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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제재 때문에 안 들켰다? 우리은행 600억 횡령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남대문경찰서는 600억원대 횡령 범행을 저지른 혐의로 우리은행 직원을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28일 밝혔다. 이 직원은 은행 측이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뒤 자수했으나 빼돌린 돈의 사용처 등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한다.

28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28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우리은행의 차장급 직원 A씨는 지난 27일 오후 10시 30분쯤 남대문서에 출석했으며 경찰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 혐의로 그를 긴급체포했다. 앞서 우리은행은 A씨가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약 6년간 600억원대(이자 포함)를 빼돌린 사실을 확인하고 27일 오후 6시 15분쯤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은행 측은 최근 내부 감사에서 A씨의 횡령 정황을 확인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A씨의 휴대전화 등이 꺼져 있어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가 그날 밤 회사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후 A씨가 경찰에 자수했다”고 설명했다.

계약금 계좌서 3차례 걸쳐 600억원대 인출

A씨는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내 기업 매각 관련 팀에서 근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가 빼돌린 돈은 지난 2010~2011년 우리은행이 대우일렉트로닉스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생긴 자금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란의 다야니 가문이 대우일렉트로닉스 매수자로 나섰다가 이견이 빚어지면서 계약은 파기됐다. 이후 우리은행은 수백억원대 계약금을 관리해왔다. 이 돈을 관리한 A씨는 계약금이 들어있는 계좌에서 3차례 인출하는 방식으로 돈을 빼돌린 정황이 은행 감사에서 포착됐다.

A씨의 범죄 행각은 이란에 대한 미국의 금융제재에 따라 우리은행 측이 이란에 계약금을 송금할 방법이 막혔기 때문에 즉각 발각되지 않았다. 올해 초 외교부가 미국으로부터 특별허가서를 발급받아 돈을 돌려줄 방법이 생기게 되면서 A씨의 범행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신인섭 기자.

서울 남대문경찰서. 신인섭 기자.

돈 어디에…“오스템 금괴 사건처럼 현물화 했을 수도”

경찰은 28일 오전 11시부터 A씨를 조사했다. 그러나, A씨는 돈의 사용처 등에서는 의미 있는 진술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경찰은 A씨가 장기간에 걸쳐 범행을 저지르면서 주식 등에 투자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A씨의 범행에 가담한 또 다른 피의자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이날 오전 A씨의 친동생이 경찰에 자진 출석한 뒤 귀가하기도 했다. 그는 경찰에서 ‘형의 범행을 알고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의 동생을 다시 불러 범죄 가담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오스템임플란트 회삿돈 2215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 이모씨가 지난 1월14일 오전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오스템임플란트 회삿돈 2215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 이모씨가 지난 1월14일 오전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권 등에선 A씨의 범행이 그 대범성과 규모 등에서 지난해 말 발생한 2210억원대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과 유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오스템임플란트 직원이었던 이모씨는 회삿돈을 빼돌린 뒤 681억원 상당의 금괴로 현물화했다. 회사 계좌에서 빼돌린 돈을 다른 계좌로 옮겨 주식에 투자하고, 돈을 다시 회사 계좌에 채워 넣는 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 관계자는 “거액의 횡령금을 ‘전부 소진했다’는 주장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돈을 금괴 등으로 현물화했거나 소유권 이전을 거듭하면서 은닉하려 했을 가능성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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