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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조 물로 재배한 쌀에 독소 축적"…스리랑카 실험에서 확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낙동강 본포양수장 부근 논에서 관찰된 남세균 녹조. [환경운동연합]

낙동강 본포양수장 부근 논에서 관찰된 남세균 녹조. [환경운동연합]

남세균(cyanobacteria) 녹조가 발생한 호숫물로 벼를 재배하고 수확한 쌀에서 녹조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MC)이 다량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 학술지에 발표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연구 결과는 낙동강·금강 주변 농산물의 MC 오염을 둘러싼 최근 논란과 관련해 관심을 끌고 있다.

스리랑카 스리자예와르데나푸라대학 연구팀은 지난 2019년 7월 국제 저널 '독소(Toxins)'에 남세균의 일종인 마이크로시스티스(Microcystis aeruginosa) 녹조가 발생한 호수에서 떠온 물에 벼를 노출하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MC가 쌀에 다량 축적된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MC는 간 독성을 일으키고, 신장과 남성 생식기관 등에도 손상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또 피부염과 천식·위장염·알레르기 등과 유사한 질병이나 증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낙동강·금강 농산물에서도 독소 검출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세계 물의 날을 맞아 낙동강 쌀에서 '발암물질·생식 독성' 녹조 독성 물질 검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세계 물의 날을 맞아 낙동강 쌀에서 '발암물질·생식 독성' 녹조 독성 물질 검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 지난해 8월 환경운동연합 등은 녹조가 극심한 낙동강과 금강 강물에서 MC가 다량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지난 2월과 3월에는 낙동강·금강 인근에서 재배한 쌀과 무·배추에서도 독소가 검출됐다는 분석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녹조가 발생한 물로 재배한 상추에서 MC가 검출됐다는 실험 결과도 발표했다. 하지만, MC가 벼에 실제 축적되는 과정을 입증하는 실험은 국내에서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하지 못한 상태다.

스리랑카 연구팀은 녹조가 심하게 발생한 스리랑카 베이라(Beira)에서 녹조 덩어리가 포함된 물을 떠 와서 실험실 내에서 수경재배하는 벼에 넣어주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4개월 동안 벼를 재배하면서 벼 한 포기당 하루에 330mL씩 녹조 물 시료를 공급했다.
녹조 물 시료에는 MC의 일종인 MC-LR이 L당 3197㎍(마이크로그램, 100만분의 1g)이 들어있었다. 연구에 사용된 벼는 잡종인 BG358과 토종인 수완델(Suwandel) 두 품종이었다.

스리랑카 쌀 WHO 기준 71배

지난해 여름 금강 서포양수장 농수로에서 관찰된 녹조. 환경운동연합

지난해 여름 금강 서포양수장 농수로에서 관찰된 녹조. 환경운동연합

연구팀은 볍씨에서부터 벼를 4개월 재배한 뒤 쌀을 수확했고, 쌀알에서 MC-LR을 추출, 분석했다. 분석 결과, BG358 품종에서는 ㎏당 567.52 ㎍이, 수완델 품종에서는 429.83㎍/㎏이 검출됐다.

이를 통해 BG358 품종 쌀 섭취를 통해 스리랑카 사람들이 노출되는 MC-LR의 양은 체중 1㎏당 하루 2.84㎍으로 평가됐다. 토종 수완델을 통한 노출량은 체중 1㎏당 하루 0.22㎍으로 계산됐다.

이 같은 수치는 전국 평균적인 소비량에서 두 품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한 것일 뿐, 수완델 품종을 BG358과 같은 양 만큼 섭취한다면 BG358 때의 75.7%에 해당하는 독소에 노출된다. 연구팀은 스리랑카에서 체중 60㎏인 성인이 하루 소비하는 BG358 품종 쌀은 평균 300g(생 중량 기준), 토종인 수완델은 평균 30g이라는 수치를 적용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장하는 MC-LR의 하루 섭취 허용량(tolerable daily intake, TDI)이 체중 1㎏당 0.04㎍인 것과 비교하면, BG358 섭취에 따른 잠재적인 인체 노출은 TDI의 71배나 됐다. 소비량이 적은 수완델 품종의 경우도 TDI의 5.5배나 됐다.

연구팀은 실제 논에서도 독소 축적을 조사했다. 호수에서 관개한 논물에는 MC-LR이 180㎍/L가 들어있었다.
수확 후 쌀에서 MC-LR을 추출한 결과, BG358 품종에서는 ㎏당 20.97㎍이, 수완델 품종에서는 18.19㎍/㎏이 검출됐다.
논에서 키운 BG358 쌀 섭취를 통해 스리랑카 사람들이 노출되는 MC-LR의 양은 체중 1㎏당 하루 0.1㎍으로 평가됐다. 소비량이 적은 토종 수완델을 통한 노출량은 체중 1㎏당 하루 0.009㎍으로 계산됐다.

스리랑카에선 원인 불명 신장 질환 만연

낙동강 본포양수장 부근 농수로 녹조. 환경운동연합

낙동강 본포양수장 부근 농수로 녹조. 환경운동연합

논에서 기른 BG358 품종 쌀을 섭취할 경우 WHO에서 제시한 TDI의 2.5배에 해당한다. 수완델은 TDI를 밑돌았지만, 수완델을 BG358과 같은 양만큼 섭취한다면 BG358의 86.7%에 해당하는 독소를 섭취하는 셈이다.

연구팀은 "녹조 독소로 오염된 물을 관개해서 재배한 작물의 소비를 통해 MC-LR에 노출될 수 있다"며 "녹조 독소인 MC-LR이 스리랑카 북부지역, 주요 농업지역에서 만연하고 있는 원인 불명의 만성 신장 질환의 원인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어린이의 경우 하루 섭취 허용량 미만의 MC-LR에 노출돼도 위험할 수 있는 만큼 작물에 공급하는 농업용수 수질은 음용수 수질 기준에 가깝게 유지돼야 사람 건강에 대한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MC 분석 전문가인 부경대 식품영양학과 이승준 교수는 "스리랑카 연구팀의 실험은 물속의 녹조 독소가 쌀에 축적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남조류 녹조와 식품 오염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제공한 것"이라며 "국내에서도 이런 실험을 진행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낙동강 독소 수준 쌀에 축적될 수도

지난해 8월 24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회화나무홀에서 열린 '낙동강·금강 독성 마이크로시스틴 현황 분석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관계자들이 낙동강 녹조 샘플을 놓고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8월 24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회화나무홀에서 열린 '낙동강·금강 독성 마이크로시스틴 현황 분석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관계자들이 낙동강 녹조 샘플을 놓고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한편, 지난해 여름 환경운동연합 등이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MC-LR을 포함한 총 MC 농도는 낙동강 중류 국가산단 취수구 부근에서는 L당 4914.39㎍까지도 검출됐다. 총 MC 중 MC-LR이 30~40%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MC-LR이 L당 2000㎍/L까지도 존재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런 물로 재배한 쌀에는 MC-LR을 포함해 MC가 다량 검출될 가능성이 높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에서 "낙동강 인근에서 쌀을 구매해 분석한 결과, 1㎏당 2.53~3.18㎍의 MC가 검출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사 결과는 WHO 섭취 허용량을 밑돌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주 환경보호국(EPA) 환경건강위험평가소(OEHHA)에서 정한 간 경변 기준치나 생식 독성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평가돼 폭넓은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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