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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누명 윤성여씨 "검수완박? 억울한 사람 쏟아질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0년 12월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재심 청구인 윤성여 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웃어보이고 있다. 뉴스1

2020년 12월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재심 청구인 윤성여 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웃어보이고 있다. 뉴스1

“만약에 (검찰) 수사권이 폐지되면 참 억울한 사람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지금보다 배는 나오지 않을까요. 장애인도 그렇고. 검사가 그거(수사권) 없으면 검찰청은 있으나 마나 한 것 아니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경찰이 다 한다고 하면 그 업무를 누가 충당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검찰) 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거예요.”

경찰의 강압 수사로 ‘살인의 추억’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가 저지른 8차 범행의 범인으로 몰려 20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성여(55)씨는 27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1차 변론 기일을 마친 뒤 “현재 국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추진되는 과정을 보면 심정이 어떤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윤씨가 누명을 쓴 8차 사건은 1988년 9월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가정집에서 13세 박모양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불편한 다리로 인근 농기계수리점에서 일하던 윤씨는 이듬해 7월 누명을 쓰고 검거됐다. 윤씨의 나이 21세 때였다. 그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하면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했다”고 했지만, 2심과 3심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한 후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추가 DNA 증거가 발견되고 이춘재가 범행을 자백한 이후인 2020년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윤씨는 재심 청구 당시 '경찰이 아닌 검찰이 사건을 직접 수사해달라'는 수사촉구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재심 과정에서 윤씨가 경찰의 불법체포 및 감금, 폭행·가혹 행위로 인해 허위 자백을 한 사실이 인정됐다. 윤씨가 유죄 판결을 받게 된 결정적 증거였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서가 조작된 사실도 확인됐다. 그는 지난 2020년 12월 사건 발생 32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윤씨는 '검수완박' 법안이 시행되면 경찰 수사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 없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지금은 경찰이 수사를 잘못했을 때 검찰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데, 그게(검찰 수사권) 없어지면 할 수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경찰에서 일단 조사를 받아서 억울한 부분이 있으면 검찰에 가서 이야기할 수 있다”며 “경찰만 수사한다고 하면 검찰에 가서 하소연할 수 없지 않냐”고 덧붙였다.

박준영 변호사. 연합뉴스

박준영 변호사. 연합뉴스

그간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검수완박' 법안에 반대 입장을 내놓았던 윤씨의 변호인 박준영 변호사도 이날 여당의 무리한 입법을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33년 전 윤씨 사건을 (검수완박과) 연결해서 말하는 건 한계가 있다”면서도 “한 나라의 형사사법 절차를 크게 바꾸는 문제를 좀 더 신중하게, 그리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잘 반영해서 정말 '진짜 개혁'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검수완박 법안이 시행되면 서민들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변호사는 “형사사법 절차가 복잡해지고, 책임성이 옅어지게 되면 가장 약한 고리에서 문제가 생긴다”며 “돈 없고 백 없고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는 게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작년에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에 검찰은 칼퇴근하고, 경찰은 업무가 가중돼 곡소리가 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개선 없이, 오히려 문제점이 더 가중되는 형태도 문제”라며 “일을 하려고 하는 데 할 수 없고, 망설이게 하고 서로 떠넘길 수 있는 문제도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검찰도 최근 윤성여씨 사건 등을 거론하며 “법안이 통과되면 같은 사례가 반복돼도 견제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최용훈 대검찰청 인권정책관은 지난 20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수완박’ 법안이 시행되면 위법 체포·구속된 사람에 대해 검사가 석방 ‘명령’을 할 수 없고, 경찰에 석방 ‘요구’만 할 수 있게 된다”며 “검사의 판단에 따라 억울한 사람을 바로 석방할 수 없다는 점 등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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