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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미래다] [기고] 어린이날 선언 100주년, 우리 아이 행복지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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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1. 어린 사람을 헛말로 속이지 말아 주십시오. 2. 어린 사람을 늘 가까이하시고 자주 이야기하여 주십시오. 3. 어린 사람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십시오. 4. 수면과 운동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십시오. … 7. 장가나 시집 보낼 생각 마시고 사람답게만 하여 주십시오.”

1922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 선생과 그의 동료들은 ‘어린이날’을 선언하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선전물을 배포했습니다. 이를 두고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은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선언”이라 평가하였습니다. 서구에서는 세이브더칠드런 창립자 에글렌타인 젭 여사가 1923년에 만든 어린이 권리선언 초안이 1924년 제네바선언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입니다.

1923년 ‘소년의 지도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방정환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이는 결코 부모의 물건이 되려고 생겨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느 기성 사회의 주문품이 되려고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네는 훌륭한 사람으로 태어나오는 것이고 저는 저대로 독특한 한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일제강점기 시대, 선생은 어린이에게서 미래를 보신 것 같습니다. “어린 사람 앞에서 아무리 잘난 체, 윗사람인 체하여도 어른은 어린 사람보다 이십 년, 삼 사십 년 뒤떨어진 낡은 사람입니다. 어른의 속에서 나와서 어른의 보호 아래에서 자라긴 하지만, 어린 사람은 어른보다 이십 년, 삼 사십 년 새로운 시대를 타고 나온 새 사람입니다.”(조선일보 1926년 5월 1일 자) 방정환 선생은 기차나 전깃불이 마차, 콩기름불과 얼마나 다른지 예로 들며, 새로운 생각이 나올 것은 새 세대라고 했습니다.

제가 태어난 1955년에 우리나라는 1인당 GDP가 82달러에 불과한 최빈국이었습니다. 1인당 GDP가 3만5195달러(2021년)인 지금의 대한민국과는 너무 달랐죠. 저는 1983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여론조사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여론조사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제 전문분야를 살려 매년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를 산출하여 OECD 국가들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2009년 첫 번째 조사 당시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가장 낮은 20위였습니다. 이후 점점 개선되어 2009년 64점에서 2015년 90점까지 올랐다가, 2016년 82점, 2017년 87점, 2018년 94점, 2019년 88점, 2021년 79점으로 들쭉날쭉합니다. 2009년부터 이루어진 12번의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주관적 행복지수는 줄곧 좋아지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크게 낮아졌습니다.

한국방정환재단에서는 2009년부터 현대리서치, 서울메트로, S&I Corp 등과 함께 지역아동센터에 작은물결문고 설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1년부터는 웰컴금융그룹과 장학금 지원 사업을 펼치고, 서울시 키움센터, 경기도 다함께 돌봄센터 사업에도 참여해 어린이 청소년의 교육과 돌봄 공백을 메우고 있습니다.

매년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어른들은 또 어디에 가고, 무엇을 사줘야 할지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번 어린이날엔 아이와 함께 요리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눈에 띄는 ‘맛있는 추억을 그리다’ 캠페인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제 위 세대는 물론 제 아래 세대에게도 익숙한 식품기업 샘표가 10년째 이어온 캠페인입니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고도 하지요. 특히나 사랑하는 가족과 맛있게 음식을 먹던 순간의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고 오래도록 든든한 힘이 됩니다. 더욱이 어른과 아이가 요리를 함께하면 다양한 식재료를 다루는 과정에서 오감이 자극을 받아 즐거워질 뿐만 아니라 인내심과 집중력, 관찰력도 자연스럽게 키워집니다.

부모와 어린이 모두에게 추억으로 남을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보라고 옆구리 꾹 찌르는 이런 캠페인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렇듯 각계각층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작은 노력이 더해질 때 비로소 어린이·청소년의 행복도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이상경 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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