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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북 요지에 문화 랜드마크…공연장 짓는 대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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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롯데그룹이 2016년 개관한 롯데콘서트홀. [중앙포토]

롯데그룹이 2016년 개관한 롯데콘서트홀. [중앙포토]

삼성생명, 신세계, 현대자동차, 코리안리. 곧 공연장을 짓는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의 계획에 따르면 서울의 강북과 강남에 걸쳐 새로운 공연장이 수년 내에 문을 연다. 현재 서울의 주요 콘서트홀은 삼각 구도다. 서초동의 예술의전당(1988년 개관),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1978년), 잠실의 롯데콘서트홀(2016년)이 음악 공연 대부분을 담당한다. 여기에 대기업들의 새 공연장을 더할 경우 다양한 규모의 무대가 자리 잡게 된다.

삼성생명은 서울 서소문의 새로운 빌딩에 콘서트홀을 새로 짓는다. 2026년 또는 2027년 개관할 예정이다. 콘서트홀이 오피스 건물 두 동을 공중에서 연결하는 형태로 추진한다. 1985년 문을 연 호암아트홀의 명맥을 잇는 공연장이다. 호암아트홀은 2017년까지 서울 강북 지역의 주요 클래식 콘서트홀이었다. 객석 643석 규모로 소규모 오케스트라 혹은 실내악 편성의 공연을 하기에 알맞았다. 삼성생명 측은 “호암아트홀의 문화 기능을 계승하고 확대 개편한다”고 새 콘서트홀의 의미를 설명했다.

신세계는 보다 프라이빗한 공연장을 열 계획이다. 신세계그룹은 2013년 매입한 서울 장충동 부지에 연수원을 짓고 있는데, 이 건물 안에 소규모 공연장을 계획하고 있다. 400~500석 규모로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에는 개관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공사 부지에 올리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내 공연장 계획을 일찌감치 발표했다. 2016년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1800석과 600석의 공연장 두 개가 포함돼 있다. 중대형 오케스트라부터 소규모 실내악, 뮤지컬 공연에도 알맞은 크기다. 당초 개관 목표는 2026년이었다. 하지만 건물 높이와 면적 관련 인허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개관 시기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구체적 완공 날짜 등을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공연장은 (GBC) 계획 자체에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실내악·독주회 수요 맞출 수 있게 돼”  

삼성생명이 서울 서소문에 계획하는 새로운 클래식 콘서트홀은 두 건물을 연결하는 형태다. 2026~27년 예정이다. [사진 삼성생명]

삼성생명이 서울 서소문에 계획하는 새로운 클래식 콘서트홀은 두 건물을 연결하는 형태다. 2026~27년 예정이다. [사진 삼성생명]

재보험사인 코리안리는 광화문 사옥 재건축안에 클래식 전용홀을 포함했다. 1984년 지었던 사옥을 새로 올리면서 지상 2~5층에 클래식홀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수송공원 쪽으로 자리하는 1004석의 공연장이다. 이런 정비 계획은 지난 2월 종로구청을 통해 주민에게 공개됐고, 현재 서울시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새 공연장을 계획하는 기업들은 서울 예술의전당(신세계 스퀘어), 서울시향(현대차, 코리안리) 등 공연장이나 공연단체를 후원한 경험이 있다.

새로 들어설 공연장은 대부분 중형이다. 공연장은 보통 객석 수를 기준으로 크기를 가늠하는데, 크기로는 세종문화회관(3000석), 예술의전당 콘서트홀(2300석), 롯데콘서트홀(2000석) 순서다. 기업들의 새 공연장은 ▶신세계 400~500석 ▶코리안리 1004석 ▶삼성생명 1200석 ▶현대차 최대 1800석 등 크지 않은 규모다. 관객을 많이 들여 공연을 통한 수익을 낼 목표가 없다는 뜻이고, 운영과 관리의 편의성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 이창주 협회장은 “실내악 공연이나 독주회 무대의 수요를 맞출 수 있어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GBC를 세울 예정인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 터. 공연장 건립이 계획에 포함돼있다. [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GBC를 세울 예정인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 터. 공연장 건립이 계획에 포함돼있다. [연합뉴스]

새 공연장들이 음향과 시설 면에서 새로운 수준을 제시할 거라는 기대도 있다. 예술의전당, 고양아람누리,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 등의 음향을 컨설팅·설계한 김남돈 건축음향연구소 대표는 “그동안 음악 공연장은 ‘건축적 랜드마크’라는 기이한 역할을 요구받았다”고 비판했다. 외관의 상징성과 화려함을 중시해 정작 공연장 내부 소리의 울림 등 내실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다.

김 대표는 “이제는 소리의 품질을 최우선으로 두는 콘서트홀의 시대”라며 “기업 공연장의 일차 목표가 흥행·수익이 아닌 만큼 객석 수를 억지로 늘리는 대신 최적의 소리를 추구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스위스 루체른의 공연장 KKL처럼 공연장 벽을 여닫아 넓이를 바꾸고 이에 따라 소리의 울림을 조절할 수 있다. 클래식부터 재즈까지 좋은 소리로 들을 수 있는 무대다. 김 대표는 현재 삼성생명 콘서트홀 음향 설계를 담당하고 있다.

“공연 콘텐트·관객 성격 분명히 해야”  

다만 시설의 증가가 문화 수준의 향상을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공연장은 계획 단계부터 콘텐트의 내용, 관객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정호 공연 칼럼니스트는 “영국·일본·대만 등의 예를 봐도 새로운 공연 시설이 도심 재생과 문화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면서도 “적절한 운영 계획과 철학이 없으면 시설은 실패한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극장을 채울 콘텐트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도시 인구가 감소하면서 문화 시설의 과잉 공급에 대한 각성도 있는 만큼, 새 공연장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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