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세계 1위 했던 미술계 이단아…NFT 전문가 된 사연 [추기자의 속엣팅]

중앙일보

입력 2022.04.26 05:00

추기자의 속엣팅

 한 사람의 소개로 만나 속엣말을 들어봅니다. 그 인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인연 따라 무작정 만나보는 예측불허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프롤로그]블록체인기부앱 ‘체리’를 만든 이수정 대표는 ‘기부’에 ‘아트’를 접목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입니다. 동전이 세계여행을 하고 기부 상자에 도착하는 콘셉트의 작품 ‘코인맨’을 만든 미디어 아티스트 김일동 작가와 의기투합했죠. 한 유튜브 방송에서 각각 블록체인 전문가와 NFT(대체불가능토큰) 전문가로 출연했다가 이 대표가 김 작가의 ‘코인맨’에 꽂혔다고 합니다. 김 작가는 웹툰으로 ‘세계 1위’까지 한 만화가이자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인데요. 그런 그가 어쩌다 NFT 전문가가 된 걸까요.

미디어 아티스트 김일동 작가는 '까뱅'으로 한때 세계 1위까지 한 만화가였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붓 대신 컴퓨터로 그림을 그렸다. 모든 작품을 디지털로 만든 덕분에 NFT에도 운명처럼 입문했다. 김 작가가 20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사무실 ‘스페이스 알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미디어 아티스트 김일동 작가는 '까뱅'으로 한때 세계 1위까지 한 만화가였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붓 대신 컴퓨터로 그림을 그렸다. 모든 작품을 디지털로 만든 덕분에 NFT에도 운명처럼 입문했다. 김 작가가 20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사무실 ‘스페이스 알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만화가 좋았다. 제대 후 2002년 무작정 울산에서 상경했다. 인터넷에서 친구들을 모아 작은 옥탑방에서 그때 함께 그린 만화가 2007년 네이버에 정식 연재된 웹툰 ‘까뱅’(GGAVANG)이었다. 사고뭉치 치킨 영웅을 그린 이 웹툰은 당시 세계 최대 플래시 애니메이션 플랫폼 ‘뉴그라운즈닷컴’ 네티즌 투표에서 9만여 작품 중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네티즌 사이에서 ‘까뱅 놀이’가 유행하고 팬레터도 꽤 받았지만, 돈을 벌진 못했다. 친구들은 30대를 앞두고 하나둘 밥벌이를 위해 현실로 돌아갔다.

“뒤통수 치는 이야기로 관객 멈춰세워야”

지난 20일 서울 강서구 사무실에서 만난 미디어 아티스트 김일동(42) 작가는 “웹툰을 너무 빨리했다”며 웃었다. “우리가 너무 어리고 몰라서 제대로 된 마케팅도 못 했다”면서다. 만화를 그리며 틈틈이 독학으로 학사 학위를 따놓았던 그는 28살에야 정식으로 대학을 갔다. “30대를 앞두고 사회 부적응자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2008년 단국대 동양화과에 편입했다. 그런 그가 지난 1월 말 출간한 책 인문교양서 『NFT는 처음입니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용어사전대체 불가능 토큰(NFT)
 고유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의 한 형태. 최초 발행자와 소유권, 판매 이력 등 관련 정보가 블록체인에 모두 등록되어 있어 복제나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최근 디지털 예술품이나 온라인 스포츠, 게임 등 거래 시장에서 영향력이 급증하고 있다.

김일동 작가의 NFT 대표작 ‘맥도날드를 먹는 달마’다. 2009년 만든 이 작품은 지난해 6월 한 블록체인 기업의 자문 요청을 받고 ‘오픈씨’(NFT 거래소)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올렸던 게 1이더리움(ETH)에 팔렸다. 당시 가치로 500만원이 넘었다. [김일동 작가 제공]

2011년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 분관)에서 '만화 캐릭터, 미술과 만나다' 전시회의 '달려~ 코인맨' 전시관. 코인맨이 선을 따라 세계여행을 한 뒤 기부 상자에 도착하는 콘셉트다. [김일동 제공]

그의 NFT 대표작은 ‘맥도날드를 먹는 달마’다. 한 블록체인 기업의 자문 요청을 받고 ‘오픈씨’(NFT 거래소)에 ‘설마’ 하며 올렸던 게 지난해 8월 1이더리움(ETH)에 팔렸다. 당시 가치로 500만원이 넘었다. 지인의 권유로 쓴 책이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더니 기업들의 자문 요구가 빗발쳤다. 그는 그러나 “NFT는 도구일 뿐이지 예술의 근본은 똑같다”고 했다. 그는 “미술시장도 수백 년간 부침이 있었다”며 “앞으로 버틸 작가라면 (시장가치가 떨어진) 지금이 오히려 투자 적기”라고 강조했다.

