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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야 산다?…또 군소정당 뒷통수치는 민주당 광역의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정치개혁 결단을 촉구하며 국회 로덴더홀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모습. 뉴스1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정치개혁 결단을 촉구하며 국회 로덴더홀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모습. 뉴스1

“약속과 신의를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거대 여당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

정의당 등 원내외 군소정당들은 26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 관련)여야 합의 주체인 민주당이 스스로 합의를 뒤집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회견에는 정의당 외에 기본소득·노동·녹색·진보당, 그리고 시민단체 정치개혁공동행동도 함께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선 6·1 지방선거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합의해 놓고 정작 실제 선거구 획정 권한을 지난 광역의회에선 뒤통수를 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14일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합의하고 관련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15일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전국에 11개 시범지역을 선정해 한 선거구에서 3인 이상의 의원을 뽑도록 강제하고, 현행 기초의원 중선거구제 하에서 4인 이상을 선출해야 되는 선거구를 관행적으로 2인 선거구로 쪼개는 근거가 됐던 선거법의 단서 조항(26조 4항 단서. 하나의 시ㆍ도의원지역구에서 지역구자치구ㆍ시ㆍ군의원을 4인 이상 선출하는 때에는 2개 이상의 지역선거구로 분할할 수 있다)을 삭제한 것이다. 그 결과 거대 양당 나눠먹기식 선출구조가 바뀌어 “최소 100~150석의 군소 정당 몫이 생길 것”이라는 게 정의당 등의 기대였다.

그러나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은 공직선거법 제24조3에 따라 광역의회 고유한 자치업무에 해당한다. 기초의원 선거구는 자치구·시·군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획정안을 마련하면 이를 시·도의회가 임의로 조정해 조례를 개정하는 방식으로 획정된다. 선거구 분할이 가능하다는 명문 규정은 삭제됐더라도 광역의회가 의결하면 얼마든지 법 개정 취지와 다른 의결이 가능한 구조다.

이들은 민주당의 뒤통수 시도가 가장 노골적인 광역의회로 부산시의회를 꼽았다. 현재 부산시의원 41명 중 33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정의당은 회견에서 “부산시 선거구획정위는 10개의 4인 선거구가 포함된 선거구획정안을 부산시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부산시의회는 이를 모두 2인 선거구로 쪼갤 것이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이자 선거구획정 조례를 다루는 부산시의회 행정문화위원장이 면담 자리에서 ‘민주당 부산시당의 입장이기 때문에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고도 덧붙였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지방의원 선거구 획정 합의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 수석 부대표, 국민의힘 조해진 정개특위 간사,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정개특위 간사, 진성준 원내 운영 수석 부대표. 김성룡 기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지방의원 선거구 획정 합의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 수석 부대표, 국민의힘 조해진 정개특위 간사,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정개특위 간사, 진성준 원내 운영 수석 부대표. 김성룡 기자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서울시 등 여러 지역 선거구획정위가 지난 지방선거 때 쪼개놓은 2인 선거구를 손보지 않은 채 이번에도 2인 선거구 중심의 획정안을 내놓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 의원은 “서울시선거구획정위의 경우,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의 주장에 따라 쪼갠 2인 선거구를 4인 선거구로 복원하지 않은 채 기존의 선거구획정안을 일부만 조정해 그대로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며 “서울 뿐만이 아니라 경기도, 전북, 충남, 충북 등에서도 같은 상황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이같은 현상이 “거대 양당의 입김이 선거구획정위에 미친 결과”(익명 원한 당 관계자)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의원은 “선거구획정위가 제출한 3~4인 선거구를 임의로 쪼개서도 안 되고, 선거구획정위가 2인 선거구 일색의 획정안을 제출했다면 이를 3~4인 선거구 중심으로 수정해 조례를 의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내부에선 “지난 총선에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합의해 도입하고도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해 뒤통수를 쳤던 민주당 또 다시 밥그릇 사수에 나선 것“이라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열린 다당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열린 다당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민주당은 태연한 입장이다. 지난 14일 합의 당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법문상 근거 조항을 삭제해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한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광역의회가 (이 같은 결정을) 존중해 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한 민주당 관계자는 “선거구 획정은 광역의회의 고유한 자치 업무라서 국회가 강제할 순 없는 노릇”이라고만 말했다. 부산시의회에서 선거구획정 절차를 관장하는 김태훈 행정문화위원장은 “부산시당의 의견 수렴 결과 압도적 다수가 2인 선거구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고 또 다른 민주당 소속 부산시의원은 “인구가 4만 명인 4인 선거구를 두면 투표율 50%로 봤을 때 4등 당선자는 몇 표를 받고 당선되는 셈이냐. 과연 그런 사람이 주민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부산시의회는 27일 본회의를 열어 선거구 획정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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