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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죄 수사 막는 '독소조항'…檢 "피해자도 피의자도 인권침해"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합의했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관련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에는 “범죄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벗어나는 수사를 금지한다(별건 수사 금지)”라는 내용이 있다. 모호했던 이 같은 내용이 점점 구체화하는 모양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사는 사법경찰관으로부터 송치받은 사건에 관하여는 동일한 범죄 사실의 범위 내에서 수사해야 한다’(196조 2항)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수사를 개시한 때에는 동일한 범죄사실의 범위 내에서 수사해야 한다’(198조 4항) 등의 신설 조항으로 형사소송법에 담기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서다.

이와 관련, 26일 검찰 안팎에선 “검사의 추가 보완수사를 원천 차단하는 독소조항”(한 검찰 간부)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복수의 검사들은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중요범죄 수사개시 권한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보다 경찰 송치사건에 대한 보완수사의 범위를 ‘동일한 범죄사실’로 제한한 게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체의 추가 수사가 제한돼 현행 규정상 보완수사가 가능한 것으로 해석되는 범죄가 암장되고 수사의 효율성과 신속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정진우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이유에서다.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오른쪽 세 번째) 등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중재안 관련 설명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진웅 사무국장, 진재선 3차장검사, 정진우 1차장검사, 이 지검장, 박철우 2차장검사, 김태훈 4차장검사. 뉴스1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오른쪽 세 번째) 등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중재안 관련 설명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진웅 사무국장, 진재선 3차장검사, 정진우 1차장검사, 이 지검장, 박철우 2차장검사, 김태훈 4차장검사. 뉴스1

“별건수사와 추가범죄 수사는 달라”

특히 전국 성폭력사건 전담 평검사들은 전날(25일) “성폭력사건을 억울함 없이 처리하려는 전담 검사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개념이 불분명한 ‘단일성·동일성’ 등의 용어는 성폭력 수사에 있어 대단히 큰 문제를 갖고 있고, 더 많은 억울한 눈물들을 만들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검사가 형사사법제도의 공백으로 명백한 추가 피해를 눈앞에 두고도 이를 방치하고 수사를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 개정안의 목표냐”며 “범죄자에게는 ‘안도와 희망’을, 범죄 피해자에게는 ‘한숨과 절망’을, 수년간 전문성을 키워 온 저희 검사들에게는 자괴감만을 주게 된다”고 성토했다.

실제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고 범죄수익을 은닉한 혐의로 징역 42년형이 확정된 조주빈의 경우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송치할 때에는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 등만 적용됐지만,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범죄단체조직 혐의가 추가돼 형량이 대폭 늘었다. 그러나 중재안에 따르면, 경찰의 의도와 무관하게 밝혀내지 못한 추가 범행 등 여죄와 진범·공범을 밝히기 위해 검사가 택할 수 있는 건 경찰에 다시 보내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것뿐이다. 정진우 1차장검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여죄를 밝혀내 기소하는 건 피고인이 재판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권익 보호 측면도 있다”며 “별건 수사와는 다르다. 별건 수사 금지는 현행 대통령령을 법으로 상향해도 좋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권상대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앞줄 오른쪽) 등 대검 관계자들이 25일 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권상대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앞줄 오른쪽) 등 대검 관계자들이 25일 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수사범위 제한, 피의자·피해자 모두 인권침해”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수사 개시할때 ‘동일한 범죄사실의 범위 내’에서 수사하도록 한 신설 조항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 검찰 간부는 “지하철 ‘몰카(몰래카메라)’범을 잡았는데 휴대전화에서 강간 혐의의 근거가 되는 자료가 확보되더라도 추가 수사는 못 하는 것이냐”며 “죄명과 범죄사실을 폭넓게 입건해 놓고 수사해야 수사 확대가 가능하도록 설계해 피의자 인권 침해를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간부는 “경찰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부실 수사한 경우 검사가 통제할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사의 수사지휘권도 이미 폐지돼 송치 전후를 막론한 사법통제가 불가하다는 취지다.

일례로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 신혁재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가수 정준영씨가 2016년 8월 전 여자친구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혐의로 고소당했을 때 ▶정씨의 변호인으로부터 ‘휴대전화기나 포렌식 자료의 확보 없이 사건을 신속하게 송치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식사를 제공받고 ▶정씨의 휴대전화를 확보하라는 상급자의 지시를 무시한 채 ▶범행 영상 확보 없이 수사보고서 등에 ‘정씨가 범행을 시인했다’ 등의 허위사실을 담아 형식적인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뇌물수수, 직무유기)로 경찰 간부 A씨에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중재안에 따르면, 이 같은 송치사건에 대한 ‘보완’은 검찰이 A씨와 같은 경찰공무원을 직무유기로 입건해야만 가능하다.

민주당의 계획대로 법안이 통과하면 당장 9월부터 검사의 수사 권한이 삭제되는 선거범죄의 경우 ▶난해한 법리 ▶최단기 공소시효(6개월) ▶권력기관 선거개입에 대한 수사 역량 사장 등으로 경찰 수사가 미진한 경우 검사가 보완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좁다는 지적(이희동 법무연수원 교수)도 나온다. 한 선거범죄 전담 검사는 “자신들이 만든 선거법을 어기고도 선거법 개정을 통해 법원에서 면소 등 ‘셀프 구제’를 받는 국회의원들이 이제는 선거범죄 수사마저 엉망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OECD 반부패기구도 “우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워킹그룹(WGB)의 드라고 코스 의장은 지난 22일 법무부에 “중재안이 통과될 경우 부패 범죄를 비롯, 모든 범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 권한을 규정하는 법 조항이 일괄 삭제될 것으로 보인다”며 “중재안이 한국의 반부패와 해외뇌물범죄의 수사 및 기소 역량을 오히려 약화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자 한다. 나아가 해당 안을 오는 5월 10일 이전에 통과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에도 우려를 표하고 싶다”는 서한을 전달했다.

국제상거래에서 뇌물공여를 범죄로 규정한 최초의 국제적 합의인 OECD 뇌물방지협약 시행을 감독하는 WGB는 매년 OECD 회원국의 반부패 수사 관련 법제 등을 평가하는 반부패 관련 최고 권위기구다. WGB가 주도한 OECD 뇌물방지협약에 따라 한국도 국제뇌물방지법을 제정해 시행하며, 법무부와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들이 매년 프랑스 파리 OECD 본부에서 열리는 WGB 회의에 참석해 국내 이행법이 협약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해 적용되고 있는지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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