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임성근 전 부장판사 '재판 개입' 무죄 확정…"현명한 판단에 경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지난해 8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 받은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지난해 8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 받은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후배 판사들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58·사법연수원 17기)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연루돼 기소된 전·현직 법관 14명 중 6번째 무죄 확정 판결이다. 대법원은 앞선 1·2심과 마찬가지로 ‘직권 없이는 직권남용도 없다’는 법리를 따랐다.

대법원 "무죄 선고 내린 원심 판단 잘못 없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8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 전 부장판사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판사로 재직하며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당시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의 체포치상 사건 ▶프로야구 선수 도박 약식명령 사건에 개입해 해당 사건 담당 판사들의 재판권 행사를 침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가토 다쓰야 사건은 가토 전 지국장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관한 추측성 기사를 게재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사건으로 당시 청와대가 민감하게 대응했던 사건이다. 검찰 수사 결과 임 전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해 해당 사건 재판장에게 ‘판결 선고 전이라도 기사의 허위성을 분명히 밝히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요청 등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중간판결적 판단’ 요청이다.

민변 사건은 진보 성향의 민변 변호사들이 2013년 7월 서울 대한문에서 열린 쌍용차 사태 해결 촉구 집회에서 경찰관을 붙잡아 부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임 전 부장판사는 해당 재판장에게 양형 이유에 논란이 있을 만한 표현이 있다며 검토해보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임 전 부장판사는 또 프로 야구선수가 도박죄로 약식명령이 청구되자 이를 다시 정식재판에 회부한 판사에게 다시 약식명령으로 처리하게끔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는 재판 과정에서 부적절하다고 인정됐다. 하지만 직권남용죄로 처벌하기에는 범죄의 구성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게 심급별 재판부의 공통된 판단이었다. 직권남용죄가 인정되려면 재판 관여 행위가 일반적 직무 권한이어야 하고, 담당 재판장 등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행위라는 게 증명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1·2심 재판부 "직권 없이는 직권남용죄 구성 안 돼"

1심은 '직권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를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지만, 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에게 일선 재판부 판단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고, 각 재판부가 법리에 따라 합의를 거쳐 판단했을 뿐 임 전 부장판사로 인해 권리 행사에 방해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공무원의 행위가 위헌적으로 평가된다는 이유만으로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인 직권을 남용했다고 인정한다면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며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엄격해석의 원칙 및 최소침해의 원칙이 준수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검찰이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 판결도 같았다. 다만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에 대해 ‘부적절한 재판 관여 행위’라고 판단하며 수위를 낮췄다.

대법원은 이날 “원심판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직권남용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검찰 측 상고를 기각했다.

'사법 행정권 남용' 연루 법관 줄줄이 무죄

임 전 부장판사는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 가운데 6번째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선임재판연구관을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가, 12월엔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현 수원고법 부장판사)이 무죄를 확정받았다.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에서 처음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대법원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차장은 아직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국회는 지난해 임 전 부장판사의 이 사건 혐의를 이유로 탄핵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사상 첫 법관에 대한 탄핵심판이어서 관심을 모았지만 헌법재판소는 각하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임 전 부장판사가 이미 법관에서 퇴직했으므로 탄핵심판의 이익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임 전 부장은 이날 판결 선고에 대해 "법리에 따른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대법원에 경의를 표한다"며 "저로 인해 많은 국민과 법원가족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 변호사로서 사법에 대한 신뢰 제고에 이바지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팀은 "사법행정권자의 위법한 재판개입 행위도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의 수석비서관 등이 사적 자치의 영역인 민간 기업의 경영에 불법 개입하거나 고도의 독립성이 요구되는 감사원의 감사에 불법 개입한 행위 등과 마찬가지로 직권남용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해 기소했다"며 "전직 대법원장 등의 불법 재판개입 사건도 1심 진행 중인 만큼 앞으로도 보다 정당한 형사법적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