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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어부지리' 경찰의 속내…인력만 부족한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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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 18일 오후 진교훈 경찰청 차장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사실상 찬성한다는 취지로 국회에서 한 발언이다. 진 차장은 이날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검수완박 법안 심사를 위해 비공개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의 심사를 위한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의 개회를 예정한 18일 오후 국회 법안심사제1소위에 출석한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왼쪽)과 진교훈 경찰청 차장(가운데),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의 심사를 위한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의 개회를 예정한 18일 오후 국회 법안심사제1소위에 출석한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왼쪽)과 진교훈 경찰청 차장(가운데),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같은 날 오전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펼친 신중론(“수사 기소 분리 방안은 국회 논의를 지켜보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과 비교해 경찰 속내를 내비친 편이다. 경찰 지휘부는 그동안 검경 갈등으로 비칠 것을 염려해 검수완박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이날 진 차장이 여야 의원들과 주고받은 문답에서 경찰 수사권의 준비가 다소 부족하다는, 이른바 ‘경수불비(不備)’의 실태도 드러났다는 평가다.

①“독일 검찰은 수사 안 한다”

25일 본지가 분석한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진 차장은 이날 “미국과 영국의 사례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박주민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기본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볼 수 있는 영국이나 미국 같은 경우에는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있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검찰 출신의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발끈했다. 한국이 따르는 독일과 프랑스 등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검사의 수사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진 차장은 “독일에서도 검사가 수사를 직접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맞받아쳤다.

▶유상범 의원=“우리나라는 어딥니까? 대륙법계이지요? 기본적으로 대륙법계 시스템에 맞춘 의견을 말씀하셔야지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글로벌스탠다드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 자체는 아주 잘못됐다.”

▶진 차장=“독일 같은 경우에도 법리적으로는 검사에게 수사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수사권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다.”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소위를 앞두고 유상범,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회 경위들에게 소위 언론 공개를 주장하고 있다.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 위원장 박주민 의원은 이날 오후 7시 '검수완박'이라고 불리우는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을 논의하기 위한 소위를 소집했다. 뉴스1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소위를 앞두고 유상범,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회 경위들에게 소위 언론 공개를 주장하고 있다.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 위원장 박주민 의원은 이날 오후 7시 '검수완박'이라고 불리우는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을 논의하기 위한 소위를 소집했다. 뉴스1

②“검찰 업무량 줄었는데 경찰은 증원 안 돼”

19일 열린 소위에선 판사 출신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검찰 수사권 폐지에 따른 경찰 권한 집중과 업무 과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전주혜 의원=“이렇게 되면 경찰 공화국이 될 판이에요. 모든 권한이 다 경찰에 오히려 집중이 되기 때문에 수사의 지연이나 그런 문제가 있지 않겠나.”

▶진 차장=“수사기일이 지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인력을 뒷받침하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내부적으로도 그런 조치를 하고 있다”

경찰 수사 부서 기피에 따른 인력난, 인력 충원의 필요성이 있다는 얘기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의 평균 사건처리 기간은 검경수사권 조정 이전의 55.6일(2020년)에서 지난해 64.2일로 8.6일 늘어났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정부에 1700명 규모의 증원을 요청했지만, 400명만 증원이 이뤄졌다”로 토로했다. 경찰 일각에선 외부 증원 핑계만 댈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내부 인력 재배치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경찰청 블라인드에 올라온 현직 경찰관의 글. 블라인드 캡쳐

최근 경찰청 블라인드에 올라온 현직 경찰관의 글. 블라인드 캡쳐

③“검찰 수사, 경찰로 이관? 어려운 사건도…”

경찰은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가 줄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청법 4조 1항에 명시된 검사가 수사 개시 가능한 6대 범죄(공직자ㆍ부패ㆍ경제ㆍ선거ㆍ방위사업ㆍ대형참사)는 경찰이 그동안 해오던 수사라서다. 경찰청에 따르면 6대 범죄만 따졌을 때 2018년 기준 경찰은 41만 5958건, 검찰은 3만 4605건을 수사했다. 경찰의 수사 건수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내부에서조차 6대 범죄에 대한 수사 역량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진 차장도 부담감을 내비쳤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2021년 기준 (검찰의) 직접수사가 더 줄어서 인지가 3300건, 고소·고발 사건 7300건, 합쳐서 1만 건 정도. 그런데 경찰은 매년 154만 건에서 181만 건의 사건을 수사한다. 여기다가 1만 건 추가한다고 해서 경찰 수사 처리 역량에 큰 영향을 줄까요?”

▶진 차장=“저희들이 최선을 다해야 되겠습니다만 어려운 사건들도 있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좀 더 사건의 내용을 봐야 될 것 같다.”

최근 경찰청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에서도 한 현직 경찰관은 “현실 세상은 단순폭행, 단순절도같이 간단한 사건만 있는 게 아니다”며 “경찰은 채용 때 형사법만 배운 채 들어왔고 복잡한 영역은 보통 검찰에서 맡아와서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여당 의원 “경찰이 책임지지 않고 임무 방기한 측면도”

한편, 이날 여당에서 경찰의 조직 문화에 대한 쓴소리가 나왔다.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없는 조직으로 비치는 데 대해 자성을 촉구하는 차원이었다. 최강욱 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수사와 관련해서 본인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일정 부분 조사 기록을 남긴 다음 ‘더 필요한 거 있으면 검찰에 가서 얘기하세요’ 이런 식으로 임무를 그냥 방기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며 “스스로 성찰할 지점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인정하셔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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