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강병철의 셀럽앤카]㉘ ‘빠삐용’ 된 글로벌 車 CEO의 미래는?

중앙일보

입력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이 동맹을 맺은 뒤 처음 공동 개발한 마치 3세대 모델을 2002년 카를로스 곤 당시 닛산 CEO가 공개하는 장면. [AP=연합뉴스]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이 동맹을 맺은 뒤 처음 공동 개발한 마치 3세대 모델을 2002년 카를로스 곤 당시 닛산 CEO가 공개하는 장면. [AP=연합뉴스]

카를로스 곤(68) 전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뜨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차 업계 인물이었다.

브라질·레바논·프랑스 다문화 배경

1954년 브라질에서 태어난 곤은 가문의 고향인 레바논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고교에 다니다 프랑스 파리로 유학 갔다. 고등교육기관(대학) 에콜폴리테크와 파리광산학교를 졸업한 뒤 78년 프랑스 타이어회사 미쉐린(미슐랭)에 입사했다. 여러 공장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90년 북미 법인장을 맡았다.

미쉐린에서 근무하던 카를로스 곤을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고 영입한 루이 슈웨체르(슈바이처) 르노 회장. [연합뉴스]

미쉐린에서 근무하던 카를로스 곤을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고 영입한 루이 슈웨체르(슈바이처) 르노 회장. [연합뉴스]

곤은 96년 프랑스 르노에 수석부사장으로 영입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당시 루이 슈웨체르(슈바이처) 르노 회장이 미쉐린에서 경영 수완을 보인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고 데려온 것이다. 곤이 르노에 오자마자 손댄 것은 구매 방식이다. 기존 1000여 곳의 부품 공급업체를 300여 개로 우선 줄였다.

적자 빠진 르노 흑자 전환 주도

그런 다음 생산성이 떨어지는 공장에서 1만 명 가까이 구조조정을 했다. 이런 방식으로 자동차 한 대당 500달러의 원가를 줄여나갔다. 덕분에 97년까지 적자의 늪에 빠졌던 르노를 이듬해 흑자로 돌렸고, 99년 역대 최대 이익을 냈다. 비용 절감자(Le Cost Killer), 미스터 수리공(Mr. Fix It)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1990년대 중반 일본 닛산 자동차 생산 라인의 모습. 안성식 기자

1990년대 중반 일본 닛산 자동차 생산 라인의 모습. 안성식 기자

더 큰 기회가 찾아왔다. 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경영난에 빠진 일본 닛산이 르노에 SOS를 치면서다. 결국 99년 인수합병(M&A) 방식이 아닌 주식 맞교환 형태로 동맹(얼라이언스)을 맺었다. 대신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곤에게 맡겼다.

닛산에도 구조조정 칼 휘둘러

‘푸른 눈의 사무라이’에게 최고운영책임자(COO)라는 직책과 함께 전권을 준 것이다. 그는 르노 때와 마찬가지로 공급업체를 줄이고, 30개가 넘는 자동차 모델을 10개 정도로 단순화했다. 공장 다섯 곳의 문을 닫으며 2만 명 이상을 내보냈다.

카를로스 곤 당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2013년 프랑스를 방문한 박근혜 당시 한국 대통령의 전기차 시승을 돕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카를로스 곤 당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2013년 프랑스를 방문한 박근혜 당시 한국 대통령의 전기차 시승을 돕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고용 안정과 원청-하청 협력 관계를 소중히 여기던 일본 제조업 전통과 맞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준 칼을 마음껏 휘둘렀다. 99년 큰 적자를 냈던 닛산은 2000년 바로 흑자로 돌아섰다. 곤은 2001년 닛산 CEO에 오른 뒤 2005년 슈웨체르 르노 회장이 은퇴하자 르노도 함께 맡았다.

르노-닛산-미쓰비시 회장 등극

2008년부터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 겸 CEO라는 직책으로 활동했다. 2017년 일본 미쓰비시의 합류로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회장 겸 CEO로 세계 자동차 업계의 스타 CEO로 입지를 다졌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회장이 2018년 주주 총회에서 실적과 신차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회장이 2018년 주주 총회에서 실적과 신차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끝이 없을 거 같았던 곤의 성공 가도는 2018년 일본 검찰이 그를 비리 혐의로 전격 체포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곤의 장기 집권을 인위적으로 막으려는 ‘보이지 않는 손’을 의심했다. 그는 이후 체포-구속-보석의 과정을 몇 차례 거친 뒤 2019년 가택연금 상태에서 탈주에 성공해 레바논으로 도피했다.

일본 떠나 레바논으로 탈주

집에서 악기 상자에 숨어 도망갔다는 일본 언론의 악의적 보도까지 나왔지만 오보로 드러났다. 심지어 베이루트 항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로 곤의 자택이 파괴돼 노숙자가 됐다는 일본발 미확인 보도까지 이어졌다.

2020년 카를로스 곤이 도피 중인 레바논 베이루트 주택에서 한 차량이 나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0년 카를로스 곤이 도피 중인 레바논 베이루트 주택에서 한 차량이 나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반면 서구 언론은 ‘21세기 빠삐용’ 신세가 됐다며 억울한 점을 암시했다. 25일 AFP 등 외신은 일본 정부의 인터폴 공조 수사 요청에 따라 프랑스 수사 당국이 국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장이 발부됐다고 해서 레바논에 있는 곤의 신변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