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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직원 600억 빼돌렸는데, 10년간 아무도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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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은행 본점 직원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세 차례에 걸쳐 60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27일 긴급 체포됐다. 사진은 28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우리은행 본점 직원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세 차례에 걸쳐 60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27일 긴급 체포됐다. 사진은 28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우리은행에서 600억원 넘는 대형 횡령사건이 발생해 파문이 일고 있다. 기업 매각 담당자가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를 위해 이란의 가전업체인 엔텍합이 채권단에 지급한 계약금 일부를 2012년부터 6년 동안 빼돌렸다. 금융당국도 이날 10년간 횡령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체계 등을 점검하는 현장 검사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내부 감사를 통해 기업 매각이나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하는 기업개선부 차장급 직원 A씨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세 차례에 걸쳐 돈을 인출한 사실을 파악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마지막으로 인출한 직후 계좌를 해지했다. A씨가 6년간 횡령한 금액은 614억원에 이른다.

은행서 수사 의뢰하자, 해당 직원 자수

횡령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 27일 오후 10시30분쯤 A씨가 경찰에 자수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횡령 혐의로 긴급 체포되면서다. 우리은행이 내부 감사로 A씨의 수백억원대 횡령 사실을 확인한 뒤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직후다. 경찰 관계자는 “A씨의 휴대전화 등이 꺼져 있어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가 그날 밤 회사 관계자로부터 연락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후 A씨가 경찰에 자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측은 “이번 횡령사건과 관련해 수사기관의 수사를 의뢰한 상태이며 해당 직원에 대한 고발조치와 더불어 발견 재산 가압류 등을 통해 횡령 금액 회수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 손실 금액을 최소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금 횡령 어떻게 이루어졌나

자금 횡령 어떻게 이루어졌나

경찰은 28일 오전 11시부터 A씨를 조사했다. 그러나 A씨는 돈의 사용처 등에서는 의미 있는 진술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경찰은 A씨가 장기간에 걸쳐 범행을 저지르면서 주식 등에 투자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A씨의 범행에 가담한 또 다른 피의자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이날 오전 A씨의 친동생이 경찰에 자진 출석해 “형의 범행을 알고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업계에 따르면 횡령 자금은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에 나섰던 다야니가(家)가 대주주인 이란의 가전업체 엔텍합이 지불한 계약금(578억원) 일부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그해 12월 투자확약서(LOC) 불충분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당시 우리은행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최대주주(지분 57.4%)였던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매각 주관사이자 주채권은행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과거 인수대금을 두고 (엔텍합과) 갈등을 빚다가 M&A는 해지됐으나 이미 받은 (인수 금액의 10%인) 계약보증금은 매각 주관사인 우리은행이 관리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에서 이 계약금 관리를 맡은 A씨가 채권단이 몰수한 인수 자금 일부를 빼돌린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A씨가 횡령한 계약금을 엔텍합에 돌려줘야 한다는 점이다.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 가문은 2015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계약금과 이자를 합해 730억원을 돌려달라고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고 2019년 한국 정부가 최종 패소했다.

우리금융지주 상장 유지엔 영향 없어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외환·금융거래가 제한돼 배상금(계약금) 반환을 미루다 올해 초 미국의 송금 허가가 떨어졌다. 우리은행은 예치금 반환 준비 과정에서 관련 계좌를 확인하면서 A씨의 횡령 사실을 파악했다.

지난해 은행에서 발생한 금전사고

지난해 은행에서 발생한 금전사고

우리은행의 내부 통제 미흡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돈’ 관리를 하는 은행업 특성상 철저한 통제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10년 가까이 내부 직원의 수백억원대 횡령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금융그룹은 4대 금융지주 중 처음으로 은행을 포함한 계열사의 내부통제를 관리하는 내부통제관리위원회를 두고 있다.

횡령 규모도 큰 편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권에서 발생한 금융사고 규모는 국민·우리·신한 등 7개 은행에서 116억3000만원이었다. 이 중 횡령·유용은 67억6000만원, 배임 41억9000만원, 사기 6억8000만원 등이었다.

금융당국도 현장 검사에 나섰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장 검사를 통해 거액의 횡령사고가 장기간 발견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내부통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우리금융지주 주가(종가 1만5300원)는 보합으로 마감했다. 장 초반 횡령 이슈로 5% 이상 급락했다가 장 종료 직전 하락 폭을 모두 만회했다. 2215억원 상당의 횡령사건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던 오스템임플란트와 달리 이번 횡령은 우리금융 상장에는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 반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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