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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안"→"야합"…3일만에 입장 180도 바뀐 '코미디 예비여당'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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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석 국회의장 주재 더불어민주당 박홍근(오른쪽)?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검수완박' 중재안 파행 위기에 따른 해법을 논의하기 위한 회동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04.26 김상선 기자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 더불어민주당 박홍근(오른쪽)?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검수완박' 중재안 파행 위기에 따른 해법을 논의하기 위한 회동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04.26 김상선 기자

“혜안과 양보지심으로 (만든) 원만한 합의”가 “정치야합”으로 뒤바뀌는 데는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2일 박병석 국회의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함께 마련한 검찰개혁 중재안에 서명하면서 중재안을 한껏 추켜세웠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혜안과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의 양보지심으로 원만한 합의를 통해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열었다”며 “정말 감사드리고 다행”이라고 말했다. 합의문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선 16분에 걸쳐 ‘백브리핑’ 형태로 중재안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일선 검사들은 그래도 잘된 합의안이다, 이렇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서명 3일 만인 25일 “(합의안에 대해) 재논의하자”고 번복 의사를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25일 “검찰의 6대 범죄(수사권) 가운데 선거, 공직자범죄가 빠진 것에 대해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한 데 이어 26일에도 “‘검수완박’ 재협상을 거듭 요청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서명한 합의안을 “민심에 반하는 중재안”이라고 평가절하한 뒤 “그대로 통과시킨다면 정치 야합, ‘셀프 방탄법’이라는 국민 지탄을 면할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1시간23분에 걸친 22일 의원총회 추인 절차도 스스로 무위로 만들었다. 22일 “저도 (중재안에) 동의 의사를 밝혔고 의총에서 추인됐다”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6일 “의총에서 더 논의가 되고 그걸 바탕으로 집단적 판단이 이뤄졌어야 했다”며 “의총 동의를 받는 과정이 완벽하게 이뤄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흘 만의 합의 번복이 머쓱했던지 “지금 상황에서 더 당혹스러운 건 국민들”이라고 자조섞인 해석을 덧붙였다.

사실 이런 좌충우돌은 22일 이미 예견돼 있었다. 중재안 추인을 위해 열린 의총에는 113명의 당 소속 의원 중 불과 40여명이 참석했다. 중진 의원은 5~6명에 그쳤다. 의총 직후 한 초선 의원은 “원내대표가 전문가라 상세한 설명을 듣고 다들 납득했다”고 말했고, 한 3선 의원은 “내용을 자세히 모르겠다”며 “일찍 나왔다”고 전했다. 일부 의원들은 “법사위원이나 원내지도부에게 물어보라”며 사실상 원내지도부에 협상 과정을 일임했다. 일각에선 검찰의 수사대상에서 선거범죄를 빼는 것에 국민의힘도 내심 동조한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5일 오전 경기도 성남 분당구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해 코로나19 백신 개발 관련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2022.4.25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5일 오전 경기도 성남 분당구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해 코로나19 백신 개발 관련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2022.4.25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역시 “저는 국민들 먹고사는 것만 신경 쓸 것”이라며 그간 논의에 거리를 둬왔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에 따르면 22일 윤 당선인은 권 원내대표로부터 전화로 중재안 내용을 보고 받았지만 ‘국회와 당이 잘 해주실 것’이라며 특별한 주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재안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자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을 통해 “검수완박 법안이 헌법 정신을 크게 위배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25일), “중재안이라는 게 의미가 없다”(26일)고 했지만 타이밍을 놓친 뒤였다.

검찰의 집단 반발, 국민들의 싸늘한 민심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중재안이 나오기 전인 18~20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검수완박’에 대한 반대 의견(50%은) 찬성 의견(39%)을 훨씬 앞섰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그러나 26일 장 실장은 “대통령 당선인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문재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공마저도 민주당과 청와대에 돌린 것이다.

“힘 없는 소수정당”, “할 수 있는 게 없는 대통령 당선인”이라지만 국민의힘은 불과 10여일 후면 국가 중대사를 직접 결정하는 집권 여당이 된다. 지금도 제1 야당으로서 주요 협상에 책임 있게 나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낼 책무가 있다.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입장을 번복하는 ‘갈지자’ 행보”(25일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라는 민주당의 비판에 대해 이번 만큼은 국민의힘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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