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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턴했더니 ‘반짝 혜택’만…기업들 국내 복귀 망설이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대구로 유턴한 성림첨단산업은 올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신규 공장을 짓고 있다. [사진 성림첨단산업]

지난해 대구로 유턴한 성림첨단산업은 올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신규 공장을 짓고 있다. [사진 성림첨단산업]

“공장 착공이 지연되면서 세금 감면 혜택이 사라졌습니다. 신규 채용에 따른 지원금이 도움은 됐지만 큰 혜택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부로부터 ‘유턴기업’으로 인정받았던 중소 가공업체의 김모 전무는 2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제시하는 ‘당근’이 효과가 작다는 얘기다. 다른 기업에도 국내 복귀를 추천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김 전무는 “기대했던 만큼 지원을 받지 못해 (유턴을) 후회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정부마다 추진하는 리쇼어링 정책

국내 복귀 기업이 가져오는 신규 일자리 창출 효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내 복귀 기업이 가져오는 신규 일자리 창출 효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해외에 진출한 생산기지를 국내로 되돌리는 리쇼어링 지원책은 노무현 정부 이후 각 정부가 단골로 추진하는 고용 촉진 정책 중 하나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20년 취임 3주년 대국민 담화에서 “국내 기업 유턴과 해외 기업 유치를 위해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정부는 ‘유턴기업 세제 지원 확대 및 제도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해외 생산량 감축 의무를 없애고 기존 국내 사업장을 증설하는 것도 복귀로 인정해주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대선후보 시절 보조금 확대·추가 감세 등 유턴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8일 권영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은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 기업 유턴을 촉진하고 유턴 기업에 대한 지원도 파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효성 떨어지는 ‘반짝 혜택’”

국내 복귀 기업이 가져오는 생산액·부가가치 증가 효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내 복귀 기업이 가져오는 생산액·부가가치 증가 효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하지만 리쇼어링 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평가는 후하지 않다. 실질적 효과가 없는 ‘반짝 혜택’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김 전무는 “유턴 후 인건비가 상승해 최종 제품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며 “고정비가 가장 부담스럽다. 보조금을 감안해도 중국·베트남에서 공장을 돌리는 것과 비교가 안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완성차 생산 중단 사태를 야기한 와이어링 하네스(전선 뭉치) 기업들이 해외로 나간 이유도 인건비 때문이었다. 자동차부품 업계 관계자는 “와이어링 하네스는 대표적인 노동 집약적 상품이라 유턴은 꿈도 못 꾼다”며 “아무리 혜택을 줘도 돌아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야 고용 창출과 생산 효과를 기대하고 유턴을 촉구하지만 가격 경쟁력을 다투는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 비합리적 결정일 수 있다”며 “이를 감수할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했다.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2019년 8월 울산에 친환경차 부품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유턴 대기업의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 최대 100억원의 보조금과 법인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현대모비스는 보조금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신규 고용 20명 이상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회사는 기존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신규 공장을 가동했다. 회사 측은 “신설 공장이 전문성을 요구하는 전동화 파트라 전환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이에 대해 “신규 채용만을 상시 고용으로 봐야 한다”고 유권 해석했다.

지난 2020년 효성은 베트남에 아라미드 공장을 신설하려다 기존 울산공장의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하지만 효성은 해외 시설 감축 등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아예 유턴 기업으로 지정받지 못했다. 해외 있는 공장을 국내 옮겨야 유턴인데, 해외로 옮기려던 ‘계획’을 백지화한 것이 유턴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 필요에 맞는 맞춤형 지원 필요”

현장에서는 정부의 리쇼어링 지원책이 보다 파격적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의 세금 감면, 보조금 외에 기업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지원책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로 돌아왔을 때보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산업을 중심으로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업종별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가령 저임금 때문에 해외에 나가 있는 기업을 위해서는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지원하고, 정보기술(IT) 관련 신사업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규제 걸림돌을 걷어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존의 기업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예방적인 리쇼어링’도 중요하다”며 “세제 혜택·고용 지원금 등 기존 정책을 확대하는 것도 좋지만 법인세율 자체를 낮추고 52시간 근무제에 예외를 두는 등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기업의 국내 생산을 촉진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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