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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 돌려줄 돈 슬쩍했다…우리은행 600억 횡령파문 전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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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8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사진은 28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우리은행에서 600억원 넘는 대형 횡령사건이 발생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은행의 기업매각 담당자가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를 위해 이란의 가전업체 엔텍합이 채권단에 지급한 계약금 일부를 2012년부터 6년 동안 빼돌린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금융당국도 이날 10년간 횡령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체계 등을 점검하는 현장검사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내부 감사를 통해 기업 매각이나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하는 기업개선부 직원 A씨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세 차례에 걸쳐 돈을 인출한 사실을 파악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마지막으로 인출한 직후 계좌를 해지했다. 우리은행 공시에 따르면 횡령 규모는 614억5214만원이다.

우리은행은 "횡령 직원은 2012년, 2015년, 2018년 세 차례에 걸쳐 횡령을 시도했고, (엔텍합의 배상금 관련) 예치금 반환 준비과정에서 해당건을 발견했다"며 "아직 손실예상금액은 파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횡령 사실이 알려진 것은 27일 오후 10시 30분쯤 A씨가 경찰에 자수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횡령 혐의로 긴급 체포되면서다. 우리은행이 내부감사로 A씨의 수백억원대 횡령 사실을 확인한 뒤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직후다. 우리은행은 “금액 등 세부적인 내용은 자체 조사와 함께 수사를 의뢰한 상태로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은행업계에 따르면 횡령 자금은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에 나섰던 다야니가(家)가 대주주인 이란의 가전업체 엔텍합이 지불한 계약금(578억원) 일부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그해 12월 투자확약서(LOC) 불충분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당시 우리은행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최대주주(지분 57.4%)였던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매각 주관사이자 주채권은행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과거 인수대금을 두고 (엔텍합과) 갈등을 빚다가 M&A는 해지됐으나 이미 받은 (인수금액의 10%인) 계약보증금은 매각 주관사인 우리은행이 관리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에서 이 계약금 관리를 맡은 A씨가 채권단이 몰수한 인수 자금 일부를 빼돌린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A씨가 횡령한 계약금을 엔텍합에 돌려줘야 한다는 점이다.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 가문은 지난 2015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계약금과 이자를 합해 730억원을 돌려달라고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고 2019년 한국 정부가 최종 패소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외환·금융거래가 제한돼 배상금(계약금) 반환을 미루다 올해 초 미국의 송금 허가가 떨어졌다. 우리은행이 다야니 측에 배상금을 갚기 위해 계좌를 확인하면서 횡령 사실을 파악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눈먼 돈'처럼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이유다.

우리은행의 내부 통제 미흡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돈’ 관리를 하는 은행업 특성상 철저한 통제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10년 가까이 내부 직원의 수백억원대 횡령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금융그룹은 4대 금융지주 중 처음으로 은행을 포함한 계열사의 내부통제를 관리하는 내부통제관리위원회를 두고 있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실무자가 출금 등 업무처리를 하더라도 팀장급 이상의 승인권자의 결재를 받아야 하고, 계좌의 통장과 도장 관리조차 담당자를 따로 둔다”며 “업무를 분리하고 이중·삼중 감시하는 상황에서 수백원 자금을 횡령했다는 것은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횡령 규모도 큰 편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권에서 발생한 금융사고 규모는 국민·우리·신한 등 7개 은행에서 116억3000만원이었다. 이중 횡령·유용은 67억6000만원, 배임 41억9000만원, 사기 6억8000만원 등이었다.

금융당국도 현장검사에 나섰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장 검사를 통해 거액의 횡령사고가 장기간 발견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내부통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28일 코스피 시장에서 우리금융지주 주가(종가 1만5300원)는 보합으로 마감했다. 장 초반 횡령 이슈로 5% 이상 급락했다가 장 종료 직전 하락 폭을 모두 만회했다. 2215억원 상당 횡령 사건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던 오스템임플란트와 달리 이번 횡령은 우리금융지주 상장에는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 반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날 우리은행은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은행은) 해당 직원 고발조치와 더불어 발견재산 가압류 등을 통해 횡령 금액 회수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여 손실금액을 최소화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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