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뷰티 공룡으로 불렸던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가 2년 연속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악재는 물론 국내 화장품 시장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세포라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124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매출은 12.7% 감소했고, 영업 이익은 적자전환했다. 영업 손실은 142억원을 기록했다. 자본금 262억원에서 자본총계 –98억원으로 지난해 ‘완전 자본 잠식’ 상태가 됐으며, 결손금은 355억원에 달한다. 부채가 기업 자산보다 많아진 상태다.
명동점 폐점, 조기 철수설도
세포라코리아는 지난 2019년 10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파르나스몰에 1호점을 내며 국내 첫 진출 했다. 당시 글로벌 명품 기업 LVMH가 운영하는 세포라의 한국 진출에 대한 기대감은 남달랐다. 세포라는 1970년 프랑스에서 설립되어 현재 전 세계 35개국, 2700여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화장품 전문 소매점으로는 울타(Ulta)와 더불어 가장 큰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세포라코리아는 1호점 출점 이후 명동 롯데 영플라자·신촌 현대 유플렉스·잠실 롯데월드몰·여의도 IFC몰·갤러리아 광교점 등 5개의 신규 매장을 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외국인 관광객 상권인 명동이 초토화됐고, 결국 지난 1월 명동 2호점의 문을 닫았다. 이후 신규 출점도 지지부진하다. 국내 진출 당시 세포라코리아는올해 말까지 온라인 스토어를 포함해 14개의 신규 매장을 오픈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현재 총 5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데 그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선 세포라코리아의 조기 철수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1999년 일본 시장에 진출했던 세포라는 진출 2년 만에 사업을 접은 바 있다. 2008년 홍콩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2010년 철수했다.
뷰티 편집숍은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뷰티 브랜드를 한 곳에서 판매하는 사업 형태를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뷰티 편집숍은 CJ 올리브영이다. 한국판 세포라로 불렸던 신세계 시코르도 코로나19로 인한 화장품 경기 침체로 지난해 주요 도시의 매장을 줄인 바 있다.
성과 내지 못하는 외산 뷰티 편집숍
그동안 한국은 뷰티 편집숍 불모지로 여겨졌다. 벨포트·온뜨레 등 프레스티지 뷰티 편집숍은 물론 헬스앤뷰티숍(H&B) 형태인 영국 부츠·롭스·랄라블라 등 많은 뷰티 편집숍들이 국내 시장에 도전장을 냈지만 대부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편집숍이 중저가 화장품은 올리브영, 고급 화장품은 백화점이라는 이분법 구도를 깨지 못한 것을 패인으로 분석한다. 특히 세포라의 경우 뷰티 플랫폼으로서의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포라에 가면 어떤 브랜드를 만날 수 있을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특화 상품의 부재로 세포라만의 경쟁력을 구축하지 못했고, 여기에 부족한 온라인 연계 전략과 가격 경쟁력 약화 등이 겹쳐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다. 세포라가 국내 진출한 이후 수개월 만에 코로나19 악재가 터졌고, 개성 있는 색조 메이크업 브랜드로 초기 마케팅 전략을 세웠던 세포라는 마스크라는 변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 세포라·시코르 등 프레스티지 전략을 취하는 뷰티 편집숍들의 핵심인 ‘체험’을 매장에서 전혀 할 수 없어 타격이 컸다. 시코르 관계자는 “샤넬이나 디올처럼 잘 알려진 명품 브랜드 위주가 아니라 SNS에서 유명한 제품이나 해외 생소한 브랜드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서 매장에 나와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위생 문제 때문에 화장품을 직접 발라보는 등의 체험이 불가능해 (편집숍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한국 시장에 대해 몰이해도 한몫했다. 진정임 뷰티 전문 컨설턴트는 “한국은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서 이미 ‘혁신’ 시장으로 분류될 정도로 화장품 소비가 성숙된 나라”라며 “세포라가 상품의 차별성이나 온·오프라인 연계 전략 등에서 한국 소비자들의 기대 수준에 못 미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