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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서울 통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3남매의 고단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공감을 얻고 있다. 전근대시대에도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도 ‘괜찮은’ 일자리는 서울(한양)에 집중되어 있었고, 서울에서 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조선 전기인 1426년 서울 인구는 약 11만명, 이중 6000명(5.5%) 가량은 사대문 밖에서 살았다. 그런데 조선 후기인 1789년엔 서울 인구는 18만8000명이고, 사대문 밖에서 사는 인구는 7만6000명(40%)으로 급증했다. 서울 인구는 늘어나는데, 사대문 안에 집을 구할 수 없으니 나타난 현상이다. 이때 상당수가 마포·송파·청량리 등에 정착했다. 비록 도성에서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나은 편이었다.

역지사지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역지사지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내금위·겸사복 등 국왕이 사는 궁중을 호위하는 군관 중에서는 파주·교하·양주까지 나가서 거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군인 급료가 턱없이 낮아 비싼 서울 집값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하루 거리인 곳까지 밀려난 것이다. 그마저도 어려울 경우엔 서울에서 하숙을 했고, 관청에서는 이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머무를 수 있는 집을 알아봐 주기도 했다.

『임원경제지』를 쓴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아무리 초라한 집에 살게 되더라도 누구도 서울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서울에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먼저일까,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를 분산하는 것이 먼저일까. 200년이 지났지만 해법을 찾아 실행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