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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장 '운명의 시간' 왔다…미·중·일 대사 포함 30명 옷벗을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새 정부가 출범할 때쯤이면 고위 공무원은 ‘간택의 순간’을 맞는다. 1급 이상 공무원은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사표를 제출하는 것이 관례라서다. 청와대와 각 부처 장관은 사표를 제출한 고위 공무원의 업무 철학, 전문성 등을 평가해 함께 일할 사람과 옷을 벗어야 할 사람으로 분류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취임 후 곧장 1급 이상 공무원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외교부의 상황은 다른 부처보다 더 복잡하다. 외교부 본부 뿐 아니라 재외공관장들 역시 사표 제출 대상에 포함된다.

재외공관장은 각국에서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기능을 하고, 특히 대사는 '특명전권 대사'다.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신임장을 근거로 주재국에서 외교활동을 한다. 따라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 새로운 대통령의 재신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2017년에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전 재외공관장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특임' 30여명 대대적 물갈이 예고 

외교부는 각국에 총 167개의 재외공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30여개 공관의 대사와 총영사는 특임 공관장이다. [자료: 외교부]

외교부는 각국에 총 167개의 재외공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30여개 공관의 대사와 총영사는 특임 공관장이다. [자료: 외교부]

현재 외교부는 대사관·영사관·대표부 등 총 167개의 재외공관을 운영하고 있다. 다음달 10일 새 정부가 출범하면 167명의 재외공관장이 사표를 제출하고, 이들에 대한 재신임 절차가 이뤄진다.

과거 전례를 보면 ‘늘공’에 해당하는 외교관 출신의 재외 공관장은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직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치인·교수 등 비외교관 출신의 특임 공관장은 사정이 다르다. 이들은 사표 제출과 동시에 직을 잃고, 새 정부 사람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특임공관장 임명시 가장 많이 차지하는 이유가 ‘국정운영 철학에 대한 높은 이해도’인 만큼 정부 교체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이런 관례대로라면 이번에는 주요국 대사 상당수가 교체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 직업 외교관이 재외 공관장이 되는 ‘외교부 순혈주의’를 청산하겠다며 특임공관장 비율을 전체의 30%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해왔고, 과거 정부에 비해 특임 공관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30여명이 특임 공관장이다.

미·중·일 대사 모두 '특임'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장하성(왼쪽 둘째) 신임 주중대사, 남관표(오른쪽 첫째) 신임 주일 대사 등에 대한 신임장 수여식 직후 간담회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장하성(왼쪽 둘째) 신임 주중대사, 남관표(오른쪽 첫째) 신임 주일 대사 등에 대한 신임장 수여식 직후 간담회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당장 한반도 주변 4강인 미·중·일·러 중 러시아를 제외한 3개국의 대사는 모두 특임 공관장이다. 독일 역시 마찬가지로 2020년 청와대 인사수석 출신의 조현옥 주독일 대사가 임명되며 특임 공관장으로 채워졌다.

장하성 주중 대사는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내는 등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지만 임명 당시부터 자격 논란에 시달렸다. 강창일 주일 대사는 ‘일본통’으로 불리지만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일본 총리와 외무상을 한 차례도 면담하지 못했단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일었다.

이수혁 주미 대사의 경우 외교관 출신이지만 2006년 퇴직해 국회의원을 지내다 대사로 발탁돼 특임 공관장으로 분류된다. 이 대사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한·미 동맹이 완전하게 한 트랙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꼭 도움이 되는 것인가에 대해 다른 측면에서 보는 사람들도 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샀다. 이는 대한민국을 대표해 미국에서의 외교활동을 총괄하는 주미대사로서 적절치 않은 발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말 많고 탈 많은 '특임 공관장' 

지난해 7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우리의 국제위상에 걸맞은 선진외교를 위한 공관의 역할'을 주제로 재외공관장 회의를 주재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우리의 국제위상에 걸맞은 선진외교를 위한 공관의 역할'을 주제로 재외공관장 회의를 주재했다. [연합뉴스]

사실 지난 5년간 외교부 안팎에선 특임 공관장의 비율을 늘리는 게 곧 외교부 개혁으로 연결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재외공관장은 최전선에서 한국을 대표해 상대국과의 외교·협의에 나서야 하는 만큼 전문성과 외교력이 검증된 인물이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특임 공관장은 이른바 보은 인사의 결과인 경우가 많았고, 정치인의 경우 재외공관장 자리를 ‘다음 커리어를 위한 휴식기’ 정도로 인식하곤 했다.그러다 보니 주재국에서 기본적인 언어 문제로 외교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황당한 경우까지 생겨났다. 현지어는 물론이고 영어로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다. 외교적 면담에서 상대방의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동문서답을 반복하는 낯뜨거운 상황이 반복된 공관도 있었다고 한다.

재외공관에서 발생하는 갑질과 성추문 등 각종 사건사고 역시 그 중심엔 대부분 특임공관장이 있었다. 지난해 초엔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 출신인 이인태 전 주나이지리아 대사가 성비위 은폐 등의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지난해 8월엔 문 대통령의 고등학교 동문인 특임공관장이 직원들에 대한 갑질과 청탁금지법 위반 등이 의혹으로 감찰을 받았다.

지난해 8월엔 그에 앞서 2019년엔 김도현 주베트남 대사가 직원들에 대한 갑질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해임됐다. 외교부는 특임 공관장이 잇따라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사고가 계속되자 2019년 이들에 대한 별도 교육을 신설했다. 특히 계속된 성추문을 예방하기 위해 통상 3주간 이뤄지는 공관장 교육에 더해 '성비위 예방책 교육'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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