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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택이 고발한다

거리두기 끝나 대박? 자영업자, 생각도 못한 공포 생겼어요

중앙일보

입력

남택 건축사·푸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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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광주 자영업자들이 정부의 영업 제한에 반발하는 차량 시위를 벌였다. 고통스런 거리두기는 끝났지만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공포스럽다고 말한다. 그래픽=김현서

지난해 9월 광주 자영업자들이 정부의 영업 제한에 반발하는 차량 시위를 벌였다. 고통스런 거리두기는 끝났지만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공포스럽다고 말한다. 그래픽=김현서

외식 자영업자들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희망 고문을 안겼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드디어 끝났다. 외식업계는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에 용기를 갖고 다시 링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지만, KO 당하기 직전 울린 공(종료 벨)덕에 겨우 살아난 지난 라운드를 생각하면 나를 포함한 대다수 가게 주인들 마음은 착잡하다. 이제 대박 나시겠네요, 하는 주변의 위로에도 웃음 지을 수 없는 몇몇 공포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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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가 지난 18일 끝났다. 서울 한 식당에 붙어 있는 구인 공고. [연합뉴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난 18일 끝났다. 서울 한 식당에 붙어 있는 구인 공고. [연합뉴스]

가장 무서운 공포가 인력난이다. 매출이 쪼그라들며 나간 직원들은 택배나 유통업계 등으로 빨려 들어갔다. 외식업보다 근무 여건이 더 낫기에 코로나 19가 끝났다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특히 주방 직원은 늘 품귀인 전세난의 25평(82.5㎡) 아파트 같아서, 주방에 빈자리 하나가 생기면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한 사람이 그만두고 나가면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옆집 종업원을 채가고, 그러면 또 그 가게 구멍을 메꾸기 위해 다른 업장에 구멍이 생긴다.
내가 운영하는 한 업장의 주방인원은 원래 6명이었다. 코로나 이후 자연스럽게 3명으로 줄었는데, 지난해 10월부터 다시 충원하려고 수십만원짜리 구인앱 유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백방으로 알아봐도 사람을 구할 수 없어 과거 매출 90%를 회복한 지금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급 1만5000원에도 사람 없어 

오래 비어 있던 홀서빙 자리는 아르바이트로 대신해보려 하지만 시급 1만5000원에도 구하기 어렵다는 흉흉한 소문에 지레 겁을 먹게 된다. 실제로 알바 구인 앱에 들어가 보면 지난해 대략 8720~9600원에 사람을 찾던 가게들이 이미 1만1000~1만2000원으로 올렸다. 굳이 먼 데 얘기를 할 것도 없다. 내 식당 바로 옆 가게들이 하루가 멀다고 500원, 1000원씩 시급 올리는 경쟁하는 걸 매일 목격한다. 나만 눈이 있나. 기존 정직원들 기대치도 높아진다. 결국 모든 직원 급여에 영향을 끼쳐 인건비 총액이 급격히 늘어나는 이중고를 마주하게 된다. 코로나를 견뎌온 가게 주인들은 이러다 있던 직원은 다 나가고 새 직원은 못 구해서 가게가 문을 닫는 날이 조만간 닥치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에 질려 있다.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 금지 등으로 식자재 값이 크게 올랐다. 지난 27일 서울 광장시장 풍경. [연합뉴스]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 금지 등으로 식자재 값이 크게 올랐다. 지난 27일 서울 광장시장 풍경. [연합뉴스]

어찌어찌 사람을 구해 놓으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올라버린 물가에 숨이 턱턱 막힌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식자재 물가는 외식업계의 주요 근심거리였다. 진작부터 음식 가격을 올려야 했는데 가뜩이나 코로나로 장사가 안 되는데 가격까지 올리는 자충수를 둘 수 없어 미루다 러시아의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세계 4대 곡창이 무너졌느니 뭐니 하는 뉴스 듣기가 무섭게 밀가루 가격이 벌써 많이 올랐고, 국제 물류비용 급상승으로 식자재 가격은 구매전표를 들여다보기도 무서울 지경이다. 음식값 30%에 달하는 인건비, 또 이와 얼추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 식자재의 원가 상승은 그 자체로도 걱정스럽다. 게다가 두 원가를 합해 음식값 60%를 넘기면 망한다는 업계 속설이 워낙 강한 탓에 덮었던 장부를 다시 들여다보며 속절없이 숫자가 달라지지도 않는 계산기를 계속 두드리며 마스크 속으로 한숨을 쉰다.

