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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윤 당선인, ‘검수완박’에 대해 분명한 입장 밝혀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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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6일 인천 계양구 계양산전통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6일 인천 계양구 계양산전통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권성동, 중재안 합의 배경 석연치 않아    

당선인, 참모 뒤 숨지 말고 직접 나서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대통령의 첫째 임무는 헌법을 제대로 준수하고 헌법 가치를 잘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내비친 것이라고 한다. 전날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을 통해서도 “정치권 전체가 헌법 가치 수호와 국민의 삶을 지키는 정답이 무엇일지 깊이 고민하고 중지를 모아 달라”고 했다.

민주당의 검수완박은 한마디로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의 범죄는 숨기고, 힘없고 배경 없는 국민의 범죄 피해는 구제받기 어렵게 한 것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도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위헌 가능성을 우려했던 법원행정처가 “재판이 무효가 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현실적 문제를 제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뇌물방지작업반(WGB)도 “중재안이 한국의 반부패와 해외 뇌물범죄 수사 및 기소 역량을 오히려 약화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처리에 대해 우려했다.

이해하지 못할 점은 “문재인 정권 비리 수사를 막으려는 위헌적 법안”이라던 국민의힘이 왜 중재안에 덜컥 합의했느냐다. 이 과정에서 윤 당선인이 어떤 판단과 역할을 했느냐도 의문이다. 윤 당선인은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했는데, 중재안은 당선인의 생각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검찰수사권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는 검찰 개혁이 아니라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라며 검찰총장직을 내던졌고, 그게 발판이 돼 1년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금까지 당선인과 당 주변에서 나오는 얘기를 종합하면 지난 22일 부산 일정 중이던 윤 당선인이 전화로 개략적인 내용만 보고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합의 과정과 결정은 국회와 당이 알아서 잘 해달라”는 정도의 당부를 했다고 한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야 중재안의 심각성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해명이 석연치 않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전화로 보고받고 “알아서 잘 해달라”고 했다는 말을 누가 믿겠나. 새 정부와 국민의힘이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내심 검수완박 법안을 찬성하고 민주당과 야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퍼지는 이유다.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합의를 깼다”는 민주당의 프레임에 걸려들었다. 이걸 빌미 삼아 민주당은 중재안의 강행 처리를 시작했다. 수적으로 압도적 열세인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이를 돌파하기 위해선 여론의 힘밖에 없다. 그러려면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고, 야합 의혹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윤 당선인은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겠다”고 했다. 이번 일이야말로 여기에 해당한다. 에두른 말로 넘어갈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