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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선관위 문건 "소쿠리 투표 급조, 노정희에 보고도 안 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이 지난 18일 사의를 표명했다. 사진은 3월 8일 20대 대통령 선거 본 투표일을 하루 앞두고 담화문을 발표하며 사과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이 지난 18일 사의를 표명했다. 사진은 3월 8일 20대 대통령 선거 본 투표일을 하루 앞두고 담화문을 발표하며 사과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소쿠리 투표’란 오명을 얻은 대선 확진자 사전투표 대책을 투표 일주일 전 급조하고, 해당 방안을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과 선관위원들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가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156쪽의 중앙선관위 선거관리 혁신위원회 보고서 전문에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선관위의 사전투표 부실 대응의 실상들이 빼곡히 담겨있었다.

특히 보고서엔 ‘플랜B의 부재·위원장 미보고·실기·간과·미비·평균의 오류’와 같이 인재(人災)를 상징하는 단어들도 반복해 등장했다. 선관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71.6%의 직원들이 현재 선관위에 대해 ‘절망적’이라 답했다. ‘중앙선관위를 신뢰하지 않는다’(57.9%)는 답변도 ‘신뢰함’(13.9%)에 4배에 달했다.

선관위 선거관리혁신위원회 TF팀장을 맡았던 조병현 선거관리위원이 지난달 21일 선관위 회의에 들어가는 모습. 노정희 위원장은 조 위원에게 TF팀장을 맡아달라며 삼고초려를 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선관위 선거관리혁신위원회 TF팀장을 맡았던 조병현 선거관리위원이 지난달 21일 선관위 회의에 들어가는 모습. 노정희 위원장은 조 위원에게 TF팀장을 맡아달라며 삼고초려를 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왜 특별대책은 일주일 전 마련됐나 

혁신위에 따르면 선관위는 처음부터 늦었다. 2월 초 폭증하는 확진자의 투표 대책이 부재하다는 보도가 나온 뒤에야 노정희 위원장에게 1차 보고(2월 7일)가 들어갔다. 그저 관행대로 움직인 것도 문제였다. 선관위는 지난해 4·7 재보궐(당일 확진자 653명) 대비 올해 대선에선 코로나19 확진자가 400배 이상 증가했지만, 기존의 방식을 고수했다.

재보궐 때와 같이 지자체로부터 확진자 명단을 받아 투표 수요를 파악하고, 그중 문자로 사전 투표 신청을 한 사람만 투표하게 하는 방안을 준비하겠다고 선관위원회의(2월 21일)에 보고했다. 방역 당국엔 확진자 외출을 오후 5시 30분부터 허용해 6시에 일반 유권자 투표가 끝난 뒤 투표를 시키겠단 입장도 전했다.

확진자가 폭증해 새로운 변수들이 돌출했지만, 플랜B는 없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선관위 내부 소식통은 “노 위원장을 포함해 선관위원들도 수동적 보고만 받았을 뿐, 새로운 변수가 생길 가능성을 대비하지 않았다”고 했다.

선관위는 기존 대책에 한해서만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김세환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이 국회에 출석해 “격리·확진자를 100만명으로 추산해도 기존 관리 방식으론 충분히 가능하다(2월 9일)”는 자신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5일 부산 해운대구 한 사전투표소 측이 준비한 확진자, 격리자용 투표용지 종이박스. 선관위는 특별대책 하달이 늦어 통일된 투표 바구니 주문도 어려웠다고 했다. [연합뉴스]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5일 부산 해운대구 한 사전투표소 측이 준비한 확진자, 격리자용 투표용지 종이박스. 선관위는 특별대책 하달이 늦어 통일된 투표 바구니 주문도 어려웠다고 했다. [연합뉴스]

어긋난 선관위의 ‘안일한 예상’

문제는 방역 당국과 지자체가 선관위의 기대와 달리 움직였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22일 선관위에 보낸 회신에서 “여력이 없다”며 확진자 명단 제공과 투표 사전신청제를 거부했다. 투표소에서 먼 곳에 사는 유권자를 고려해 외출도 5시부터 허용했다.

선관위의 예상과 모든 게 어긋난 것이다. 회신을 받은 중앙선관위는 3일 뒤인 2월 25일 급조된 새 대책을 마련해 지역 선관위에 하달했다. 5시부터 외출허가를 받은 확진자들을 임시 기표소에 도착하는 대로 투표하도록 허용하겠단 내용이었다. 이에 대한 아무런 시뮬레이션도 없었다. 혁신위원회는 “2월 8일부터 22일까지 선관위는 요청이 거부당할 것에 대비한 플랜 B를 강구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선관위는 25일 급조된 특별대책을 노 위원장을 포함해 선관위원회의에 보고하지 않았다. 기존 방안과 완전히 다른 대책이었지만 사무총장 전결로 처리했다.

결과적으로 확진자 투표가 허용된 사전투표 둘째 날(3월 5일) 오후 5시부터 일반 유권자와 확진자가 동시에 몰려들었고, 모두가 아는 것 처럼 대혼란이 벌어졌다. 보고서엔 일주일 전 대책이 하달돼 “임시 기표소엔 배포할 통일된 투표지 운반 바구니를 주문할 시간도 없었다”는 황당한 해명도 담겼다.

지난 19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뉴스1]

지난 19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뉴스1]

선관위 직원 71% “절망적”

혁신위는 ‘소쿠리 투표’ 사태에 대해 선관위 내부 직원 20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했다. 현재 선관위에 대해 느끼고 있는 심리를 묻자 직원들의 71.6%가 ‘절망적’이라 답했다. ‘선관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도 57.9%에 달했다. 외부와 내부 모두에서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은 “대선 사전투표는 급조된 대책·위원장 패싱 등 총체적 부실로 드러났다”며 “선관위는 지방선거를 철저히 준비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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