처음 겪은 식자재값 동시 폭등 

특정 식자재값 폭등 소식에 "장사 못 해 먹겠다"는 죽는소리해대던 때가 오히려 그리울 지경이다. 과거 계란값이 폭등한다든지 조류독감 같은 전염병으로 닭값에 문제가 생겨도 사실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하나가 오르면 다른 어떤 식자재값은 폭락하기도 해서 음식값 대비 재료비 비율이 어느 정도 맞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야채부터 육류·연어를 비롯한 수입 식자재, 밀가루·식용유 등 기초 재료가 일제히 폭등했다. 얼추 셈을 해보니 체감상 밀가루는 25%, 식용유는 65%, 그리고 비싼 생선회를 대체하던 연어는 95%, 그러니까 두 배로 올라버렸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코로나 이후 외식업계에선 배달이 위기 돌파의 구세주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배달을 해 봐야 배달의 민족이나 쿠팡이츠 같은 배달 앱 배만 불리고 정작 식당은 골병드는 일이라고들 생각한다. 전체 배달 시장 파이가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배달수수료와 배달인건비는 식당의 얇은 수익구조를 다 파먹어버렸다. 주방을 놀리느니 배달이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자금융통을 해 보자 했던 생각은 결과적으로 판단 착오였던 셈이다. 배달전문인 공유주방과의 경쟁만 심해졌고, 그 여파로 공유주방 업체 생존율도 바닥을 쳤다.

날아오기 시작한 청구서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통인시장에서 열린 소상공인-자영업자 현장 방문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통인시장에서 열린 소상공인-자영업자 현장 방문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전 정권이나 새로 들어선 정권 모두 자영업자를 돕겠다고 말한다. 정치인들이 워낙 손실보상금 얘기를 많이 한 탓에 사람들은 자영업자들이 큰돈을 받은 거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전에는 각종 세금은 물론 사회보장보험료 등을 체납한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코로나는 그런 성실한 주인도 빚쟁이로 만들었다. 급할 때 한 푼이라도 더 대출을 받으려면 세금을 미루면 안되지만 급한 불을 끄려고 가산금을 내가며 미뤄왔다. 다들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속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는 세무당국이나 건보공단 등 역시 체납에 대한 추심을 어느 정도 봐줬지만 이제 코로나가 다 끝났다는 분위기라 걱정이다. 압류통보라도 받지 않을까 자다가도 전전긍긍하게 된다. 식자재 납품업체 외상도 크게 늘었는데, 보증보험에 대한 위약실행 내용증명이라도 받게 되는 게 아닐지 생각만 해도 공포스럽다.

마지막으로 걱정이 하나 더 남아있다. 경쟁이다. 사실 경쟁은 고용시장에서 밀려나 외식업 창업에 뛰어든 자영업자가 급증하며 공급초과가 된 지 오랜 일이어서 코로나 이전부터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하지만 이제 국면이 또 달라졌다. 나 같은 기존 자영업자들은 라운드 종료 벨 덕분에 겨우 KO를 면하고 그로기 상태에서 막 벗어나 만신창이 꼴로 다시 새 라운드에 올랐지만 맞서 싸울 상대 선수는 다르다. 빚 없는 선수는 권리금도 없이 들어와 오픈 초기 가성비라는 쨉과 검색순위라는 훅을 쏟아부으며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것이다. 고객들은 새 얼굴에 환호하며 비싸도 새 음식에는 자비를 보여주겠지만 기존 식당의 가격 인상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돈 달란 얘기 아니야

혹자는 인건비·식자재 오른 만큼 음식 가격을 올리고 될 게 아니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마주한 경제 상황이 점심값 1만원에 치킨값 3만원, 1인당 2만5000원 삼겹살 회식이라는 심리적 저지선을 넘기는 것을 허용할 만큼 건강할까. 그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손님도 안다. 이 간단한 셈을 문재인 정권만 모르는 거 같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이런 자영업자의 공포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했다. 수십만 자영업자가 공포에 떤다면 대책까지 내놓지는 못해도 위로라도 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망가진 경제를 왜곡하는 자화자찬뿐이었다.
살아남은 외식업주들은 돈 푸는 포퓰리즘 정책을 기대하지 않는다. 내 살 뜯어 내 입에 넣는 일이라, 결국 고통만 연장할 뿐이라는 걸 지난 5년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런 돈 대신 진심으로 바라는 건 경제는 심리에 큰 영향을 받으니 이제 새 정부가 새로운 정책으로 기업에 힘을 주고 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 투자와 소비심리를 일기에 살려 두려워도 도전하게 하고 힘들어도 일하고 싶어지는 먹자골목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