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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수위 높아지는 김정은의 핵무기 사용 협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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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이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인 지난 25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인 지난 25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차기 정부, 철저한 대비 태세 위에서  

현명한 대북 정책 세우고 실천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엊그제 육성 연설을 통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거론했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모태로 삼는 항일유격대 창설 90주년 기념 열병식 석상에서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는 없다”면서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 무력은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화국의 핵 무력은 언제든지 자기의 책임적인 사명과 특유의 억제력을 가동할 수 있게 철저히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여태까지 핵무장 명분으로 주장해 온 전쟁 억지뿐 아니라 국가 이익을 수호한다는 구실 아래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는 노골적인 핵 협박이나 마찬가지다. 그 대상이 한국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앞서 지난 4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에서 “남조선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 전투 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게 될 것”이라며 “남조선군은 괴멸, 전멸에 가까운 참담한 운명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한 적이 있다.

김정은이 직접 핵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이상 핵무기를 앞세운 북한의 협박은 갈수록 잦아지고 그 수위를 높일 것임에 틀림없다. 자칫 대응을 그르치게 되면 북한의 협박에 끌려가며 핵 인질이 될 수 있다. 그런 불행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와 안보 당국은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어제 대통령직인수위가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한국형 3축 체계 능력을 조속히 완성해 나갈 것”이라며 “아울러 군사적 초격차 기술과 무기체계 개발을 병행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은 적절한 대응이었다.

핵 무력 사용을 거론한 김정은의 발언으로 그동안 북한이 보여온 이중적 태도와 기만전술의 속셈도 명백하게 드러났다. 김정은은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남과 북이 계속해 진함 없이 정성을 쏟아 나간다면 얼마든지 남북 관계가 민족의 기대에 맞게 개선되고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이 변함없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불과 닷새 만에 같은 입으로 극과 극을 오가는 말을 태연하게 쏟아내는 이중적 태도가 북한 대남 전술의 속성이다. 그들은 유화적 태도로 일관한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는 비핵화 의지가 있는 것처럼 기만하면서 물밑에서는 끊임없이 핵무기 개발을 지속해 온 결과 이제는 드러내놓고 핵 사용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차기 정부는 북한 핵 개발의 전략적 의도와 본질을 정확하게 궤뚫어보는 바탕 위에서 현실적이고 현명한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더 이상 ‘비핵화 의지’라는 가공(架空)과 상상의 산물에 끌려가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