이 작품을 포함한 ‘108 달마도’ 시리즈는 “정신(달마)과 물질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주제다. 대학 재학 중이던 2009년 첫 개인전에서 공개했다. 한 갤러리에서 갑자기 취소된 개인전을 대신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주일 만에 연 전시회였다. 이후 경남도립미술관을 비롯해 유수의 전시회 초청을 받았다. “만화는 조회 수 안 나오면 끝이거든요. 흥미로운 걸 그리고 싶었어요. 달마가 맥도날드 먹으면 신기하잖아요. 관객은 뒤통수 치는 이야기에 끌리죠. 달마가 코카콜라 마시고, 아이폰 보는 것처럼요. 관객이 작품 앞에서 멈추고 생각하도록 해줘야죠.”

“미쳤다” 들으며 캠페인 아트부터 강연, 영화까지 

'코인맨'과 함께 한 김일동 작가. 하얀색과 검정색, 노란색 코인맨들은 작품 속 세계의 랜드마크를 거쳐 기부상자에 도착한다. 김상선 기자

'코인맨'과 함께 한 김일동 작가. 하얀색과 검정색, 노란색 코인맨들은 작품 속 세계의 랜드마크를 거쳐 기부상자에 도착한다. 김상선 기자

이런 그의 철학은 ‘코인맨’으로 이어졌다. 그는 “모두가 즐기는 미술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동전(코인맨)이 전 세계를 여행하고 동전 상자에 도착하는 작품으로, 예술도 즐기고 기부도 하는 ‘캠페인 아트’의 창시작이다.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 분관)은 2011년 이 전시회로 하루 최다 관객(7000명) 기록을 두 번 경신했고, 그림 판매로도 이어졌다. 그는 “전시만 하면 그림이 자꾸 팔렸다”며 “구매자의 80~90%는 한 번도 그림을 사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는 미술계의 ‘이단아’였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붓과 종이는 쓰지 않고 컴퓨터로 작업했다. 재료를 사고 작업실까지 마련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서다. 주변에선 그를 두고 “붓으로 못 그린다”고 수군댔다. 그래서 보란 듯이 붓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공상상도’ 시리즈를 내놨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제도 속에 갇힌 모습들이다. 그중 ‘행복한 부엉이’는 끝없이 줄 선 흰색 샐러리맨들이 부엉이가 눈물과 원두로 내려준 커피를 받아마시고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현대인의 기계적인 삶을 담았다. 이 시리즈를 소개해달라는 한 기업인의 부탁으로 시작한 강연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는 비난에도 100회 넘게 진행된 아트 콘서트가 됐다.

영화를 만들 때도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난 2019년 제작한 단편영화 ‘그녀는 누가 죽였을까’는 해외 지역영화제 7곳에서 노미네이트되고 노이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을 보고 “영화와 예술을 접목해야겠다”고 생각해 2년간 연기를 배운 끝에 제작한 첫 영화다.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는 20개가 넘는다. 두 번째 영화도 곧 개봉할 예정이다. 그의 “마스터 플랜”은 세계적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던 젊은 작가의 무인도 표류기를 그린 영화 ‘마이랜드’다. 영화 속 작품과 배경을 재현해 섬을 통째로 미술관으로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그가 20년 전 그린 웹툰 ‘까뱅’은 대사가 없다. “세계를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꿈은 여전히 “예술로 세계 정복”이다. “제 무기는 아이디어에요. NFT도, 영화도 미술 작품을 위한 도구이자 과정이죠. 우리나라도 언젠간 테이트 모던 같은 세계적인 미술관이나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슈퍼스타 아티스트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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