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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은 구원"…교황도 '손절'한 러 종교 1인자의 궤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4일(현지시간) 부활 미사 중인 러시아정교회 키릴 총대주교. A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부활 미사 중인 러시아정교회 키릴 총대주교.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성스러운) 투쟁에 들어섰다.”
“우리는 범죄자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를 받도록 해주는 것이다.”

러시아정교회 키릴(76) 총대주교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적극 지지하면서 종교계가 발칵 뒤집혔다. 러시아정교회는 기독교·천주교에 이은 기독교 3대 분파인 동방정교회의 가장 큰 교파다. 국민 대다수가 정교회 신자인 러시아에서 총대주교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대통령 전용기를 사용하고 군대 사열을 받는 등 국가원수급 예우를 받는다. 종교계의 푸틴인 셈이다.

“러, 우크라에 무력 행사할 권리 있어”

키릴 총대주교는 지난달 9일 “러시아는 안보를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무력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며 “서방은 한민족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이간질해 우크라이나인들을 살해하도록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달 부활절엔 “(푸틴은) 러시아 국민에게 고상하고 책임감 있는 봉사를 하고 있다”라거나 “군 복무는 이웃을 향한 적극적인 복음주의 사랑”이라고도 했다. 이를 두고 워싱턴포스트는 “우크라이나와 민간인을 향한 푸틴의 공격을 정당화하는 레토릭(수사학)”이라고 했다.

2020년 2월 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만난 키릴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 로이터=연합뉴스

2020년 2월 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만난 키릴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종교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바르톨로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정교회 전체의 위신을 깎아 먹고 있다”고 비판했고, 전 세계 정교회 성직자 320여명도 탄원서를 통해 키릴을 ‘이단’으로 간주하면서 “도덕적 범죄를 저질렀다”며 교회 법정에 회부해달라고 요청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6월 예정된 키릴과의 레바논 회담을 취소했고, 인권단체들은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범죄 선동 혐의로 기소해달라고 촉구했다.

미국 국제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26일(현지시간) “종교인들의 반대는 푸틴에 대한 키릴의 지지가 교회 이데올로기가 아닌 푸틴의 국가 이데올로기임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여러 면에서 러시아에 거룩한 전쟁이 됐고, 키릴을 그 윙맨(동반자)으로 영입한 것”이라면서다. FP는 “푸틴의 지정학적 야망은 신앙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민족주의와 신앙, 보수적 가치, 그리고 ‘루스키 미르’(러시아 세계)가 엮여있다”면서 “푸틴과 키릴은 동성애 혐오를 공유한다”고도 했다.

“우크라 전쟁, 정치 넘어 ‘구원’에 관한 것”

지난 7일(현지시간) 비둘기를 날리는 키릴 총대주교. AP=연합뉴스

지난 7일(현지시간) 비둘기를 날리는 키릴 총대주교. AP=연합뉴스

키릴 총대주교는 지난달 6일 ‘용서주일’ 미사에서 지난 2014년 시작된 돈바스 전쟁과 관련해 “서방은 8년간 돈바스를 억압해왔다”며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로 대표되는 세계 권력이 요구한 가치를 돈바스가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오늘날 국제 관계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우크라이나 전쟁)은 정치를 넘어 훨씬 더 중요한 인간의 구원에 관한 것”이라며 “나는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를 촉구하지만, 공의가 없는 용서는 항복과 연약함”이라고 했다.

키릴 총대주교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군댜예프다.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 레닌그라드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주교 서품을 받았다. 모교인 레닌그라드 신학교 총장을 10년간 재직했고, 2008년 전임 총대주교 알렉시 2세가 숨지자 이듬해 2009년 2월 총대주교로 선출돼 소련 붕괴 후 선출된 최초의 러시아정교회 수장이 됐다. 10년 넘게 종교를 주제로 한 주간 TV 쇼를 주최했고,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나 가톨릭과 러시아정교회 수장의 첫 회동 기록도 세웠다.

자산 등 사생활 관련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2019년 러시아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는 그의 자산을 40억~80억 달러(약 5조~10조원)로 추산했고 러시아 탐사 전문매체 ‘프로엑트’는 2020년 키릴 총대주교가 친척과 함께 러시아에 287만 달러 상당의 부동산 9채를 소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3만 달러짜리 명품 시계 보유 논란도 있었다. 키릴 총대주교는 2012년 “시계를 가진 건 맞지만 착용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지만, 시계를 착용한 사진이 공개되자 이미지를 조작해 시계를 삭제해 논란이 됐다. 포브스는 2009년 소련 국가문서를 인용해 키릴 총대주교가 소련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이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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