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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바닥 모를 추락…1270원도 깨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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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치솟는 달러의 위세에 원화 가치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전날 달러당 1260선이 무너진 원화 값은 28일에는 달러당 1270원을 내주며 하락했다(환율 상승). 홍남기 경제부총리까지 이날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연저점 경신 행진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2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 값은 전날 종가(1265.2원)보다 7.3원 내린 달러당 1272.5원에 거래를 마쳤다(환율 상승). 원화 값이 달러당 1270원 밑으로 떨어진 건 2020년 3월 19일(1285.7원) 이후 2년 1개월 만이다.

추락하는 원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추락하는 원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원화 값은 최근 10거래일 중 하루(20일, +0.8원)를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하락했다. 이 기간 달러당 원화 값은 48원이나 떨어졌다. 원화의 자유 낙하가 이어지며 원화 값은 6거래일 내내 연저점을 경신했다.

원화 가치 하락을 더 부추기는 건 외국인의 ‘셀코리아’다. 이날도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364억원, 코스닥에서 2518억원 어치 주식을 팔았다. 이달 들어 28일까지 외국인이 코스피에서만 팔아치운 주식만 4조9569억원어치다. 이를 달러로 바꿔 나가면서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강도 높은 긴축과 세계 경기 위축 우려로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늘면서 달러는 강세다. 유로화와 엔화, 위안화 등 다른 통화의 힘이 빠지며 달러 강세는 더 두드러진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1973년=100)는 이날 103선까지 올랐다. 2017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특히 하락세가 두드러지는 건 일본 엔화다. 엔화 가치는 이날 장중 달러당 130.27엔까지 떨어졌다. 달러당 엔화 값이 130엔 밑으로 떨어진 건 2002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엔화 값 하락은 긴축에 나서는 미국과 정반대 행보를 걷는 일본은행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이날 단기정책 금리를 -0.1%로 동결하고, 10년 만기 국채를 매일 무제한으로 사들이기로 했다. 미국과 일본 간의 금리 차이가 벌어지며 투자자들이 엔화 자산을 팔고 달러 자산으로 갈아타고 있다.

유로화는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러시아가 27일(현지시간) 거래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지 않는다며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 우려에 유로화는 이날 유로당 1.0559달러로 떨어지는 등 5년 만에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유로화 급락 속 강 달러가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의 압력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원화 값 약세 행진에 한국 경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수입 물가가 오르면 뒤따라 소비자물가도 뛸 수밖에 없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수입액이 늘며 무역수지 적자 폭도 커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20일까지 이번 달 무역수지는 51억9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28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금주 들어 원·달러 환율 오름세(원화가치 하락)가 빠른 상황”이라며 “급격한 시장 쏠림이 발생하지 않도록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며, 필요한 경우 시장안정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 분위기다.

원화 가치가 달러당 1300원 선까지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는 게 시장의 분위기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위험자산에 대한 회피 심리로 강달러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원화 값은 달러당 1300원 수준까지 떨어질 가능성(환율 상승)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Fed가 긴축에 나선 후에도 물가가 쉽사리 잡히지 않는 상황이 올 경우 원화 값이 달러당 1300원까지 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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