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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안에 또 위헌적 독소조항…"내부고발자는 이의신청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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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27일 국회 본회의에 제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수정안에는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새롭게 담겼다. 경찰이 무혐의로 판단해 불송치한 사건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에서 고발인을 제외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면서다(형소법 245조의7). 당장 검찰에선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이라는 지적과 함께 중요한 내부고발이나 기관고발 사건을 ‘암장’할 우려가 크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 저지를 위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 저지를 위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고발인의 이의신청권 제한 조항은 민주당이 전날(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1소위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할 땐 포함됐지만, 법사위 안건조정위와 전체회의를 거치면서 삭제됐다. 민주당은 그러나 이날 오후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직전 이 내용을 부활시킨 수정안을 제출했다.

이에 대해 재경지검의 한 간부는 “고발인을 제외한다는 건 결국 뇌물·직권남용·직무유기 등 공직자범죄, 국가가 피해자인 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위반 등 선거범죄는 아예 건들지 말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내부고발인 공익신고 사건이나 선관위·감사원·국민권익위 등 국가기관이 고발하는 사건의 경우 고발인이 사실상 당사자인데도 이의신청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며 “결국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빠져나가려는 의도밖에는 안 보인다”고 비판했다. 현재 본회의에는 공직자범죄와 선거범죄를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에서 삭제하는 검찰청법 개정안도 상정돼 있다. 경찰 불송치사건에 대한 고발인 이의신청으로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한 대표적 사례로는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성남FC 후원금 강요 의혹 사건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제출한 수정안에는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새롭게 담겼다. 현행 형사소송법과 개정안, 수정안(왼쪽부터) 속 245조7의 조문대비표.

더불어민주당이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제출한 수정안에는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새롭게 담겼다. 현행 형사소송법과 개정안, 수정안(왼쪽부터) 속 245조7의 조문대비표.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e-PROS)’에도 해당 조항이 독소조항이라는 취지의 글이 속속 올라왔다.

박형철 대구지검 검사는 4년 전 재배당받았던 한 국내 최대 규모 소방설비업체의 조직적 성능 조작행위에 대한 내부고발 사건을 언급했다. 경찰 수사 결과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당시는 검·경 수사권 조정 전)된 뒤 고발인들의 이의신청으로 압수수색 등 보완수사를 벌인 끝에 해당 업체 대표이사를 구속한 사건이다.

박 검사는 “사건 송치 이후 고발인들은 여러 차례 검사실에 전화해 ‘해당 업체 담당자가 누가 제보했는지 색출하고 있다. 검찰에서 사건을 적극 수사해달라’고 요청했다”며 “만약 이 사건에서 고발인의 이의신청이 없었다면 고발인들은 내부고발자로 낙인 찍혀 업계를 떠나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대형 화재사고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그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

박 검사는 이어 “제보자 색출로 인한 피해를 견뎌가며 국내 1위 업체를 상대로 내부고발한 퇴직 직원들의 용기의 가치는 결코 고소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여겨져선 안 된다”며 “수사의 오류는 고발인과 고소인을 가려가면서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고발인과 고소인의 이의신청권은 모두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고장난 소방설비는 언젠가 대형참사를 부르듯, 고발인들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범죄 대응에 대형참사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의 수사권을 부패범죄, 경제범죄로 축소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7일 본회의에 상정된 가운데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태극기와 검찰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의 수사권을 부패범죄, 경제범죄로 축소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7일 본회의에 상정된 가운데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태극기와 검찰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정종헌 서울남부지검 검사는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정 검사는 “헌법상 재판청구권은 사법절차에의 접근을 위한 기본권, 즉 사법행위청구권을 포함한다”며 “이는 법원에 대한 국민의 접근을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보조적 기본권으로, 법의 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불가결한 전제”라고 설명했다.

정 검사는 이어 “사경(사법경찰관)의 사건 송치 및 검사의 불기소의 경우, 고발인은 검찰청법상의 항고 절차 및 법원에 대한 재정신청으로 다툴 수 있으나 사경의 사건 불송치 및 검사의 기록 반환의 경우 고발인은 위법한 불기소 처분에 대해 전혀 다툴 수 없다”며 “수사기관인 사경의 사건 송치 여부라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고발인의 법적 구제절차 박탈 여부, 즉 고발인의 헌법상 재판청구권 행사 여부가 좌우되므로 고발인의 재판청구권을 자의적으로 차별해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위헌적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수정안 성안에 관여한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발인의 경우 일반 송부사건으로 봐서 검사가 내용을 보고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불송치사건의 경우에도 그 이유를 명시한 서면과 함께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검사에게 송부하고 검사는 송부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경찰에 반환하도록 하고 있는데(245조의5 2호), 이 과정에서 고발인에 대한 법적 구제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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