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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변호사 없다" 62%인데...선진형 리걸테크, 규제로 막나 [Law談 스페셜 이성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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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문서 자동작성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미국 리걸테크 기업 '리걸줌(LegalZoom)'은 지난해 6월30일 미국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해 시가총액 3조5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진 나스닥

법률문서 자동작성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미국 리걸테크 기업 '리걸줌(LegalZoom)'은 지난해 6월30일 미국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해 시가총액 3조5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진 나스닥

#1. 지난해 5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26명에게 "주변에 아는 변호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응답자의 62.6%는 "없다", 20.1%는 "1명 안다"고 대답했다.

#2. 대법원 민사 본안 및 형사사건 변호인 선임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올해 3월까지 민사 본안소송 1심에서 원고와 피고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나 홀로 소송' 사건은 전체 495만827건 중 360만482건으로 72.7%에 이른다. 국선 변호인이 있는 형사소송에서도 변호사 없이 소송하는 비율이 같은 기간 전체 133만7459건 중 61만3091건(45.8%)으로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변호사 3만명 시대에도 일반 국민에게 법률시장의 문턱이 여전히 높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두 장면이다.

법률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으로 주목받는 것이 법과 기술이 결합된 '리걸 테크(Legal Tech)'다. 리걸 테크는 의뢰인과 변호사를 연결하는 중개 플랫폼, 판례 검색 등 법률정보 제공, 법률문서 작성의 자동화, 법률자문, 전자증거개시(e-Discovery) 등 분쟁해결 시스템 서비스, 알고리즘을 통한 자동화된 법률적 의사결정 등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리걸 테크는 변호사의 업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장점뿐만 아니라 법률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편익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더 빛난다. 구체적으로 다음 3가지의 효과가 있다.

첫째, 리걸 테크는 기존 법률 서비스 시장보다 접근성이 높고 가격이 저렴하다. 이런 특징 덕분에 피해 구제에 있어서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 줄 수 있다. 리걸 테크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지리적 제약 없이 24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또한 기존의 변호사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특히, 리걸 테크 플랫폼은 이용 후기, 평점 등을 통해 변호사에 대한 평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고 있으며 변호사 간 경쟁을 통해 법률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킨다.

둘째, 리걸 테크는 기존 법률시장에 존재하는 비용의 장벽을 낮춰 법률 소비자의 사법 시스템에 대한 접근권(Access to justice system)을 높일 수 있다. 특히 해외 리걸 테크 플랫폼은 다수의 소액 피해를 본 법률 소비자들의 피해 구제에 기여하고 있다. 기존에 이 같은 사건은 사실관계의 정리에 드는 노력과 막대한 비용에 비해 소송가액이 작아 법률 구제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제 리걸 테크를 통해 법률 서비스 소외 계층에 대한 권리 구제가 가능해진 것이다.

셋째, 리걸 테크는 ‘인간’ 변호사의 오류를 줄여 법률 자문 서비스의 질적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변호사는 사실의 인식에 대한 오류 가능성,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판단의 착오 등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나, 리걸 테크는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해외의 리걸 테크 현황은 어떨까. 미국은 리걸 테크 기업의 숫자가 2016년도 1100여개에서 2020년 1887개로 늘었다. 법률 서비스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이 도입되면서 리걸 테크 스타트업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사법 제도의 필수 절차인 디스커버리 제도가 ‘e디스커버리 제도’로 변화하고, 높은 변호사 비용으로 법률 서비스 접근이 어려운 점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 리걸 테크의 효용성이 증가하고 있다. 전자 증거 개시 분야의 리걸 테크는 AI를 사용해 수많은 문서 중 필요한 정보를 찾아줘 승소 가능성을 높이고 소송 비용을 줄여준다.

대륙법 국가로 한국 법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은 변호사법 외에 법률 서비스법을 제정해 리걸 테크 기업의 법률 시장 참여를 촉진하고 있다. 항공, 기차 등 소액 다수 소비자 피해 사건에서 리걸 테크 기업들은 표준화된 자동처리 시스템을 이용해 분쟁을 해결하고 있으며, 법률서비스법에 따라 허가를 받아 채권추심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과 법률 서비스를 결합한 리걸테크(Legal-Tech) 산업의 원활한 정착을 위한 법무부 '리걸테크 태스크포스(TF)'가 진나해 9월 출범했다. 1차 TF 회의에 참석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 사진 법무부

정보통신 기술과 법률 서비스를 결합한 리걸테크(Legal-Tech) 산업의 원활한 정착을 위한 법무부 '리걸테크 태스크포스(TF)'가 진나해 9월 출범했다. 1차 TF 회의에 참석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 사진 법무부

반면 한국은 변호사 광고를 허용하는 변호사법 제23조와 일정한 요건 아래에 소개·알선·유인 행위를 금지하는 제34조 제1항의 해석을 두고 법률 플랫폼과 변호사 단체 간 갈등이 계속되면서 법률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향상이라는 리걸 테크의 소비자 편익이 방치되고 있다. 변호사 업무의 공공성 유지, 법률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하는 변호사 단체의 입장이 법률 소비자의 편익을 저해하는 것은 아닌지, 시장에 신규로 진출하는 변호사의 기회를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다행히 지난해 법무부는 리걸 테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법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고,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판결문의 적극 공개를 권고한 바 있다. 새 정부 제1호 규제개선 과제로 리걸 테크를 채택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규제를 풀고 관련 산업을 육성해서 국민 편익이 증진되기를 기대한다.

로담(Law談) 스페셜 기고

다양한 경력의 전문가가 법조 관련 주요 사안을 알기 쉽고 깊이 있게 다루는 기고 시리즈입니다. 중앙일보 ‘로담(Law談) 칼럼’은 열려 있습니다. 연재 필진 이외 각 분야 전문가 분들이 현안에 대한 법률가적 시각을 소개하겠습니다. 법이 국민에 바르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반론(反論)과 토론도 환영합니다.

※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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