까지의 비화들이 실려있다. 맥도넬 더글라스 항공회사의 증뢰사건 등 5건이 나온다. 2000년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임원들이 미국 연방검사들로부터 반도체 가격담합 혐의로 수사를 받아 옥고를 치르거나 엄청난 벌금을 문 사건도 있다."
-민주당의 강행 이유는.

"민주당은 일관되게 검찰개혁,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 분석가들은 '공포와 광기','문재명(문재인+이재명) 지키기'라는 관측을 쏟아낸다. 그런 저속하거나 나쁜 내면의 의도는 없기를 바란다. 검수완박의 목적에는 검찰총장의 대통령직 점령에 대한 원점 타격의 성격, 다시 말해 대선 불복의 성격도 있는 것 같다. 검찰총장이 임기 못 채우고 나와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 것 자체도 바람직하지 않은데 당선까지 되니 인정 못한다는 심리 아니겠나. 검찰의 힘의 원천인 수사권을 아예 박탈함으로써 정치 행위와의 연결을 차단하고 유사한 일의 재발을 막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사실 예전에 검찰청법에 '검찰총장은 임기 마치고 난 후 다른 공직 못 맡는다'는 규정이 있었다. 김기수 전 검찰총장이 헌법소원을 제기해 위헌 결정이 나 없어졌다. 윤 당선인 출현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윤 당선인을 키운 게 현 정권 맞나.
"조국 사태와 '산 권력' 수사를 여권과 청와대가 수긍하지 못하고 검찰총장이 말 안 들으니 수사권을 다 빼앗겠다고 나섰다가 지금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이른바 '적폐 수사'로 인해 사법권이 무력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전직 대법원장, 엘리트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을 줄줄이 사법처리하면서 검찰은 거칠 게 없어졌다. 이 과정에서 검찰 조직이 망가졌다는 한탄도 나온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 통과를 규탄하는 화환이 놓여져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 통과를 규탄하는 화환이 놓여져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검사 재직 때 느낀 검찰 문제는.

 "노태우 정부 때 '범죄와의 전쟁'에 검사를 투입했더니 성과가 좋았다. 문민 정부 들어 12·12, 5·18 사건 수사를 통해 전직 대통령 둘을 사법처리하면서 오만해졌다. 대선자금 수사같은 긍정적 역할도 했는데 긴 안목으로 보면 불신이 쌓였다. 오만은 규범 위배의 씨앗이다. 그동안 검찰권을 오남용한 잘못이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해서는 안 될 수사를 무리하게 별건 수사방식으로 밀어붙여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또 한 편으로는 꼭 해야 할 수사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포기함으로써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일도 있었다. 무리하게 수사하면 불만이 생기고, 할 걸 안 하면 불신이 생긴다. 검찰은 권한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주어진 권한의 70% 정도만 써도 인정받는 검사가 될 수 있다. 검수완박의 수모를 당하게 된 건 검찰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

-바람직한 검찰개혁 방안은.

"프랑스의 수사판사 제도, 미국의 대배심 제도(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이 다수결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형사 절차)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수사판사처럼 사건이 발생하면 검찰·경찰을 통합 지휘할 수사의 주재자가 필요하다."

◇이진강 변호사=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에 당선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대한변호사협회장,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